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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내가 사는 아파트의 '부녀회'에서 마련한 입주민 가을 나들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점점 남청빛으로 변해가는 맑은 하늘 아래 만추의 풍경이 도드라지는 날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의 단풍이 흔들어대는 빨갛고 노란 손짓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해마다 한 번씩 갖는 입주민 가을 나들이 행사는 올해로 다섯 번째였습니다. 어느 해인가 단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는 나는 올해도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고장의 큰 문예 백일장의 심사위원장으로서 며칠 동안 수백 편의 글들을 읽고 등위를 가른 다음 심사평 쓰는 일까지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관광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내장산 주차장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길, 노랗고 빨간 단풍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 내장사 가는 길 내장산 주차장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길, 노랗고 빨간 단풍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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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손에 꼭 쥐고...

충남 태안에서 전북 정읍의 내장산까지는 3시간이면 충분한데, 늦게 가면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새벽 6시에 출발했지요.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9시쯤 내장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42명 일행 중 일부는 4시간 코스의 산행에 나서고, 일부는 운전 기사가 가이드를 겸하는 택시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택시 3대씩 한 조를 이루고 산길 요소요소에 잠시 하차하여 내장산의 풍경을 보며 택시 기사의 설명을 재미있게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의 주차장에서 하차한 다음 내장산 박물관을 견학했습니다. 제법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택시기사를 겸한 가이드의 유머러스한 설명을 들으며 배꼽을 잡기도 했지요.

그리고 오전 10시 30분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점심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행 중 일부는 내장사를 보기로 했습니다. 왕복 2시간 코스였습니다. 시끌벅적한 시장길을 관통한 다음 내장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는 매표소를 무료로 통과하였습니다. 2천 원인가를 지출하지 않게 되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고 그대로 통과하면서 '내 나이가 벌써...?' 쓸데없는 비애를 머금기도 했습니다.

만추 무렵이라 나뭇잎이 많이 떨어졌고 또 떨어지는 중이었지만, 아직 찬란한 채색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눈을 시리게 하는 노랗고 빨간 단풍들의 광활한 아우성에 파묻히며 걸음을 떼었습니다. 단풍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구경도 하는 셈이었습니다. 주중인데도 인파가 길을 가득 메운 형국이었습니다.

나는 묵주를 손에 쥐고 걸었습니다. 어디를 걷든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묵주를 손에 쥐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난 4월 16일부터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묵주 기도를 하곤 하지요.

묵주기도를 하며 나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보곤 했습니다. 남녀노소 무수한 사람의 가슴을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포옹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나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내장사에 도착하여 대웅전 앞으로 가서 손에 묵주를 쥔 채로 부처님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예를 올린 다음 불사가 진행 중인 경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대신 많은 사람이 내 가슴을 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는 사람의 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한량 없었습니다.

나이 드신 남자 어른 한 분이 내 가슴의 리본을 보고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의 그 위안을 안고 오후 12시 30분쯤 예약된 음식점에 도착한 직후 나는 음식점의 여주인에게 내 스마트폰의 충전을 부탁했습니다. 이제는 내게도 스마트폰이 세상을 읽는 창구가 되어 있는 탓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은 버스에 올라 김제시 모악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버스 안에서는 노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노래방 기기를 활용하여 모두들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반드시 취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건강 문제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니, 취흥이 날 리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여 가끔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내 한 손에는 묵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일행 중 두어 사람이 내게로 와서 술도 권하고 춤추기도 권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나이 탓이기도 할 터이고, 어쩌면 내 손에 들려 있는 묵주 때문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세상을 읽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에 실린 이명수 심리기획가의 글 '어떻게 골든타임을 거론하나'을 읽으며 또 눈물을 닦았습니다. 다음에는 <오마이뉴스> 기사 '76일 기다렸지만 외면…대통령에게 애걸 않겠다'를 읽으며 또 눈물을 훔쳤습니다. 세월호와 관련한 내 눈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언제나 멎게 될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일행은 모악산의 금산사를 관람했습니다. 나는 미륵전 안의 엄청난 크기의 불상들을 보고 찬탄을 머금으며 법당 밖에서 예를 올렸습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불교 신도들도 있었습니다.

즐기고 노는 가운데... 눈물 훔친 이유

정읍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내장산 고개마루에서 노란 단풍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 내장산 고개마루 정읍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내장산 고개마루에서 노란 단풍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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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오른 일행은 다시 노래 잔치 속으로 함몰해 버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가득 메운 채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나는 노래 내용들과 일행의 흥겨운 춤을 보며 문득 재미있는 생각도 했습니다. 노래는 곡조도 애절하고 한 맺힌 가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노래를 애절하게 부르면서도 흥겹게 춤들을 추는 것을 보니, '우리 민족의 불가사의한 속성이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딱히 뭐라고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의미심장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소란 속에서도 나는 묵주기도를 계속했고, 스마트폰으로 세상 읽는 일도 접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한겨레>에서 매일 한 명씩 소개하는 식으로 연재하는 기사, 세월호 속에서 희생된 열일곱 살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 그림과 엄마의 편지와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눈물을 흠치곤 했습니다. 지난 4월 16일로부터 204일이 지나고 있지만, 내 눈물샘에서는 여전히 '세월호 눈물'이 무시로 솟구치곤 하는 것입니다.

버스 통로를 가득 메우고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신나게 춤을 추며 노래를 즐기고 있는 한편 에서 묵주 기도나 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늙은 사내가 있다는 것은 누가 보면 진풍경일 터이고, 언밸런스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는 않지만, 어찌 생각하면 일행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버스 안의 42명 일행 중에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자리, 즐거운 시간 안에도 누군가는 뭔가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는 버스 안의 일행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무아의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깨어 있듯이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모두가 일사불란 속으로 함몰해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불현듯 꼭 지켜야 할 가치로 내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를 구조하는 일에 국가의 공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전력투구를 하지 않은 사실을 떠올리면 집단 안의 깨어 있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자니 나는 더욱 묵주기도에 열중하게 되더군요.

세월호의 희생자들과 유족들과 오늘의 이 버스 안의 일행들을 위한 기도이기에... 그래서 나로서는 더욱 의미롭게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하는 가을나들이 행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태그:#내장산, #가을나들이, #세월호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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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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