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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부는 날,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칼바람이 불어도 하늘은 맑고 꽃은 피어나 체감으로 느끼는 한기는 사진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 유채꽃 칼바람이 부는 날,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칼바람이 불어도 하늘은 맑고 꽃은 피어나 체감으로 느끼는 한기는 사진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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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미친짓이었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바다, 모래가 뺨을 따갑게 후려치는 바다를 걷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었다. 바람에 떠밀려 그냥 걷고 또 걸었다. 몇몇은 차로 이동하다 바깥 풍광에 반해 나왔지만, 이내 차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조금은 미쳐야 할 것만 같았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 무슨 일을 이루겠는가?

낙화의 꽃으로 알려진 동백, 그러나 칼바람에 너도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낙화의 꽃임에도 자기의 때가 아니면 꺽이고 베일지언정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 동백 낙화의 꽃으로 알려진 동백, 그러나 칼바람에 너도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낙화의 꽃임에도 자기의 때가 아니면 꺽이고 베일지언정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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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날 아침(3월 10일)은 입춘 이후 가장 춥고 바람이 매서운 날이었을 것이다. 아침바다를 보러 몇 번이나 나가려고 했으나 문을 열고 나가 종종걸음을 치다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밖으로 뜰에 있는 동백을 바라보았다.

동백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칼바람에도 붉은 동백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부터 밤새 저렇게 칼바람에 시달렸을 동백, 낙화의 꽃이라도 때가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구나. 감동이었다.

바닷가 둔덕 위 억새가 바람에 모든 씨앗을 다 날려버리고 버석거리는 몸만 남아 바다를 바라본다. 모든 일을 다 했으니 그의 삶, 마지막도 뿌듯한 것일까?
▲ 억새 바닷가 둔덕 위 억새가 바람에 모든 씨앗을 다 날려버리고 버석거리는 몸만 남아 바다를 바라본다. 모든 일을 다 했으니 그의 삶, 마지막도 뿌듯한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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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을 다 마쳤다.
피어났으며 열매를 맺었고 씨앗도 다 날렸으니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봄이 오니 자리를 비켜주라? 아니면, 가야할 때가 되었다?

문득, 죽음 앞에서 호상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씨앗 하나 남은 것 없는 저 억새도 아직은 더 머물고 싶은 것이다.

코딱지풀꽃이라고도 불리는 광대나물, 작아서 몸 기댈 곳만 있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어나 칼바람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다. 광대, 코딱지...그렇게 불린다고 그들의 행불행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그 이름이 좋을까?
▲ 광대나물 코딱지풀꽃이라고도 불리는 광대나물, 작아서 몸 기댈 곳만 있으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어나 칼바람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다. 광대, 코딱지...그렇게 불린다고 그들의 행불행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그 이름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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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아래 기대어 작은 풀꽃인 광대나물꽃이 피었다. 코딱지풀이라고 불리는 작은 꽃, 작고 땅에 납작 엎드릴 줄 알아 한 겨울에도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납작 엎드려 기지 않으면 어찌 피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 가냘픈 몸으로.

주제를 알고 저렇게 납작 엎드려서 살았어야 했던 것일까? 그냥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늦게 피어난다고 해도, 아니 꺾여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냥 기대지 않고 납작 엎드리지 않고 살아가면 안되는 것일까? 아니, 납작 엎드리고 기대야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의 지혜는 아닌가?

해안가에 흔한 바다직박구리, 그들은 겨울을 어떻게 났을까? 그 작은 새가 칼바람에도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새는 하늘을 난다. 칼바람이 불어도 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 바다직박구리(숫컷) 해안가에 흔한 바다직박구리, 그들은 겨울을 어떻게 났을까? 그 작은 새가 칼바람에도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새는 하늘을 난다. 칼바람이 불어도 봄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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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직박구리는 작은 체구임에도 부지런히 날았다. 칼바람이 부는 날에는 태풍이 몰아쳐 온 날에는 새가 날지 않는 줄 알았다. 그날도 새는 날았다. 동백이 칼바람에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새는 바람이 칼바람이 분다고 하늘날기를 쉬지 않았다. 그게 그들의 삶, 그들의 의무인 것처럼.

제주의 돌담은 엉성하게 쌓여있는 듯하지만, 그 엉성한 틈으로 바람이 지나감으로 어떤 바람에도 넉넉하게 그 자리를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제주의 돌담이 무너질 정도의 바람이면 아주 큰 태풍이 온 경우다.
▲ 돌담 제주의 돌담은 엉성하게 쌓여있는 듯하지만, 그 엉성한 틈으로 바람이 지나감으로 어떤 바람에도 넉넉하게 그 자리를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제주의 돌담이 무너질 정도의 바람이면 아주 큰 태풍이 온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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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돌담은 엉성하다. 쌓고 나서 흔들어 보면 흔들흔들 거려야 잘 쌓은 돌담이란다. 이런 돌담이라야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비결은 돌 사이 바람 구멍이라고 한다. 바람은 아예 차단해 버리면, 그냥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단다.

무얼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 돌담처럼 때론 그렇게 보내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너무 고지식하게 맞서면 무너짐을 자초한다는 이야기겠지.

한 소년이 사계 바다를 뛰어간다. 소년의 달음질이 힘차 보인다. 그 힘찬 달음질처럼 그 소년의 앞길도 달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소년 한 소년이 사계 바다를 뛰어간다. 소년의 달음질이 힘차 보인다. 그 힘찬 달음질처럼 그 소년의 앞길도 달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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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힘차게 달린다. 문득, 경쟁사회에서 저 아이가 저렇게 지속적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어두운 생각을 한다.

오로지 한 라인에서만 일등을 해야만 하는 세상, 출발선도 제각기 다른 불공평한 경쟁에서 이미 저 멀리 앞서간 경쟁자의 뒷꽁무니나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이 되어서 성공한다는 것이 고작 그들의 시다발이나 되는 것은 아닌지.

칼바람 끝에 봄이 왔다. 누구라도 '봄이네!' 할 만큼 화창한 날, 한 청춘이 파도치는 봄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평온해 보이면서도 그것은 외피일뿐, 청춘의 삶은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 청춘 칼바람 끝에 봄이 왔다. 누구라도 '봄이네!' 할 만큼 화창한 날, 한 청춘이 파도치는 봄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평온해 보이면서도 그것은 외피일뿐, 청춘의 삶은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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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하는 여행은 뭔가를 찾아나선 것이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홀로하는 여행자의 심정은 자유와 불안이 반반이며, 모든 것들이 반반이다.

청춘의 흔들림에 대한 예찬이 한때 인기를 끌었다. 왜 청춘은 흔들려야 하는가? 흔들리지 않아도 청춘이 아닌가?

어떤 연유로 바다에 있어야할 이들이 아스팔트에 버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멸치의 로드킬, 그런데 왜 나는 저들을 보면서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일까? 내 삶이 마치 로드킬을 당한 멸치 같았다.
▲ 멸치 어떤 연유로 바다에 있어야할 이들이 아스팔트에 버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멸치의 로드킬, 그런데 왜 나는 저들을 보면서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일까? 내 삶이 마치 로드킬을 당한 멸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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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유를 거쳐 그곳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육지것의 로드킬은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바다를 유영하던 멸치의 로드킬은 생소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 납작해진 뜻밖의 멸치, 난데없는 황당한 상황에 처한 저들의 모습과 내 삶이 닮았다는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한 이후 거반 30년 가까이 한 길을 달려왔다. 그 한 길이라는 것의 의미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 경제의 문제, 돈버는 문제였다.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살아온 일 외에 아무것도 없는 듯하고, 여전히 그것을 놓지 않고 살아갈 일만 남았다.

의미가 밥을 먹여줄 수 있는 그런 거룩한 세상이 아니다. 그런 믿음을 버린 지 오래다. 아니,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돈 버는 일만 바라보고 사는 속물이고 싶지는 않다. 실패한 삶이라고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공한 삶도 아니고, 여전히 중년의 나이에도 불안하다.

그래서 조금씩 미치고 있는 중이다. 다다르지 않으면, 그 끝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미쳐야 미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기사에 등장한 사진들 중에서 동백사진은 2월 말에, 나머지 사진들은 3월 9-12일, 제주를 걸으며 담은 것입니다.



태그:#유채, #동백, #광대나물, #돌담, #바다직박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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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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