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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우리땅의 백두산을 가볼 수 있을까?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장백산문을 나서면서 수천 수만의 백두산 관광 인파를 보면서 "저것이 모두 돈인데? 북한의 김정은이 이런 모습을 봐야 하는 데? 그리고 북한에 백두산 관광코스를 만들어 개방하면 외화도 벌고,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할 텐데? 언제쯤 통일이 되어 우리 땅의 백두산 천지를 볼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연길로 돌아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생태 용정"

숙소는 연길 역근처의 무궁화 4개짜리 나름 고급 호텔이었으나 시설이 노후하고 청소 상태가 심히 나쁘다.하지만 우리는 "여기는 중국이니까?"  라는 한마디로 이해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정은 일제 강점기 조선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같았던 용정과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도문시의 두만강을 구경하기로 했다.

용정중학교 입구의 시비..
▲ 윤동주 시비 용정중학교 입구의 시비..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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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 교육의 요람..
▲ 대성중학교 민족정신 교육의 요람..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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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 정도를 달려 "생태 용정" 이라는 시 입구의 큰 간판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느 자치단체에서 컨닝해 온것 같다는 동생아내의 말이 공감이 간다.
우선우리는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선생이 다녔다는 대성중학교 교실과 기념관을 복원해 놓은  용정중학교에 도착했다.

대성중학교의 윤동주 선생 공부하던 교실 재현
▲ 윤동주 시인교실(재현) 대성중학교의 윤동주 선생 공부하던 교실 재현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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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삼성 지역은에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연유는 ?.. 청나라 말기 북한땅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이 농토가 부족하여 드넓은 농토를 찾아 처음에는 아침에 두만강을 넘어가 농사를 짓고 저녁이면 돌아오던 것이, 나중에는 봄에 두만강을 넘어가 농사를 지어 가을에 돌아오는 식으로 터전을 잡아가다 점차적으로 정주하게 되었다고한다.

그런 이곳이 조선이 일제에 침탈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자존을 부르짖는 선각자들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 모여 들게 되었고, 이런 선각자 중의 한사람인 보제 이상설 선생이며 그가 개숙한 서전서숙이 조선족 교육의 요람이 되었고, 후에 서전서숙이 모태가 되어 1926년 대성중학교가ㄹ로개교되어 수많은 민족지도자를 배출하게 되었는 바, 독립운동의 전진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정이 낳은 인물들
▲ 기념관 안에서 용정이 낳은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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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용정출신의 민족 지도자는 민족시인 윤동주. 애국투사 송몽규. 영화인 라운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문익환 목사 등이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애환을 노래한 비목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일송정과 혜란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친일파로 분류 된다고 한다.

아무튼 용정의 독립운동 유적지등을 둘러 보는 것은 중고등학생인 두 조카에게 좋은 여행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두만강 국경지대로 이동하였다.

북-중-러 국경인 두만강으로

용정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려 폭이 좁은 곳은 50m 정도 밖에 안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3국의 국경이 접한다는 도문시이다.

예약된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는 데 행세깨나 하는 듯한 현지 가족이 강아지를 데리고 식당에 들어오겠다.는 주장과  들어오면 벌금 문다는 종업원과 한바탕 소동을 구경하며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글이 먼저입니다.
▲ 도문시의 간판 한글이 먼저입니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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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후 두만강변으로 이동하여보니 우선 김정구 선생의 "두만강 푸른물이~~~" 노래가사의 상상은 사정없이 깨져 버린다. 온통 시뻘건 흑탕물이다. 상류의 철광석 광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이라고 하며 강폭이 좁은 곳은 우리동네 성내천 폭만 한곳도 있어 너무 실망이다.

두만강 푸른 물은 옛말입니다.
▲ 두만강 물은 흑탕물 두만강 푸른 물은 옛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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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중국 어디를 가나 관광객들한테 돈 받아내는 것이 혈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실감하는 기회가 여기에도 있다. 조그만 뗏목같은 배를 타고 약 200m를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1인당 2만원씩을 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 또 와볼것인가? 하면서 배에 올라 "두만강!~~ 황톳물에!~~" 하고 흥얼거리며 웃고 만다.

두만강에서 1인당 2만원짜리 뗏목배를 타고
▲ 두만강 뱃놀이? 두만강에서 1인당 2만원짜리 뗏목배를 타고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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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잘것 없는 두만강이지만 북한과의 국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한국의 관광객이 많다. 관광객 등을 위해서 강변에 설치된 각종 안내석들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된것을 보고  여기에도 친일파가 남아 있는 것인가? 하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을 누군가 훼손...
▲ 두만강변 표지석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을 누군가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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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는 중국속의 작은 대한민국

두만강 국경 구경을 마치고 연길로 다시돌아와 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연길시의 대표적 공원이라 하는 진달래 공원을 둘러 보았다.  드 넓은 공원이 우리나라 공원에 와 있는 듯하다. 노래방기기를 설치해놓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데 소양강처녀, 섬마을 선생님등 모두가 귀에 익은 우리나라 대중가요다. 이용시민 대부분 또한 우리민족이고 젊은 층보다 장년층이상과 어린이이며, 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 공원으로 요즘같은 더운 날씨에 저녁만 되면 수천의 시민들이 모여 든다고 한다.

연길시내 대표적 공원 진달래 공원에서
▲ 진달래공원 조형물 연길시내 대표적 공원 진달래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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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조선족이 약 8000만명이 있다고 하며 대한민국에 5천만.북한에 2천5백만. 미국에 205만. 그리고 중국에 약 192만이 살고 있다는 데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른바 동북삼성이라고 하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97%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길림성에 115만 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길림성 115만명 중 연변 자치주에 80만이 거주하고 있다하니 이곳은 중국속의 우리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앞에는 관중이 없음.
▲ 중국 노래를 하는 노래기기 앞에는 관중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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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만 되면 공원에 이런 공연이...
▲ 진달래공원의 사물놀이 저녁만 되면 공원에 이런 공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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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기기를 가지고 나와 한국가요를 부르며 즐겨하는 모습
▲ 진달래 공원의 야외노래방 노래방 기기를 가지고 나와 한국가요를 부르며 즐겨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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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정책을 통해서 고구려. 발해의 문화말살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 할만도하다. 우리도 우리나라와 흡사한 조선족자치주 연변을 그냥 중국땅이라고 방치 하지말고 민간차원에서라도 지원을 하도록 하여 민족자존의식을 고취시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연길시의 야간 경관 조명에 매료되다

어둠이 깔리자 숙소로 귀환 하는 도중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야간 조명이 장관이라는 연길시를 가로지르는 브르하통강에 있는 청년광장을 구경하기로 하고 현장에 도착하니 사회주의 냄새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남녀들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화려한 야간 경관조명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화려한 야경은 모든 사람의 경탄을 자아낼 만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또 다른 모습을 만끽하고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고 되내이며...

야경 1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 야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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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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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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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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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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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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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두산 여행에서 느낀바를 이렇게 적어봅니다.

1. 식당 같은 곳에서 중국돈과 한국돈을 놓고 어느걸 드릴까요? 하면 서슴없이 한국돈을 달라하고. 대부분 간판들이 한글로 우선 쓰고 그 아래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리나라 위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2.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동북삼성에 대해 문화적 지원을 하여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3. 고려말 이성계가 요동정벌에서 회군을 하지않고 정벌에 성공했다면 또 정도전의 요동정책이 성공 성공 했다면 다 우리땅인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태그:#연변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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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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