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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이란 수식어가 붙는 <변호인>은 성공한 영화였다. 국가 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맞섰던 송변과 엄혹한 시대상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를 살았던 이는 그때가 떠올라 울었고, 살지 않았던 이는 그때를 알게 돼 울었다.

하지만 영화감독 박찬욱은 <변호인>을 '불쌍한 영화'라 칭했다. 소설 <변호인>을 읽고서다. 보통 소설이 영화가 되는 사례가 많다. 이럴 경우,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원작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변호인>은 영화가 소설이 됐다. 그것도 감독이 직접 썼다. 자의와 타의에 의해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맘껏 풀었다. 박찬욱 감독의 평은 그래서다.

글로 꾸민 '변호인-디렉터스 컷'이다. 편집에서 들어내야 했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예를 들면 어용언론들이 송우석의 작고한 장인이 빨갱이였다고 폭로하는 대목 따위. 명예훼손이니 뭐니 허튼소리로 시비 걸 작자들한테 지레 겁먹고 '사실에 근거했지만 허구'라는 문장을 앞장세워야 했던, 돌이켜보면 불쌍한 영화였다. (<변호인> 추천사에서 - 영화감독 박찬욱)

'속물 세법 변호사', 국보법 사건의 변호인이 되다

부당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인권 변호사의 고군분투기 <변호인>
▲ 책표지 부당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인권 변호사의 고군분투기 <변호인>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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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높고 커다란 담벼락, 그 장애물을 혼자 힘으로 훌쩍 뛰어넘어 들어갔던 이가 있었다. 가진 것도, '빽'도 없었다. 거기다 판사까지 됐다. 세상이 놀랐다. 입이 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땀으로 분장을 다 지워가며 방송국 인터뷰도 했다.

그 주인공은 1년 만에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향한 '송판사', 아니 이제는 '송변'이었다. 그는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복덕방, 아파트 모델하우스, 요리점, 룸살롱 앞을 죽어라 누비며 명함을 돌렸다. 변호사는 귀하고 법은 멀리 있던 시절,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그는 참 별종이었다. 그는 명함을 돌리며 이런 말을 버릇처럼 했다.

"법은 가찹고 편리한 데 있습니다." (<변호인> 본문에서)

그런 송변을 같은 변호사들이 곱게 볼 리 없었다. 그들에게 법은 보통 사람들에게 '가찹고 편리한 데'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성역에 침범한 고졸의 변호사가 고깝게 보일 뿐이었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도 줄줄이 사법 고시에 떨어지던 그 시절에 독학으로 합격을 했다면 분명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상고 출신이라는 생각만 해도 자신들의 '성역'이 더럽혀지는 것 같아, 기를 쓰고 우석과 선을 그으려 한마디씩 내뱉었다.

"고졸? 고졸이 우째? 아이고마 그러니까 그러는 기라. 원래 독고다이로 뛰는 놈들이 그런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키고 있구마." (<변호인> 본문에서)

세상의 괄시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송변은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났다. 사실 고교동창이자 신문기자였던 윤택이 국밥집에서 송변과 다투는 장면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돼 있기에 윤택이 다소 과민반응을 한 것으로, 혹은 으레 보일 수 있는 죄책감 정도로만 치부할 수 있다. 사정을 알고 보면 윤택의 날선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1980년 전두환 군부는 언론사 간부들을 보안사 분실로 불러놓고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해 64개 언론사 중 46개의 문을 닫게 하거나 경영권을 빼앗아 버렸다. 1천 명 이상의 언론인이 희생되고, 해직된 언론인 중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치욕적인 언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갖가지 특혜를 받으며 인생 최대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저녁 9시에 '땡'하면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시작되는 뉴스를 7년간 봐야 했다. 일명 땡전뉴스였다.

윤택 역시 그 치욕적인 언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그가 원했든 아니었든, 자신에게 떳떳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변호인> 본문에서)

그래서였다. 윤택이 내면에 겹겹이 눌러놨지만 숨길 수 없는 죄의식, 송변은 이를 건드렸던 게다. 앞으로 전개될 '부독련' 재판에서 모든 청중이 그랬듯, 알면서도 발설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야만 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때까지만 해도 '속물 세법 변호사'에 불과하던 송변에게 선배 변호사인 상필은 용공조작 사건인 '부독련' 재판의 변호인이 돼줄 것을 부탁한다. 송변을 헛웃음을 지으며 이를 거부한다. 자신과 '국보법' 사건과는 너무 큰 괴리감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을 모르던 송변에게 상필은 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송변! 완월동은 어찌 시작됐는지 아나? 왜정 시대에 테라우치란 총독이 만들게 한 거다. 와 그랬겠노? 전두환이는 왜 통금을 풀고, 칼라 텔레비전을 풀고, 올림픽 하겠다고 그러겠나?" (<변호인> 본문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기에 포기할 순 없었다

송변은 단골 국밥집 아들이 '부독련' 사건의 주인공이었단 사실에 놀랐다. 그가 아는 국밥집 아들은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면회를 가서 만난 아이의 몸에서는 온갖 고문의 흔적이 발견됐다. 큰 충격을 받은 송변은 '부독련' 사건에서 중요 증거가 된 '빨갱이' 책들을 상필에게서 받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개선과 향상이 없고 그 결과는 더 한층의 타락이며, 타락한 제도를 유지하려는 지배 세력은 탄압에 호소하는 악순환 속에 침체할 수밖에 없다. (<전환시대의 논리> 본문에서)

송변은 불온서적(?)을 읽으며 머릿속에 지진이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믿고 싶은 대로만 보였던 세상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러면서 그 껍질을 깨고 뭔가가 새롭게 태어났다. 그렇게 그는 '부독련' 사건의 변호인이 됐다.

검찰, 변호사, 취재기자, 심지어 피고인 가족들까지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송변만은 달랐다. 그만은 애당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재판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둘러앉은 사람이나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이나 모두 엉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송변은 그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변호인> 본문에서)

비슷한 시기, 송변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해동건설과의 계약이었다. 거액의 수임료도 수임료였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만 하면 이른바 '전국구'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족쇄처럼 그를 따라다닌 '고졸출신'이란 수식어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국보법' 같이 예민한 일과는 병행하기 힘들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송변은 해동건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계약을 물리치며 자신에게 '좀 더 경제적으로 발전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해동건설 상속자 창준에게 말한다.

"그런데…… 국민이 가난하다고 법의 보호도, 민주주의도 누리지 못한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안녕히 계십시오." (<변호인> 본문에서)

'국보법' 사건의 변호인이 된 대가는 컸다. 아들의 학년과 반을 묻는 괴전화가 걸려오고, 언론은 '부독련 사건 송우석 변호사 장인, 6·25 학살 주범으로 밝혀져'란 기사를 쏟아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송변이었지만,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아이들에겐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은 불리하게 흘러갔다. 온갖 국가권력, 심지어 판결을 맡은 판사까지도 한통속인 상황에서 변호인 하나가 판세를 뒤집긴 힘들었다. 송변이 혼자서 고군분투했지만 회의적인 결과가 예상됐다.

그런 그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왔다. '부독련' 사건 고문현장에 차출된 군의관 윤성두 중위가 찾아와 증인을 자처한 것. 윤 중위는 차분하게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증언했다. 윤 중위의 발언이 끝나자 송변은 마지막 변론을 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이 밝혀지는 듯 보였다.

"이제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명백한 상황이 있고, 증인이 있고, 증언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된 인권 유린 사건이지, 국가보안법 사건이 아닌 겁니다. 본 변호인은 피고인 박진우 군의 무죄와 이번 재판 모든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변호인> 본문에서)

그러자 경찰과 검사는 정당하게 휴가 중인 윤 중위를 탈영병으로 둔갑시켰다.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윤 중위는 재판장에서 헌병에게 끌려 나갔다. 이를 저지하며 송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진실이 그리 무섭냐?"라고 외쳤다. 그러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재판은 끝났다.

송변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박종철 군의 죽음으로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종철 군의 고향은 부산이었고, 그는 부산의 아들이었다. 부산에서도 정부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바로 그 선두에 송변이 서있었다.

"점마 변호사라 잘못 건들면 소송 건다, 만다, 시끄러워진대이. 그리고 때려도 꿈쩍도 안 한다. 보통 독종이 아니다. 대갈빡 몇 번 깨져봤는데도 저러고 있다. 오죽하면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란 별명이 안 붙었겠나. 아예 길바닥에 드러누워 움직이질 않는다." (<변호인> 본문에서)

소설에서는 송변을 가리켜 '독고다이'란 말이 참 많이 나왔다. 거친 어감을 가진 단어, 그러나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외로움'과도 통하는 말이다. 이를 숨기고 억센 척, 강한 척, 해보지만 결국 그도 인간이었다. 그의 뒷모습엔 하릴없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송변, 먼저 모든 걸 내려놨던 그가 참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모르냔 고문경찰 동영의 비아냥거림에 송변이 답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사회는 국가의 정의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국가는, <변호인>에 환호했다. 국가는 국민이다.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법적 근거로 없이 국가란 법의 개념도 모르면서 국가 보안 문제라고 마구 내질러서 국가인 국민을 탄압하고 법을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오?" (<변호인> 본문에서)

덧붙이는 글 | <변호인> ( 양우석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2014.04 / 1만4천원)



변호인

양우석 지음, 21세기북스(2014)


태그:#변호인, #양우석,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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