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주 석굴암 가는 길목의 신록이 아름답다. 원전은 근본적으로 반생명적일 수밖에 없다. 엄청난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전은 생명있는 모든 것들의 위협이 된다.
▲ 경주 석굴암 가는 길목 경주 석굴암 가는 길목의 신록이 아름답다. 원전은 근본적으로 반생명적일 수밖에 없다. 엄청난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전은 생명있는 모든 것들의 위협이 된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경주에 갔다. 수학여행 간 것도 아니고, 놀러간 것도 아니다. 천 년 전 불국토를 꿈꿨던 신라의 수도, 그 아름다운 도시를 찾은 까닭은 서글프게도 '핵발전소'라 불러야 마땅한, 그러나 '원자력발전소'라고 이름부터 한 꺼풀 가면을 쓴 구조물을 보기 위함이었다.

경주 월성 핵발전소는 문무대왕릉 바로 앞에 있다. 죽어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던 문무대왕은 지금은 핵발전소를 지키고 있는 듯 보인다. 감포 앞바다에서 31번 국도, 그림 같은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 보시라. 동해의 근사한 풍경에 마음을 뺏기다 보면 문득 바다는 사라지고 도로가 내륙 쪽으로 우회한다. 그 끊어진 5㎞ 남짓한 해안의 광대한 부지에 방사능폐기물처리장과 6기의 원자로가 자리하고 있다.

지구상에 원래 없던 핵분열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전기를 생산해내는 것이 원전이다. 반감기만 10만년, 100만년이 되는 방사능을 발생시키는 원전, 폐기물 처리방법을 인류가 아직 알지 못하는 원전, 단일사업으로는 최고의 자본이 투자되는 것이 원전이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바라본 월성원자력발전소이다. 왼쪽부터 월성1,2,3,4호기이다. 맨 왼쪽의 월성1호기는 1983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해 2012년 설계수명이 완료되었다. 그러니 70년대 기술로 지어진 것이다.
▲ 월성원자력발전소 사람 사는 마을에서 바라본 월성원자력발전소이다. 왼쪽부터 월성1,2,3,4호기이다. 맨 왼쪽의 월성1호기는 1983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해 2012년 설계수명이 완료되었다. 그러니 70년대 기술로 지어진 것이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누군가는 그러한 핵발전소를 두고 '인류가 영원히 끌 수 없는 불을 켠 것'이라고 했다. 긴장과 공포가 필요하면 경주에 가서 핵발전소를 보고 오시라 권하고 싶다. 거기에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또 4900만 인구의 삶을 어느 날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는, 아니 전 인류를 거대한 우울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 일본은 2013년까지 원전 54기의 가동을 전면중단했다. 그래서 일본에 대규모 전력난, 정전사태가 있었던가? 그런 일은 없었다. 일본사회는 원전가동 없이도 수요관리, 절전시스템 등을 통해 차분히 돌아갔다. 이는 원전이 심지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악도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원전 추가건설에 열을 올리고,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우리의 전부를 담보로 도박을 하게 하는가? 이것은 상식적인 일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노후원전 월성1호기, '수명연장 된다'에 돈 거세요

현재 논란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은 수명이 완료된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 중에서 사고를 낸 것이 설계수명을 넘긴 30~40년된 노후 원전 4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신청은 2009년 12월에 접수되었다. 심사기간은 18개월이지만 5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해 반대여론이 비등했고, 이에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수명연장심사와 별개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해 통과할 경우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차원에서는 이미 수명연장을 결정해놓고 짜맞추기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솔솔 풍긴다. 사실 수명연장 결정을 내리는 데는 원자력안전법에 근거한 수명연장 심사가 기본이 된다. 하지만 수명연장 심사의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심사과정에 민간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고 심사결과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자체장도, 광역단체장도 수명연장에 관한 어떠한 권한도 가지지 못한다. 오직 차관급 인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원안위의 판단에 우리 모두가 기대야 하는 것이다. 이런 걸 절대권력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스트레스 테스트(극한 자연재해에 원전이 얼마나 견디는지를 검증하는 작업)는 어떤가? 경주 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수명연장 심사에 물타기를 하고자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는 듯 보인다고 전했다. 즉 명확한 검증 기준이 없는 스트레스 테스트의 '통과' 결과를 내세워 수명연장을 더욱 수월히 '결정'하고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상홍 사무국장은 경주시민들이 오랜 세월 원전반대투쟁을 해오다, 지금은 포기를 내면화한 상태라고 전했다.
▲ 경주환경운동연합의 이상홍 사무국장 이상홍 사무국장은 경주시민들이 오랜 세월 원전반대투쟁을 해오다, 지금은 포기를 내면화한 상태라고 전했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현재 민간검증단이 참여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스트레스 테스트 내용을 검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민간검증단은 중간보고서를 공개하려고 했으나 원안위가 자신들에게 검토를 받아야 한다며 공개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인 검증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민간검증단 중간보고서의 핵심내용은 "월성1호기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극한 환경에 처했을 때 노심용융이나 폭발 등의 중대사고를 방지할 안전장치와 기본설계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월성1호기는 우리나라 원자력사고 레벨2에 해당하는 4건의 사고 중, 2건을 발생시킨 원전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현재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이 이뤄질 거라 짐작한다. 이유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1호기 압력관을 교체하기 위해 이미 2009년 7000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하고 나서 수명연장 심사를 신청한 것이다. 7000억. 이는 폐로비용보다도 높은 투자라는 보도도 있었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미리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수리를 해놓고 수명연장 신청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인가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합리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이미 그 엄청난 자본을 월성1호기에 투자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명연장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는…. 한수원 관계자에게 그 요상한 절차에 대해 질문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법이 그렇게, 수리하고나서 연장신청하게 되어있습니다."

국민에게 '믿음' 강요하는 원전마피아

원자력마피아란 말이 있다. 치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관련 정보를 모두 장악하고, 원전 관련 정책결정과 추진에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력, 그리하여 핵산업을 밀어붙이는 세력을 말한다. 원전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인사, 원전건설에 참여하는 대기업, 원자력을 전공한 학계인사,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의 인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마피아는 세계최고라 할 만하다.

후쿠시마 사고로 각 나라의 원전마피아가 그나마 움츠려 들고, 전 세계가 하나같이 '탈핵'을 말할 때 이들은 오히려 '후쿠시마 사고의 위기를 기회로'라는 인상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핵 산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일본열도에서는 지금도 원전사고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이 한참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일생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마당이며, 원전반대 시위도 계속된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을 기회로 삼겠다니…. 그 발상이 무척이나 놀랍다.

이들 원전마피아가 핵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대충 이런 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 그리고 이런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민간이 뭘 아느냐, 그러니 우리를 믿어라. 우리들이 하는 말을 믿어라.'

정보를 틀어쥐고는 공개도 하지 않고, 보여줘 봐야 민간이 뭘 아느냐고 반문하는 그들, 그리고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그들. 그러한 강요는 이상하다. 믿음과 신뢰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개방하고 소통하는 가운데서 생겨난다. 그런데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믿으라고만 강요하는 것은 사이비 종교단체와 다름이 없다.

지금 국민들이 가지는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불신을 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들인 것이다. 뇌물을 주고받고, 부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고, 결정해놓고 짜맞추기 심사하고, 사고와 고장을 은폐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국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안전을 믿을 수 있겠는가? 요컨대 그들 원전마피아는 무척 적극적으로 엘리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국민들에게 무슨 설명을 할 것이냐? 공적자금 갖고 우리들끼리 알아서 은밀하게 결정하고 추진하면 그뿐…. 우매한 대중들은 그저 우리를 믿고 따르라.'

그 누구도, 핵발전소의 항구적인 '안전' 말하지 못한다

사전신청을 통해 월성1호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인적사항을 사전에 대고 신분을 증명하고 지문을 찍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곳에서 두 시간 정도 한수원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원자로 격납고 내부는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격납고에 딸린 발전소의 터빈과 배관을 직접 보았다. 핵발전소는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코앞에서 높이 45m의 원자로 격납고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체했다. 괜스레 온몸에 방사능이 달라붙은 것처럼 몸이 간지럽고 목이 따가웠다.

한수원 직원이 반복해서 말한 것은 그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수원 직원이라면 누구나 방문자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신념처럼 들렸다. 안전하다가 아니라, 안전해야 한다는 것. 과연 그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음을 사고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느끼더라도 그것을 말로 할 수 있을까?

나는 직원의 말을 경청했지만 사실 그곳에서 '안전'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또 마찬가지로 '안전하지 않음'을 볼 수도 없었다. 왜? 전문가가 아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수백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수백 킬로미터의 전선이 들어가고, 수 킬로미터의 배관이 설치되는 구조물을 속속들이 알아 안전을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핵발전소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운영하는 시스템을 통해 가동된다. 도대체 누구라서 그 많은 이들의 행동과 동작의 문제없음을 매순간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원전비리까지 끊이지 않는 마당에. 그러하니 대한민국의 단 한 사람도, 이 땅 23기 원전, 그리고 앞으로 가동될 11기 원전의 '항구적인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핵발전소는 방사능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 근본을 생각하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구조물이다. 자본과 절대권력이 융합해 굴리는 거대한 수레바퀴지만 사실상 그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은 그 누구도 결정하지 못한다. 원자로에 들어가 보았다는 한 사람은 '사람이 이런 것을 운영할 수 있나' 하고 놀랐다고 했다. 그 복잡함에 기가 질렸던 것. 그러니 누군가 핵발전소의 '안전'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그의 바람, 혹은 오만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나라에 떠있는 23기의 또다른 세월호

새로이 지은 신고리 1,2호기가 멀리 보인다. 그 앞 가드레일에 '원전반대'라고 쓴 글귀가 보인다. 일본의 반핵운동가가 쓴 것이라 했다.
▲ 신고리 1,2호기 새로이 지은 신고리 1,2호기가 멀리 보인다. 그 앞 가드레일에 '원전반대'라고 쓴 글귀가 보인다. 일본의 반핵운동가가 쓴 것이라 했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경주시민들은 핵발전소를 싫어한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월성1호기 수명연장에 대해 71.6% 시민이 폐쇄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왜? 안전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만 그럴 뿐이다.

경주시민과 핵발전소 인접지역의 주민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온갖 반대운동을 다 해왔다. 하지만 주민의 뜻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주민들에게 포기를 내면화하는 심리적 흐름을 가져왔다. '짓지 않는 게 맞지만 반대한다고 그게 이뤄지나? 국가가 한다고 하면 다 행해지지 않았나?' 이것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판단인 것.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여당 텃밭인 그곳에서는 원전반대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제1야당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내 시민의 의지를 취합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경주의 일부 주민대표들 사이에선 월성1호기 수명연장도 어차피 통과될 거 지원금이나 더 따내는 선까지만 반대운동하자는 말도 오간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 없다. 경주시민들에게 왜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느냐 물으면, 그들은 왜 우리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사실 30년 세월 원전을 품고 살아온 것도 그들이고, 밀리다 밀리다 방폐장 건설을 수용한 것도 그들이다.

그러니 이제 원전 추가건설이나 수명연장 문제는 그 지역문제만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는 후쿠시마와 같은 중대사고가 났을 때 그 어느 지역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전 국민이 참여해 논의하고 여론화시켜 저 공고한 핵산업 세력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밀양송전탑 싸움에 희망버스가 힘을 보탰듯, 이제는 경주 월성으로, 부산 고리로 대중의 인식이, 버스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가공할 절대권력을 제지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금 원전문제가 더욱 대두되는 것은 세월호 사태 때문이다. 배에 갇혀 아이들이 수장당할 때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짜놓기라도 한 듯이 어떤 단계의 안전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결코 다를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원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아님을 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더 많이 짓고 더 오래 운영하려고 하는가? 대한민국이 똥통도 아니고 그 더럽고 위험하고 비싼 것을 왜?

내 집 앞 여고 정문에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 교사와 학부모들이 나와 교통통제를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한다. 왜냐고? 4m도 안 되는 아파트 출입구를 여고생들이 안전하게 건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랑이란, 어른의 보호란 그런 것이다. 또 국가란 모름지기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사태로 가장 큰 울타리를 잃었다. 그러니 이제 더더욱 원전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태그:#원전, #월성, #원자력, #핵 , #수명연장
댓글1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