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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낮 12시 30분께 땡볕이 내리쬐는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성장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분주했다. 가족대책위원들은 중앙 잔디밭에 꽂혀 있던 바람개비와 펼쳐져 있던 종이배를 박스 안에 넣었다. 유가족들은 천막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빛바랜 노란 리본을 거뒀다. 광화문 광장 옆에서는 시민들이 천막 한 쪽을 덮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하얀 천 위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아크릴 물감으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자를 쓰고 있었다.

'편한' 농성장으로 탈바꿈 할 광화문 농성장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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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시민들에게 '광화문 국민 휴가'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가족대책위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이틀간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기간인 8월 1일부터 15일까지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찾을 수 있도록 농성장을 깔끔하게 만들고 밝은 분위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광화문 농성장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는 평이다. 바닥은 은박 돗자리가 깔렸었고 천막은 비닐로 덮여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졌으나 천막 간 구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가족과 동조 단식을 하는 시민이 섞여 지내기도 했다. 또 시민 쉼터에는 대책위의 소지품이 쌓여있고 '쉼터'라는 알림판이 없어 찾는 시민들이 별로 없었다.

이에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유가족이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시민들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농성장을 만들기 위해 '광화문을 그리다'를 계획했다. 광화문 농성장의 천막마다 이름을 붙여 시민들이 천막마다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총 8개의 천막에 '행동하는 방' '기억하는 방' '진실카페' '유가족 단식장' '국민동조 단식장' '쉼터' 등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특히 평상, 파라솔, 벤치를 마련해 이전보다 시민들이 편안한 분위기로 지낼 수 있게 계획했다.

31일 광화문 광장에는 20명의 시민이 찾아와 '광화문을 그리다'에 참여했다. 더운 날씨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나중에는 30명으로 늘었다. 이날 자원봉사에 나선 시민들은 각 천막에 붙일 큰 그림을 그렸다. 또 천막 위에 덮을 지붕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도 진행했다.

이들은 가족대책위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페이스북 글을 본 이들의 권유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지선 '광화문을 그리다' 기획팀장은 "화요일 새벽에 급하게 자원봉사 분을 구한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틀 만에 30명 정도 연락을 줬다"라면서 "아무도 연락 안 주면 어떡하나 생각했는데, 종교단체에서도 자원해서 오겠다고 해서 감동이었다"라고 말했다.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특별법' 제정돼야"

광화문 그리다 완성도면
 광화문 그리다 완성도면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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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자원봉사를 온 시민들은 7·30 재보궐 선거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금방 친해졌다. 이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확보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페이스북을 보고 '광화문을 그리다'에 참가 신청을 한 이아무개(37, 프리랜서)씨는 "평소 집회나 이런 건 마음이 아파서 참여를 잘 안 했다"라면서도 "하지만, 그림 그리는 건 자신 있어서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야당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위축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곳에 더 오고 싶어졌다"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이번 행사에 참여한 박영아(32, 직장인)씨도 "단식, 서명, 농성 말고는 유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활동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했다"라면서 "(7·30 재보궐선거 결과 야당이 패배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늦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광화문 광장에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누가 (선거에서) 이기느냐는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이곳에서 단식하는 유족을 보니, 특별법이 빨리 통과되면 좋겠다"라고 주장했다.

노하니(22, 대학생)씨도 "세월호 참사 문제는 정치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면서 "7·30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져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여기에 올 때 고민이 많았는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특별법에 대해 생각하는 게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약속' 하고 커피 받아가세요"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광화문을 그리다' 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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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그리다' 행사 이후 만들어질 '나눔카페'는 자원봉사자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장 기대하는 공간이다. '나눔카페'에 시민들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커피를 제공할 예정이다. '나눔카페'를 찾은 시민들은 '약속수표'를 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약속수표는 약속을 하고 받는 수표로, '세월호 농성장에 두 시간 동안 유가족들과 있기'나 '친구 10명에게 세월호 특별법 알리기' 등의 약속을 쓰고 받는 수표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18일째 단식농성 중인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광화문을 그리다' 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김영오씨는 "7·30 재보궐선거 결과 때문에 오늘(31일) 눈을 뜨면서 속상했지만,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것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8일 촛불집회 이후부터 (시민들이) 이곳(광화문광장)을 더 많이 찾아오고 있다"라면서 "찾아주는 시민과 오늘 이렇게 자원봉사를 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끝까지 두려울 것도 없고, 오히려 끝까지 버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태그:#세월호 참사, #광화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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