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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뿌리깊은나무> 전권 53권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우리글방'에서 전시했다
 2013년 11월 <뿌리깊은나무> 전권 53권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 '우리글방'에서 전시했다
ⓒ 김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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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란 잡지가 있다. 아니, 있었다. 1976년 3월에 창간해 1980년 8월에 폐간된 이 잡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글중심주의를 표방하며 한국잡지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데 오늘날 <뿌리깊은나무>를 다시 읽는 이가 있다. 사람들과 함께 <뿌리깊은나무> 읽기 모임을 만들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뿌리깊은나무>가 인터뷰한 사람들을 35년이 지난 오늘날에 다시 만나 그 흔적을 더듬는다. 그는 바로 문화기획자 김선문(32·남)씨다. 그를 2월 14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17717'에서 만났다.

김씨가 <뿌리깊은나무>를 처음 접한 것은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2009년이다. 처음 펼쳐본 순간부터 <뿌리깊은나무>에 빠져든 그는 전권을 구해 2013년 7월부터 <뿌리깊은나무>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마음에 드는 구절을 낭독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읽기 모임을 진행했지만, 잡지를 읽기만 하고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읽는 것을 넘어 이것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던 김씨는 2014년 12월부터 모임의 방식을 바꿨다. <뿌리깊은나무>의 '그는 이렇게 산다' 코너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을 모임 사람들과 함께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분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실지 궁금했어요. '그는 이렇게 산다' 코너에서 인터뷰하신 분 중에는 언론에 많이 노출된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연극인 이병복 선생님을 만났어요. 원래 인터뷰 요청을 많이 거절하신다고 소문난 분인데 저희가 이런 걸 한다고 하니까 감동받으셔서 흔쾌히 만나주셨어요.(웃음)"

35년 전 '뿌리'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2014년 12월 연극인 이병복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소품들
 2014년 12월 연극인 이병복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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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뿌리깊은나무> '전도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김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폐간한 잡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읽고, 그 흔적을 더듬어가는 이유가 뭘까. 그는 그 답을 <뿌리깊은나무>의 현재성에서 찾았다.

"<뿌리깊은나무>를 보면 지금 우리 세대가 고민하는 것들이 똑같이 담겨 있어요. 예를 들어 서울의 교통체증에 관한 글을 보면 정말 지금이랑 똑같거든요. 지금 세대들은 부모 세대와 많이 단절돼 있는데 <뿌리깊은나무>를 읽으면서 '아, 이미 우리 엄마아빠도 이런 고민을 젊었을 때 했구나' 하는 걸 많이 느끼고, 좀 더 다가가게 되는 걸 느껴요."

김씨는 <뿌리깊은나무> 모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성북동 마을공동체 '성북동천'이 내는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에서 디자인과 사진을 담당하고 있고, 복합문화공간 '17717'의 운영자기도 하다. 이 공간에서는 전시, 공연, 포럼, 워크숍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진다. 하지만 그는 "복합문화공간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2013년 11월 열화당 출판사에서 이기웅 사장님과 김선문씨
 2013년 11월 열화당 출판사에서 이기웅 사장님과 김선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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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는 아무나 와서 흙장난 할 수도 있고,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마을 주민이나 작가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와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이에요. 작가들의 미술품을 전시할 때도 있고, 아니면 제가 모아온 책을 전시하거나 낭송회를 하기도 해요."

김씨가 원하는 놀이터는 단지 젊은 세대들만 어울려 노는 공간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다. 그는 "놀이터에서 우리만 놀면 재미없다"라며 "우리 활동에 어른들이 많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자꾸 <뿌리깊은나무>를 통해 뭔가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유다.

"<뿌리깊은나무>를 내밀면 아무래도 어른들이 더 관심을 갖죠. 이게 없으면 저희가 어떤 전시를 해도 그냥 '전시하는구나' 하고 말 텐데 <뿌리깊은나무>를 보면 좀 '나랑 생각이 맞겠구나. 저 친구가 하는 활동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찾아오고, 교류하게 돼요."

"세대와 세대를 엮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마을 동네 주민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마을 잡지
 마을 동네 주민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마을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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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벌이는 다양한 활동들은 결국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로 수렴된다. 그는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자신의 작업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깐 뒤돌아볼 여유를 제공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자꾸 좋은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미 그 전에도 <뿌리깊은나무>처럼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가 자꾸 앞으로만 나가려 하고,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 스펙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스펙이라는 건 뭔가를 쌓는 거고, 쌓기 위해서는 내가 달려나가야 하는 거고, 그러다보니 지금 이 세상에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잖아요. 그런 현실에 대한 불만을 저희가 작게나마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김씨는 끊임없이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려 한다. <뿌리깊은나무> 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은 그런 장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어떻게 하면 세대와 세대를 만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운 좋게 <뿌리깊은나무>를 발견해서 사람들과 함께 읽고, 운 좋게 문화공간을 발견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가 앞으로 '운 좋게' 무엇을 만날지, 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지는 미지수다.

"제가 지금 하는 활동에 공통점이 있다면 세대와 세대가 어울리는 장을 만든다는 거 같아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세대와 세대가 같이 어우러져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아직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세대와 세대를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가 앞으로 만들어갈 "세대와 세대를 엮는 하나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2014년 6월 '17717' 공간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 모습
 2014년 6월 '17717' 공간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 모습
ⓒ 김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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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모임에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김선문씨 이메일(sunmoonceo@gmail.com)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태그:#뿌리깊은 나무, #김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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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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