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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곤 교수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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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7시,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도서관에 작은 강의실이 마련됐다. 강의실은 소박했다. 칠판이 없어 종이 몇 장을 책장에 덧댔고, 준비한 유성매직펜은 잉크가 떨어져 수시로 바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에 참석한 30여 명은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사는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대표였다. 사람들에게는 '고려대에서 해고된 시간강사'로 더 잘 알려진 김영곤 교수는 이날 '한국 노동사와 사회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1시간 30분가량 강의했다. 이날 강의는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부당해고 강사들의 릴레이 대중강연회 '빼앗긴 강의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시간으로 마련됐다.

"한국 사회, 공장제 자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김영곤 교수는 세계의 노동사를 네 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수렵과 채취, 농경과 축산, 공장제 자본주의, 공동체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가 공장제 자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보았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투쟁의 구호는 "함께 살자"였다. 지난 겨울의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은 자신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철도민영화 문제에 대한 목소리였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과도기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서 애쓰는 유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그분들의 자식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노력하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남의 자식을 살리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김영곤 교수는 이어서 세계노동사와 한국노동사를 비교했다.

"유럽에서 수백 년에 걸쳐서 일어난 노동 관련 변화가 한국에선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이뤄졌어요."

한국노동사의 특징은 노동조직의 변화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는 철도 등의 공공재를 국유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선 민영화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나 공기업에 대한 인식이 낮고 UN 등 세계정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것 또한 한국의 특징이다.

"하지만 공장제 자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나아간다는 커다란 흐름에 있어선 한국도 같다."

김영곤 교수는 질문을 통해 참여를 유도하며 청중을 집중시켰다. 세계정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즉석으로 세계대통령 투표를 가정해 후보를 추천받아 대통령을 뽑기도 했다. 후보로는 간디, 호치민, 세종대왕, 넬슨 만델라가 추천됐고 거수를 통해 간디가 세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강연의 마지막은 한국 사회운동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김영곤 교수는 이 대목에서 협동과 실천을 강조했다.

"지금은 다들 '경쟁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협동해야 살 수 있다'로 바꿔야 한다. 실천 역시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민중의 의지가 강력한 대신 지도자와 지식인의 실천의지가 약한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경쟁해야 산다는 생각, '협동해야 산다'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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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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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30분 동안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민중과 통일 등 다양한 주제의 질문을 던졌다. 이 가운데 최종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대학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나 호응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데, 변화의 시발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김영곤 교수는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대학 강의가 개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개선의 주요 부분으로 꼽은 것은 비판의 허용, 교원 1인당 학생 수 감소, 절대평가 도입 등 3가지였다.

"강의를 할 때 학생 수가 20명이 넘어가면 교수가 학생들에게 활발한 토론을 장려하기가 힘들다. 교원 한 사람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줄고 절대평가가 도입된다면,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사회에 대한 인식도 높아질 것이다."

고려대 건축학과에 다니는 곽승찬(21)씨는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일한다. 생활도서관은 이번 강의를 기획한 주체 중 한 곳이다. 그는 "학기 중에도 해고강사들의 투쟁과 관련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 방학에는 그걸 좀 확장해서 해고강사 문제에 관심이 적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며 릴레이 강연회의 기획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 강연회는 26일, '혁신유림과 조선 사회주의'라는 제목으로 성균관대 해고강사인 류승완 교수가 강의한다.

김영곤 강사 인터뷰

- 오랜만에 강의를 하는데 소감이 어떤지? "설렌다. 선생님은 강의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2012년 11월까지 강의를 하고 해고됐다. 작년에 고려대학교 몇몇 단과대학교에서 준비했던 특강 '0학점' 강의를 한 이후 1년 만에 학생들 앞에 선다." - 부당해고 시간강사를 응원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연대의 결과는 강의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인정받은) 1급 강사들을 해고했다.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수업이 없어졌다. 학생들은 교육권과 학습권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학생들이) '0학점' 강의를 주최했던 것은 권리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유를 간략히 설명해달라.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유신반대를 외치는 교수와 강사가 대거 해고됐다. 이후에도 강사와 학생이 정부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강사의 교원 지위를 박탈했다. 그러면 강사들은 눈치를 보고 (정부에) 비판적인 강의는 할 수 없게 된다. 학생들이 비판적인 질문을 했을 때도 답을 못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없는' 수업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비판적인 수업을 위해)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 강사들의 교원직을 회복해야 한다. 지난 2011년 개정되어 2016년 1월 1일 시행예정인 고등교육법에 '강사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 연금법 적용을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니한다'가 빠져야 한다. 그래야 강사가 완전한 교원이 된다." - 농성을 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꼽아보자면? "좋았던 점은 시간강사를 응원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힘든 것은 인격적으로 눈치가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 서정민(조선대 강사 2010년 자살) 박사가 '논문을 대필했다'고 폭로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대필은 관행'이라는 얘기였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려가 되어 화도 잘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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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해고 대학강사 릴레이 대중강연 '빼앗긴 강의실에도 봄은 오는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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