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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남녀 임금격차가 극심하다. 10년 넘게 오이시디(OECD) 11개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고 한다. 오이시디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근 수치가 집계된 2012년 기준으로 남녀 임금격차가 37.4%였다. 남성 노동자가 한 달에 100만 원을 벌 때 여성 노동자는 그보다 37.4% 낮은 62만6000원을 받는다. 오이시디 평균은 10%대 중반 수준이라고 한다.

남녀 간 임금격차는 전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성별에 따른 직무 특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떨까. 한 사람이 있다. 남성 동기 몇 명과 함께 입사한 여성 노동자다. 그들은 수십 년간 모두 똑같은 일을 했다. 여성 노동자는 직무평가에서 남성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 어느 날 내 연봉이 남성 동기들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부당한 차별이다. 억울하다. 법적 수단을 활용해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다. 문제의 당사자는 고용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다. 여성이다. 더구나 상대방은 '슈퍼 갑질'을 맘껏 할 수 있는 거대기업이다. 해고 위협과 생계 불안의 공포를 극복하면서 법에 호소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분하고 모욕적이지만 속으로 조용히 삭이는 게 상책이다.

무릎이 기계에 끼는 사고까지 당하며 관리자 됐지만...

<기나긴 승리> 책표지
 <기나긴 승리> 책표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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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승리>의 저자 릴리 레드베터는 그렇지 않았다. 금발의 백인 여성이었던 저자는 1979년 꿈꾸던 굿이어 타이어 공장에 지원해 최초의 여성 관리자가 되었다. 저자는 회사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심정으로 일에 열정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굿이어에서의 생활은 나날이 고통과 시련으로 얼룩졌다.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된 육체적인 업무와 열악한 노동환경이 저자를 괴롭혔다.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고, 무릎이 압착기계 사이에 끼는 치명적인 사고도 당한다.

저자가 그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1차 해고 후 재입사하게 되었을 때 저자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내가 돌아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있었다. 내게 주어진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적응력과 대응력이 나를 희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정적인 경험을 아주 사소하게 치부했고 그 대신 작은 친절의 몸짓이나 말에 큰 의미를 부여했으며 굿이어의 경영과 정책을 최대한 존중했다. 하지만 자주 나는 스스로가 나의 현실에서 유리되어 있다고 느꼈다.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 왜 우리는 생존하기 급급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충만한 삶의 방식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157~158쪽)

저자가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차별이었다. 남성들의 언어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상사들의 노골적인 신체 접촉도 다반사였다. 그것들을 거부하자 남성들은 야비하게도 부당한 업무평가로 저자에게 복수했다. 입사 후 2년째 되던 해 저자는 상사의 성희롱에 대해 국가기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성희롱 문제는 대충 처리됐지만 저자에게는 '말썽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 직후 굿이어는 업무평가에 근거해 연봉을 주는 성과급 제도를 시행했다. 입사 시 남자 관리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받았던 저자는 우수한 업무평가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최초 입사 후 거의 20여 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사물함에 놓인 쪽지 한 장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쪽지에는 저자와 타이어실에 근무하는 남성 관리자 세 명의 임금이 적혀 있었다. 저자는 그들보다 40% 적은 돈을 받고 있었다. 가장 적게 받는 남자 관리자가 4286달러를 받을 때 저자는 3727달러를 받았다. 가장 많이 받는 관리자와는 1500달러 이상이나 차이가 났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22만 달러(한화로 약 2억 원)를 잃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가장 화났던 것은 오히려 일어날 수 있었던 일에 관해서였다. 굿이어가 나를 관리자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더 많은 일을 해냈을 것이고, 더 헌신했을 것이다. 타이어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공장을 일하기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나보다 뒤에 일하게 되었을 여자 직원을 위해서도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오랜 세월 동안 회사는 나를 없애려고만 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살아남기 위한 것뿐이었다. (217쪽)

저자의 공식적인 근무 시간은 8시간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거의 항상 12시간씩 일했다. 작업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저자는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안 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배우기를 멈추지도 않았고, 절대 포기하는 일도 없었다"(217쪽) 그만큼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저자를 무겁게 짓눌렀다.

평범한 여성 노동자, '평등 임금의 할머니' 되다

평범한(!) 저자는 참고만 있지 않았다. 법적 자격을 확인한 그녀는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10여 년에 걸친 법정 소송 결과는 2 대 1. 미국 사법부는 1심에서 그녀에게 320만 달러의 손배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했으나 2심(항소심)과 3심(연방대법원)에서 굿이어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자는 절망했으나 굴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고, 희귀암을 앓던 남편을 잃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20여 년을 송두리째 앗아간 법의 맹점을 가만히 두고만 있지는 않았다. '평등 임금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된 저자는 마침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최초로 서명하게 된 <공정임금법(The Paycheck Fairness Act)>(약칭; <2009 릴리레드베터 공정임금법>)의 산파가 된다. 저자를 그렇게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1979년 굿이어에서 일을 시작할 때 나는 대법원이나 의회 법안에 내 이름을 올릴 거창한 계획 따윈 없었다. 나는 단지 열심히 일해서 내 가족을 부양하길 원했다. 나머지 일은 알아서 잘될 거라 믿었다. … 하지만 가끔 삶은 내게 커브볼을 던진다. 우리는 그것들을 바라지도 않았고 예상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그것을 해결해내야 한다.

그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난 후, 나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시험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불의를 본다면, 가만히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우겠는가? …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 하나로 우리는 각자 매일 여성과 소녀들 앞에 가로놓인 벽돌을 부순다. … 나는 레드베터법이 미래 세대에게, 나는 보지 못하지만, 내 손녀와 증손녀들이 보게 될 모든 세대의 여성과 남성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342~343쪽)

2012년 9월 4일, 미국 북캐롤리나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릴리 레드베터가 연설하고 있다. '릴리 레드베터 평등 임금법'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2012년 9월 4일, 미국 북캐롤리나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릴리 레드베터가 연설하고 있다. '릴리 레드베터 평등 임금법'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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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릴리 레드베터'가 있다. 회사를 (가짜이지만)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진짜 가족을 희생시키는 일에 기꺼이 몰두하는 평범한 노동자들 말이다. 서글픈 사실은 회사에 대한 몰두가 바로 희생되는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역설이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가족들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 함께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모든 일이 있은 뒤에 굿이어의 사람들은 대체 뭐라고 할 것이며 어떻게 반응할까? 누군가는 내가 좋은 관리자였고, 내가 생산 목표를 달성했고, 회사 일을 잘했다고 말해줄까? 누군가는 내가 당연히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할 테지, 그런데 누가 어떤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이 있나? 당시 날 괴롭혔던 건 다른 물음이었다.

살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181쪽)

저자를 이처럼 삶의 회의와 고뇌에 빠지게 한 건 그만의 독특한 성정 때문이 아니었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임금차별을 알게 된 후 진실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그 과정에서 정치가 복잡한 정의 체계와 엮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과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용감한 개인의 의지 못지 않게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정치와 법이 중요함을 환기하는 말이 아닐까.

저자는 대법원에서 패한 후 상식을 벗어난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날린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한 채 기업(가)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판결을 즐겨 내놓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처럼 들려왔다.

내가 이야기 나눈 대부분의 사람은 내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어했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원했다. 그들은 판사들이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 또는 어떤 대통령이 판사들을 임명했는지, 어떤 상원의원이 어느 판사에게 투표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법으로써 옳은 일을 하려 애쓰고, 법이 가족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꾸리려고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판사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판사들은 상식을 발휘해야 하고, 법을 만든 사람들이 법이 공평하고 분별 있는 것이 되도록 노력했으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달린 문제다. (312쪽)

덧붙이는 글 | <기나긴 승리>(릴리 레드베터.리니어 스콧 아이솜 지음, 이수경.김다 옮김 / 글항아리 / 2014. 9. 29. / 375쪽 / 16,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기나긴 승리 - 골리앗과 투쟁한 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

릴리 레드베터 외 지음, 이수경 외 옮김, 글항아리(2014)


태그:#<기나긴 승리>, #릴리 레드베터, #공정임금법, #남녀 임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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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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