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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지사 등이 쓴 <어머니의 추억>과 송갑석 광주학교 교장이 쓴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이낙연 지사 등이 쓴 <어머니의 추억>과 송갑석 광주학교 교장이 쓴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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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또 다른 삶의 풍경이다. 분야와 종류를 넘어서 삶의 풍경이 담겨있지 않은 책이란 없다. 심지어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외면하는 이론서에도 쉼 없이 학문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좌절과 응전이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있다. 그래서 책은, 단 한 권이라도 버릴 게 없다.

버릴 게 없다고 해서 책이 다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어느 책은 형편없는 깁기를 하고도 저자의 잘 나가는 이름 석 자에 빌붙어 베스트셀러가 된다. 어느 책은 평생 한길을 매진해온 저자와 함께 묵묵히 세상에 나왔다가 세간의 눈빛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잊힌다. 사람이나 책이나 운명이 모질긴 마찬가지다.

아무튼, 책은 삶의 풍경을 담아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져서일까. 정치인들의 저서엔 살아온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엔 늘 '어머니'가 있다. 강제윤 시인이 <어머니전>에서 밝혔듯 "어머니는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신 성인이자 위인"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어머니의 추억> : 어머니, 그 일곱개의 풍경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집필자 대표'인 <어머니의 추억>은 매우 독특한 책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16대부터 내리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하다 전남도지사에 당선한 그가 책 한 권 쓸 역량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 책의 저자 7명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어머니의 추억>은 팔순을 맞이한 어머니를 위해 칠남매가 함께 쓴 기억의 편린이다. 1949년생인 '큰딸 연순이의 추억'부터 1969년생인 '막내아들 상진이의 추억'까지 각기 다른 7개의 추억이 어머니와 함께 흐른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남색 치마에 분홍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여성 한 분을 집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지금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분은 둘째 부인, 즉 '작은 여자'였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겠지만 저희 어머니는 그 '작은 여자'와 중매쟁이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주셨습니다...중략...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어머니께 죄를 지을 수 없다며 떠나셨습니다."
- <어머니의 추억> 18쪽 '큰딸 연순이의 추억' 중에서  

'둘째아들 하연이의 추억' 속 어머니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거나 우는 소리를 내지 않는" 이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안면마비를 겪은 뒤로는 처진 눈꺼풀이 제대로 감기지 않아서 요즘은 늘 눈물을 흘리신다. 둘째아들은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보면서 많이 울고 코를 자주 풀었다, 이제는 내가 울음을 참아야할 차례다"라고 다짐한다.

이낙연 지사
 이낙연 지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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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딸 인순이의 추억' 속 어머니는 친목계를 만들어 "그 곗돈으로 오빠의 등록금을 조달한" '여장부'이거나, 많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남자들 바람 났을 때 질투하면 더해요"라고 충고하는 '마을 카운슬러'다. 그리고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당 2만 원짜리 밭일을 나가는 '장둥떡'이다. 

이 지사는 책을 내면서 "저희들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다"라고 했다. 하지만 혹여 남이 알면 부끄러울 수 있는 기억조차 꾸밈없이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이 책은 더욱 편하게 읽힌다. 국회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 시사주간지가 이 책을 '국회의원이 쓴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한 까닭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께서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음식이 짜졌습니다. 어떤 때는 쓴맛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서도 곧 아시게 됐습니다. 한번은 저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내가 먹어봐도 맛이 이상하다. 너희들도 맛없으면 먹지 마라.' 그 말씀을 하시는 순간의 어머니 얼굴은, 제가 본 어머니 얼굴 가운데서 가장 외로운 얼굴이었습니다."
- <어머니의 추억> 39쪽 '큰아들 낙연이의 추억' 중에서

송갑석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 '광주의 아들'이 써내려간 광주이야기

199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4기 전대협 의장을 맡고 있던 그를 광주사람들은 '광주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아직은 원외 정치인인 송갑석 사단법인 광주학교 교장. 그 역시 어머니에 대한 책을 썼다. 혈육의 모친이 아닌 광주사람들이 '어머니 산'이라고 부르는 무등산을 노래한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가 바로 그것이다.

녹록지 않은 정치인의 길을 걸으며 숱한 유혹을 만나고 많은 훼절의 경험을 봤던 것일까. 어느 날 스며든 무등산 길에서 그는 "소신을 읽었다"라고 고백한다. "소신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서늘한 징표"라는 것이다.

"조선 500년의 숨결이 모두 소신 안에서 나왔고, 소신 밖에서 죽었다. 소신을 목숨처럼 여기던 선비들이 사라진 순간, 조선은 500년 숨결을 멈췄다. 조선의 올곧은 선비들에게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었으며 임금의 하늘 역시 백성이었다."
-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리고 무등산 길에 알알이 박힌 '사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소신의 길을 좇는다. 운명처럼 무등산 역사길은 소신을 지키려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은 의병장 김덕령을 추모하는 사당 충장사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책은 김덕령으로 시작해 김덕령으로 끝난다.

어린이들과 함께 무등산 역사길을 답사하고 있는 송갑석 광주학교 교장.
 어린이들과 함께 무등산 역사길을 답사하고 있는 송갑석 광주학교 교장.
ⓒ 송갑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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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은 음모의 늪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알았다. 그는 옥에 갇혀 한 줄의 시에 결백한 마음을 담았다. <춘산곡 春山曲>이다. 모두가 김덕령의 죄 없음을 알았지만 아무도 김덕령을 변호하지 않았다. 직속상관 권율도 침묵으로 김덕령의 죽음에 동조했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 있거니와
내(川) 없는 이 몸에 불이 나니 무엇으로 끌꼬?'"
-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234~235쪽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김덕령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무등산은 호남 정자 문화의 중심. 저자는 면앙정, 풍암정, 삼괴정 등 무등산 자락에 똬리를 튼 정자들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송순과 김덕령의 동생 김덕보, 금곡동 사람 문병일이 살아간 시대를 가파르게 뒤쫓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른바 '광주정신'의 뿌리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여 저자는 "이곳 광주는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의 영토"라며 "길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다짐하듯 써내려 간다.

"최부의 문장은 거침이 없었다. 방종과 타락을 일삼은 왕 연산군은 최부의 직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왕의 논리로 방어하면 최부는 신하의 논리로 다시 반격했다...중략... 절대왕권의 시대, 너무 강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 최부의 마지막도 그러했다...중략... 연산군은 최부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붕당을 지은 죄를 다시 물어 최부의 참형을 명한다. 최부는 한 줄의 시를 남기고 당당하게 죽었다.

'북풍이 다시 세차게 부는데
남녘 길이 이리 멀까
매화는 차갑게 잔설을 이고
말라버린 연꽃가지 못 속에 서 있네.'"
-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166~168쪽 중에서


태그:#이낙연, #송갑석, #무등산, #광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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