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 오후 충무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국내 영화제 집행위원장 간담회.

0일 오후 충무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국내 영화제 집행위원장 간담회.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영화제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함께 한 건, 한국 영화사에서 처음 있었던 일. 그만큼 사전 검열은 심각한 일입니다. 이렇게 해도 영진위가 개악을 한다면, 두 배, 세 배 더 큰 규모의 저항에 부딪힐 거예요."

인디포럼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송희일 감독의 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등급분류면제 개정 방침에 대한 영화계의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 전주 부천 제천영화제 등 국내 50개 영화제들은 11일 성명을 발표해 "영진위의 등급분류면제 추천 개정 방침은 '효과는 모호하고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크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10일 국내영화제 집행위원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등급분류 자동 발급 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대신 일부 조항에 대한 개정 의사를 밝혔다.(김세훈 영진위원장 일보 후퇴? "불씨는 여전") 그러나 국내 영화제들은 "이 같은 방침조차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규정하고 개정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큰 문제가 없던 규정을 왜 바꾸려 해서 구설수 오르나?"

이들은 성명에서 "영진위가 후원하는 사업이 너무 많아서 후원하는 영화제라고 무조건 면제 추천을 해 줄 수는 없다는 논리가 나왔는데 그렇게 면제 추천을 엄격히 했을 때 영화진흥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며 영진위가 이름 그대로 영화진흥을 위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가급적 폭넓게 면제추천을 해주고 그래서 다양한 영화제를 활성화시켜야 할 영진위가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바꾸려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영화제가 활성화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어떤 부작용도 문제가 된 적이 없는 규정의 개정은 실익이 없다"면서 개정 철회를 요구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진위의 개정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큰 문제없이 왔던 관행을 굳이 바꾸려 해서 구설수에 오를 이유가 있냐? 문제가 있다면 민원이 들어갔을 텐데, 지금껏 그런 민원을 넣은 영화제나 영화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진위가 아무리 오해라고 강조해도 그간 큰 문제없었던 규정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시선이다. 국내 영화제들이 이례적으로 영진위 등급분류면제 개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것도 검열에 대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소하게라도 규정을 손보겠다는 자체가 검열을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영화제들의 성명은 10일 영진위원장과의 간담회 결과가 우려를 불식시키기 미흡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세훈 위원장은 10일 간담회에서 행정편의를 위해 일부 조항만을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은 각종 기획전이나 소규모 영화제들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미래포럼 인사 불신도 검열 논란 부채질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문화미래포럼이 펴낸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김종국 영진위원이 저자로 참여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문화미래포럼이 펴낸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김종국 영진위원이 저자로 참여했다. ⓒ 집문당


영진위에 대한 영화계의 불신과 경계감은 2010년의 트라우마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이명박 정권이 독립영화 탄압 논란에 휩싸이면서, 영화계와 영진위는 극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조희문 위원장은 끝내 중도 퇴진했다.

당시 영화계의 갈등에는 뉴라이트 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최근 임명된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김종국 영진위원이 문화미래포럼 활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란 점에서 불신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검열 논란을 부채질 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2010년 혼란에 책임감을 느껴야 될 사람들이 다시금 등장 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영화계의 정서를 이해한다면 스스로가 알아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9일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 출석해 배재정 의원으로부터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문화미래포럼 출신 아니냐"는 배 의원의 지적에 대해 "출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발간하는 책의 저자로 참여한 것 뿐, 회비를 내거나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적극적인 활동이 아닌 소극적인 참여라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름만 올렸던 사람도 있는 상태에서 책의 저자로 참여했던 것은 소극적 참여가 아닌 적극적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불신감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서는 영진위가 영화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논란만 키울 경우 위원장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영화배우 김의성씨는 지난 6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김세훈씨는 영진위원장 그만두세요. 영진위는 영화진흥위원회지 영화말살위원회가 아니예요."라고 영진위원장 사퇴를 주장했다.

성명서 전문

면제 추천 규정, 개정할 이유 없다!

면제 추천 규정을 개정할 이유는 없다. 사상 초유 50여 개 국내 영화제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이것이다. 2월10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제 관계자들과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의 개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영진위는 행정서비스 개선의 차원에서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개선효과는 모호하고 부작용이 생길 우려는 크다는 게 영화제들의 입장이다.

일단 영진위는 그간 논란이 됐던 규정의 제4조 제2항의 자동 발급 조항을 삭제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일정한 기준만 충족되면 허가 절차를 별도로 받지 않고 면제 추천을 자동 발급받는 이 조항이 없어지면 모든 영화제가 매번 영진위의 면제 추천 여부를 기다려야 하므로 모든 영화제가 심각한 우려를 표한 사안이다. 영진위는 자동 발급 기준 삭제는 없다고 밝혔다. 그 동안 벌어진 검열 논란이 여기서 비롯된 만큼 자동 발급 기준을 유지한다는 영진위의 분명한 입장표명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영진위는 개정 자체를 철회하지 않고 일부 자동 발급 기준을 바꾸겠다고 밝혀 향후 논란이 될 불씨는 남겨뒀다. 이는 유감스런 일로 영화제들은 혹시 조항의 변경이 면제 추천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현행 규정에서 자동 발급 기준은 '1. 기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을 받은 적이 있으며 연속 3회 이상 개최된 동일 성격의 영화제 2. 위원회 주최주관후원 및 위탁사업 3. 정부(지차체 포함) 및 공공기관이 주최주관지원후원위탁한 영화제 4. 영화 관련 정규 대학 및 이에 준하는 교육기관에서 개최하는 영화제'이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이런 기준에 따라 면제 추천을 받아 영화를 상영하면서 아무 문제도 일어난 적이 없다. 영진위는 이번에 몇몇 조항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그게 영화진흥이라는 목적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영진위가 후원하는 사업이 너무 많아서 후원하는 영화제라고 무조건 면제 추천을 해 줄 수는 없다는 논리가 나왔는데 그렇게 면제 추천을 엄격히 했을 때 영화진흥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가급적 폭넓게 면제추천을 해주고 그래서 다양한 영화제를 활성화시켜야 할 영진위가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바꾸려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이는 현 정부의 모토인 규제 철폐와도 배치되며 작은 영화제나 다양한 기획전을 위축시킬 수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영화제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지원을 하지 못할망정 행정적 불편만 가중시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영진위는 그 동안 규정 개정의 내용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혼란을 야기했다. 이번에도 영화제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규정 개정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유감이다. 현행 면제 추천 규정은 영화제가 활성화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어떤 부작용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실익이 없는 개정이라면 그만 두는 것이 맞다. 우리는 영진위가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두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15년 2월11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강릉인권영화제, 경남독립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광주인권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 대단한단편영화제, 대전독립영화제, 대한민국대학영화제, 마리끌레르영화제,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서울LGBT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서울노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 원주다큐페스티발,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애니페스트, 인디포럼, 인천여성영화제, 인천독립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인권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제주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50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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