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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설 <삼국지>와 친해진다. 삼국지 속의 지명인 탁주, 낙양, 허도, 적벽, 신양, 성도, 관도, 이릉 등을 만나면서 삼국지의 기억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삼국지 경영학>을 쓴 최우석 삼성 부회장의 중국 답사를 안내했으니 <삼국지>는 나에게도 가장 인상적인 중국의 문화 코드 중 하나가 됐다.

<삼국지>를 안다면 중국에서 가장 알찬 이야깃거리 하나를 확보한 셈이다. 중국인에게도 <삼국지>는 가장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소설은 물론이고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 등을 통해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마오쩌둥은 <수호지>에 대한 애착이 있었지만, <삼국지> 역시 옆에 두고 애독했다.

무후사에 있는 의중도원 도원결의를 통해 삼국지는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무후사에 있는 의중도원 도원결의를 통해 삼국지는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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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삼국지>를 안다는 것은 중국인들과의 공감대를 넓혀주고, 서로를 한층 가깝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왜 좋아하고,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우선 <삼국지>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군벌 시대를 지나 해방으로 가는 시기는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시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이들은 끊임없이 반간계와 주도권을 다투는 대결을 해야 했다. 이는 한·중·일 등 국제관계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중·일 삼국은 3국 정립(鼎立)기를 놓고 볼 때 한국은 촉, 중국은 위, 일본은 오나라를 닮았다.

우선, 한국은 대의명분과 덕을 갖춘 지사의 나라다. 촉은 도원결의를 통해 사람을 얻고, 삼고초려를 통해 인재인 제갈량을 얻었다. 비록 탄생도 늦고 규모도 작았지만, 인재는 많았다. 이런 힘은 유비의 정통성과 덕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도 인재가 많은 나라다. 초강대국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인재를 바탕으로 3국 정립의 한 축이 됐다. 그런 면에서, 촉처럼 쓰촨 같은 안전한 땅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을 촉에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촉, 중국은 위, 일본은 오나라 닮았다?

유비를 찾아 떠나는 관우를 보내는 조조 관우가 유비의 소식을 듣고, 형수들을 모시고 떠나자 조조가 그를 보내준다. 이 상황으로 인해 화용도에서의 용서가 가능했다
▲ 유비를 찾아 떠나는 관우를 보내는 조조 관우가 유비의 소식을 듣고, 형수들을 모시고 떠나자 조조가 그를 보내준다. 이 상황으로 인해 화용도에서의 용서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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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위나라와 비교할 만하다. 위나라는 조조의 치밀한 전략 아래 황제를 뒤엎고 세운 최강대국이다. 환관 집안을 바탕으로 한 조조는 낙양성의 군관으로 있을 때 엄정한 규율을 세워 세상의 주목을 받고 정계의 풍운아로 성장한다.

이후 반동탁 연합군을 모으는 주축이 되고, 결국은 황제가 자신에게 의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관도 싸움에서 몇 배나 많은 군사를 보유한 원소를 무찔러 중원의 중심세력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중톈이나 청쥔이 등 최근 <삼국지>를 풀어쓰는 이들은 조조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중국은 사회주의로 시작한 초발심을 잃고 패권국가의 면모를 서서히 갖춰가고 있다. 거대한 땅과 자원, 인구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중국을 위나라에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오나라에 비유할 만하다. 일본은 문화적 자산을 뒤늦게 보유했지만, 새로운 자산을 빠르게 받아들여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자기 것은 지키면서 외래 사상과 물질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여 자기화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패전을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2위의 강대국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손권이 이끈 오나라 역시 적벽대전 이후 급성장한 신생국가로 강남의 비옥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화동(저지앙, 지앙쑤)에 기반을 둔 오나라가 화동의 인문적 소양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것 같진 않다. 따라서 신흥 강국 정도로 두면 맞을 것 같다. 이렇든 <삼국지>는 상황에 따른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또 <삼국지>가 영화나 드라마로 변모하는 과정을 읽으면 중국의 정치적 흐름도 파악할 수 있다. 2008년에는 기억할 만한 <삼국지> 영화가 두 편 나왔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과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용의 부활>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이 시기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균형이었고, 이 두 영화는 그런 사건과 인물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적벽대전>을 통해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구체화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삼국지-용의 부활>의 주인공은 조자룡인데, 가장 훌륭한 참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조자룡의 부활을 통해 중국이 아직 더 해야 할 것을 말한 셈이다. 2011년에는 맥조휘 감도의 <삼국지 명장 관우>가 개봉했다. 관우는 의를 잃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영웅이 된 인물이다. 세계 양대 헤게모니가 된 중국인들에게 스스로 영웅이 될 각오를 하라는 것 같은 영화다.

2012년에는 조림산 감독의 <조조- 황제의 반란>이 개봉된다. 저우룬파(주윤발)가 <삼국지>에서 대우받지 못하던 인물 조조로 변신해 그의 인간적 고뇌를 보여준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에 대한 서구와 일본의 반격에 대한 나름대로 생각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

천하삼분지계를 가능하게 했던 적벽대전의 현장 수많은 전선이 떠 있을 수준은 아니지만 고 전장의 기운은 남다르다
▲ 천하삼분지계를 가능하게 했던 적벽대전의 현장 수많은 전선이 떠 있을 수준은 아니지만 고 전장의 기운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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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국지> 영화의 내면에 가장 강한 것은 중화주의다. <적벽대전> 역시 이런 경향이 많이 보인다. 고서 <삼국지연의>(아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이야기의 꼭 중간이다. <삼국지>의 중간에 적벽이 선 것은 바로 이 싸움을 통해 '천하삼분'(天下三分)을 의미하는 삼국정립(三國鼎立)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벽대전의 최대 화두는 중원에서 밀고 당기는 힘의 역학관계가 배경이 되어야 한다.

영화의 후반에 제갈량(진청우 분)이 '천하삼분'을 말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현 중국 정부의 심사를 흐트러지게 하지 않기 위해 삼국정립 부분은 거의 무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은 조조의 탐욕으로 인해 일어나는 전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조조가 마치 '소교'를 얻기 위해 일으킨 전쟁인양 보이는 측면이 많다. 조조가 악역을 맡으면 당연히 오나라와 유비가 착한 역이 되는 권선징악의 구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조조는 여자나 좋아하고, 지나치게 아집 많고, 상대방에게 병든 자를 보내 전염병을 일으키는 간교한 자로 보이게 한다.

이 영화에서 지나친 중화주의의 단적인 예가 위나라 군대에서 벌어지는 축국(蹴鞠)이다. 축국은 제(齊)나라 이전부터 중원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영화에서 처럼 완성된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적은데도 이런 방식으로 만든 것은 중국의 축구 종주국 주장을 위한 포석으로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에 중요한 키워드인 '장판파' 전투나 방통의 연환계, 황개의 고육계, 관우와 조조가 맞닥뜨리는 화용도 등은 흔적이 없다.

핵심은 관우와 제갈량

관우 머리 묘인 관림 황제의 능에만 붙이는 림(林)을 붙인 관우의 묘. 일반의 묘 가운데는 공자의 묘인 공림과 관림이 대표적이다
▲ 관우 머리 묘인 관림 황제의 능에만 붙이는 림(林)을 붙인 관우의 묘. 일반의 묘 가운데는 공자의 묘인 공림과 관림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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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중국을 넘어 동양의 고전이 된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관우와 제갈량일 것이다. 관우는 조조의 끊임없는 유혹에도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와 신의를 잃지 않은 인물이다. 전장에서는 두려움이 없는 영웅이었지만 '화용도'에서 패퇴하는 조조를 봤을 때 죽이지 못하는 마음씨 착한 이웃아저씨 같은 인물이니 싫어할 이가 없다.

관우는 죽어서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팔자지만, 머리가 묻힌 뤄양의 관우 묘를 '관림'(關林)으로 불러 황제와 동급으로 대우받는다. 민간에서는 부자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재신사당에 관우를 모시는 게 유행해 재신으로도 추앙받는다. 소설에서 많이 우상화되는 제갈량 역시 후세에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의 한풀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백제성에서 '유비탁고'(劉備託孤)를 마친 후 죽는다.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면서 "자식이 무능하면 정권까지 넘봐도 좋다"고 까지 말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천고의 명문인 '출사표'를 쓰고 장안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는 오장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천운이 다하는 순간까지 충성을 다했다. 맞수인 사마의가 조씨 집안에서 정권을 찬탈한 것과 달랐다는 점에서 제갈량은 천고의 충신으로 추앙받을 만하다.

제갈량 묘가 있는 무후사에 있는 전출사표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의와 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사진은 청두 제갈량 사당에 있는 전출사표
▲ 제갈량 묘가 있는 무후사에 있는 전출사표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의와 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사진은 청두 제갈량 사당에 있는 전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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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삼국지>는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살아있는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다. 또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 논쟁하지 말라'나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잃지 말라'라는 말이 있어 <삼국지>가 전략이나 심리적에 있어서도 강력한 교범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그 때문에 중국인과 있어 대화 중에 <삼국지>를 잘 활용한다면 가장 익숙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고급 매개체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국지 초반을 장악하는 관도전투 전장 숫적 열세를 딛고, 조조가 원소군을 이겨 헤게모니를 잡게 된 관도전투 전장 허난성
▲ 삼국지 초반을 장악하는 관도전투 전장 숫적 열세를 딛고, 조조가 원소군을 이겨 헤게모니를 잡게 된 관도전투 전장 허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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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 저서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5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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