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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와 녹색당의 지지율 상승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인류 최대 재앙에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반대편 독일이었다. 25년 전 1000km 떨어진 구 소련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독일은 비록 수 천 km 밖에서 일어난 사고이지만,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 선진국 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면, 독일의 핵발전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위성사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위성사진
ⓒ 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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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있었던 2011년 3월 27일의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는 정치권에 후쿠시마 후폭풍을 몰고 왔다. 전후 60년간 보수적인 성향의 기독민주당에서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던 주지사 자리를 녹색당에 내 준 것이다. 녹색당은 1980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주지사를 배출하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10년 메르켈의 핵발전소 수명연장 강행 직후 20%까지 치솟았던 녹색당의 지지율은 후쿠시마 이후 계속해서 상승, 은퇴한 대중 정치인인 요쉬카 피셔가 복귀한다면 다음 총선에서 메르켈을 대신해 녹색당 총리가 배출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까지 만들어졌다.

녹색당의 현실적 판단

한편, 후쿠시마 사고로 메르켈 총리는 정치적 직격탄을 맞았다. 2010년 가을 일방적으로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결정한 탓에 현 정부에 불리한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던 차에 발생한 후쿠시마 사고는 독일을 탈핵 정국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당시 스페인산 오이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EHEC 대장균 바이러스 때문에 10여 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은 후쿠시마 사고와 독일 핵 정책으로 채워졌다. 메르켈 총리는 매우 빠른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결정한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반 년 만에 철회한 것이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는 공영 라디오 방송의 비아냥거림을 감수한 매우 신속한 결정이었다.

이에 대한 녹색당의 대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르켈 행정부가 제시한 '2022년 이내 17기 핵발전소 전체 폐쇄안'에 대해 당내에서 매우 치열한 토론을 벌였는데, 그 결과는 메르켈이 제시한 내용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독일은 아무리 야당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집권 여당이 제시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녹색당 내부 논쟁이 대부분의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매우 중요했던 이유는, 보다 빠른 탈핵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그만큼 컸고, 이를 대변할 대중 정당은 녹색당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시민들의 조속한 탈핵 요구 대신, 정부 여당에 늘 반대만 외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메르켈의 탈핵 제안에 '통 크게' 화답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녹색당의 이런 현실적인 결정 이전만 해도 그해 가을 열릴 베를린시 지방 선거에서 녹색당 시장이 탄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17.6%의 득표로 3위에 머무는데 그쳤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녹색당은 정국의 주도권은 고사하고 별다른 선명성 없는, 그저 그런 정당으로 전락했다.

"모든 것을 다 먹는" 보수 여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해 독일 총선을 며칠 앞둔 9월 18일, 당시 베를린에 머물던-지금은 은퇴한- 손학규씨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진보언론인 차이트(Zeit)의 테오 좀머 대편집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불통과 권위적인 국정/정당 운영으로 표현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손학규의 은퇴는 매우 애석하다.) 이미 기정사실화된 메르켈 3선에 대한 테오 좀머의 답변은 날카로웠다.

"메르켈은 모든 것을 다 먹는다(Merkel isst Alles)"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집권 여당은 보수당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정책까지도 다 받아들이는데, 정작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사민당이나 녹색당에서는 어떠한 정책적 차별성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징집제 폐지, 핵폐기 결정, 최저임금제 도입이 그것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민당이 이 정책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도 예상치도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다루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한 맺힌 요구 대신 새누리당과의 '합의'에 집착한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결정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천인공노할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어떠한 역할도 못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 코스프레를 내세운 새누리당에 두 번의 선거를 지고도, 그리고 심지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당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한 맺힌 절규를 흘려보내는 제일 야당. 이 당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당이며, 누구의 지지를 기대하는 것일까?


태그:#세월호 특별법, #독일 녹색당, #새정치민주연합, #탈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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