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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상동 정화우방팔레스아파트 뒤편 청동기유적지의 고인돌
 대구 수성구 상동 정화우방팔레스아파트 뒤편 청동기유적지의 고인돌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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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청동기 시대에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청동기 시대를 상징하는 고인돌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대구에 있었던 고인돌은 무려 3천여 기!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대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강화 등지보다도 더 많은 고인돌이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 고인돌들은 1945년 해방 전후 시기에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정원을 꾸미는 데 쓰려고 마구 가져갔고, 해방 이후에는 도시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없애버렸다. 그들이 남아 있다면 대구는 세계적 청동기 관광지로 존재의 가치를 뽐내게 되었을 텐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대구에 현존하는 고인돌 유적지 중 볼 만한 곳은 여러 군데이다. 지하철 대구역 칠성시장 출구의 칠성바위 고인돌은 돌마다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화원읍 대구교도소 뒤쪽 담장옆과 화장사 사찰 안팎에 널려 있는 고인돌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담장에 고인돌들이 박혀 있어 보는 느낌이 이채롭다. 

그런가 하면 달성군 가창면 냉천동 제일교회 뒤편 고인돌은 주변 정리가  깔끔하다는 점에서 여느 유적지 이상으로 답사자들을 흐뭇하게 해준다. 그래도 오늘 필자는 수성구 상동 정화우방팔레스아파트 뒤편의 청동기 유적지를 첫손가락에 꼽히는 청동기 답사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상동 정화우방팔레스 뒤편 청동기 유적지
 상동 정화우방팔레스 뒤편 청동기 유적지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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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난 날 <국정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곳이다. 왜 실렸을까? 교과서는 '신석기 시대에는 움집 가운데에 있던 화덕이 청동기 이후에는 한쪽 벽으로 옮겨간다. 저장 구덩이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노출시켜 만들었다'는 설명 부분에 상동 유적지를 거론했다. 불 땐 흔적이 남아 있고,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 흔적도 볼 수 있으니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동 유적지를 찾았을 때에는 반드시 고대인들이 불을 피운 자취가 어디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의 차이도 꼭 확인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곳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집과 고인돌 아래를 개방해 두었다. 비바람에 유적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두꺼운 유리로 덮어두었음은 물론이다.

야수정
 야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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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에는 190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이 한 채 있다. 청동기 집터 유적지에서 대구한의대 뒤편 담장을 따라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진(秦)씨 문중의 재실인 이 집 야수정은 우리의 전통적 건축양식이 천정, 전면 유리창문 등에서 일본식으로 일부 변해간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대구시 문화재자료 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주인이 직산서당으로 운영 중이다. 주소는 상동 140-4번지이다.

야수정에서 신천 강변으로 나아가면 이서공원이 나타난다. 이서공원이라는 이름은 1776년(정조 1)에 대구판관으로 부임해온 이서라는 관리에게서 유래했다. 이서는 부임 2년차인 1778년 대구 중심부가 자주 홍수에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사재를 털어 둑을 쌓고 물길을 바꾸는 등 공사를 벌여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은 그를 기리는 이공제비를 세웠던 것이다.
   

이공제비는 본래 수성교 인근에 세워졌다. 그 후 1808년, 주민들은 본래의 비가 초라하다고 여겨 다시 비석 하나를 옆에 세웠다. 다시 1971년, 비석이 있던 제방 위로 도로를 넓히면서 비석들은 제자리를 잃고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나무를 심는 등 비석 주변을 정비한 다음 이성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서 공원
 이서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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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 한 곳에서 국사교과서에까지 수록되었던 청동기 유적, 일제 강점기로 나아갈 무렵에 건축된 일본풍 주택 한 채, 사재를 털어 백성들의 생활을 보살핀 조선 시대 관리의 실천하는 선비상을 보았다. 이렇듯, 우리의 주변에는 생각해볼 만한 문화유산들이 널려 있다. 꼭 멀리 있는 유명지만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도 볼 만하고, 생각해볼 만한 선조들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겠다.

게다가 어느 동네나 인근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상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동교 건너 고산골로 들어서면 공룡발자국도 있고, 원삼국 시대의 토성 흔적인 용두산성도 있다.  또 법장사에는 대구시 문화재자료 5호인 통일신라 시대 삼층석탑도 있다. 결론은, 집 인근의 역사유적지부터 애정을 가지고 찾고, 이어 이웃동네의 볼 만한 답사지들을 찾아다니자!

고가도로 위로 짙게 보이는 용두토성 터(사진 중에서 맨앞의 봉우리)
 고가도로 위로 짙게 보이는 용두토성 터(사진 중에서 맨앞의 봉우리)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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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인돌, #이서, #용두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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