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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4월 24일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올해 <타임>이 선정한 100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을 들라면, 누구나 알만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아니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아닌,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23세의 인도네시아 여성을 들고 싶다.

이 여성은 홍콩에서 가사 이주노동자로 일을 했던 에르위아나 술리스띠아닝시(Erwiana Sulistyaningsih)이다. <타임>은 왜 가사 이주노동자인 에르위아나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을까?

에르위아나는 작년에 홍콩에서 가사노동자로 이주노동을 했었다. 그런데 에르위아나를 고용했던 로우라는 이름의 여성 고용주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무려 8개월 동안 에르위아나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학대했고, 그 학대는 단순히 언어폭력이나 장시간 노동에 그치지 않았다. 극단적인 폭력을 쓰기도 했다.

폭행은 말을 조금이라도 못 알아듣거나, 고용주의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발생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고문과 화상까지 당해야 했다. 결국 반복된 폭행으로 에르위아나가 만신창이가 되어 일을 못하게 되자, 고용주는 겨우 100달러를 주며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말 것과, 말할 경우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난 뒤, 인도네시아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에르위아나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올 당시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어서 친구의 부축을 받아야 했고, 공항에서는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고 한다.

에르위아나는 고용주의 협박에도, 지난 1월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권단체와 언론 등에 알렸는데, 그 결과 홍콩 내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에르위아나의 고발은 여성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침해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사회적 허점 속에서 구조적으로 빚어지는 일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홍콩 당국이 공식적으로 "가사 이주노동자들은 홍콩의 소중한 인력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들에 대한 어떤 물리적 학대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여성 가사 이주노동자를 보호할 장치가 없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에르위아나의 고발은 홍콩에서 일하고 있던 많은 가사 이주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촉발시켰다. 홍콩 시내에서는 1월 19일(일) 5000여 명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출신 가사 이주노동자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이 사건은 국제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홍콩 당국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가사 이주노동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타임>은 "에르위아나의 용감한 폭로 덕분에 홍콩의 가사 이사노동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기에 앞서 출국 전 교육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홍콩, 대만, 싱가폴, 사우디, 카타르, 말레이시아, 한국 등의 국가로 이주노동을 떠나기에 앞서 부푼 꿈을 안고 교육받고 있다.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기에 앞서 출국 전 교육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 이들은 홍콩, 대만, 싱가폴, 사우디, 카타르, 말레이시아, 한국 등의 국가로 이주노동을 떠나기에 앞서 부푼 꿈을 안고 교육받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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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위아나를 학대했던 고용주는 어떤 사람?

홍콩 시내에서 5000여 명의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시위를 하며, 고용주를 처벌할 것을 촉구하자, 홍콩 경찰은 시위 다음날인 20일에 가사 이주노동자 학대 혐의로 고용주를 전격적으로 체포한다. 체포 당시 고용주는 홍콩 국제공항에서 태국으로 출국하려고 하다가 잡혔다고 한다. 고용주를 체포한 홍콩 경찰은 인도네시아로 직접 가서 피해 여성인 에르위아나에게 질의 조사를 하였고, 조사 결과 '심각한 신체적 위해'를 가한 혐의로 해당 고용주를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 앞서 홍콩 경찰은 고용주 로우(44)가 "전과는 없지만, 매일 남편과 함께 에르위아나를 때리고 고문했으며,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고용주는 대걸레나 자, 건조대 등처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폭행에 이용했는데, 그 결과 에르위아나는 이가 부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의 타박상을 입었다.

경찰이 고용주 체포 사실을 발표하며 언급한 "전과는 없었다"는 말은 가사 이주노동자를 학대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일으킬 정도의 행동을 하거나 행적을 갖고 있지 않더라는 것을 말해 준다.

평범한 40대 홍콩 시민이 단지 가난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사 이주노동자의 신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했더라는 충격적인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악마의 얼굴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평범한 얼굴을 한 시민이었지만, 편견 혹은 인종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뉴스의 중심 인물이 되고 말았다.

홍콩에서의 가사 이주노동자는 어떤 위치?

홍콩에는 약 31만 명의 가사 이주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사 이주노동자들의 출신국은 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이고, 일부는 태국, 스리랑카,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도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사 이주노동자들은 월 평균 50만 원 정도를 받으며 홍콩 가정의 육아와 살림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은 대부분 부부가 맞벌이 직장생활을 한다.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당연시하는 홍콩인들은 바쁜 직장생활 가운데 가사노동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게 되자,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 자연스런 문화가 되었다. 가사도우미는 인건비가 싼 이주노동자들이다.

홍콩에서 가사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과 연간 7일의 연차와 일요일 휴무는 반드시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보장 장치는 중동 지역의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비교하면 상당히 잘 돼 있고, 홍콩인들의 인식 역시 가사 이주노동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홍콩은 인구의 4배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매해 방문하는 국제도시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다 보니, 이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개방적이라고 자평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홍콩인들의 자평과는 달리, 31만 명에 달하는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인권침해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사회 문제이다. 지난해에는 고용주가 여행을 가면서 가사 이주노동자를 화장실에 묶어놓고 갔다가 탈출한 가사 이주노동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동안 고용주가 행했던 엽기적인 학대 행위가 폭로되기도 했었다. 그 고용주는 아기가 토한 음식을 가사 이주노동자에게 먹도록 하기도 하고, 말을 안 들으면 의자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후려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런 사건 사고 소식은 홍콩에서 흔한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홍콩 당국이 자랑하는 가사 이주노동자에 대한 일요일 휴무 완전 보장에 대해서 혹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홍콩의 주거시설이 워낙 비좁기 때문에 일요일에 온 가족이 쉴 때에 가사 이주노동자까지 함께 할 공간이 부족하다. 홍콩에서 일요일이면 공원마다 넘쳐나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 이주노동자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뙤약볕 아래로 내몰리는 것이다. 아무리 친구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며 타향살이 설움을 달랜다고 하지만, 그들이라고 일요일마다 바깥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겠는가?"

홍콩에서의 이주노동자 위치에 대한 홍콩 당국 혹은 홍콩인들의 자평과 이주노동자들과의 시각 차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한국에서 가사 이주노동자 현실

우리나라에서 가사 이주노동자가 증가는 중국동포들의 입국과 필리핀 국적의 입주 영어 교사의 증가와 맞물려 있다.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된 중국동포들은 취업에 앞서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국내 취업 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 중국 동포 취업 교육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된 중국동포들은 취업에 앞서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국내 취업 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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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들은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파출부나 가사도우미라는 호칭보다는 가사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현재 어르신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육아를 담당할 경우에는 중국어 교사로서의 역할까지 하면서 자신들이 내국인보다 좀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필리핀 출신의 입주 영어교사들은 내국인 가정에 입주하면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주한미군과 군속 가정에 입주할 때는 영어로 'Helper', 가사도우미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가사 이주노동자는 다양한 이슈가 섞인 복합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언급했던 것처럼, 가사노동자의 특징상 젠더 문제는 물론이고,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인 가정과 미국인 가정에서의 정체성이 다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종적 문제도 있고, 중국에서 교사 등의 전문직 여성으로 일을 했던 중국동포들이 가사노동자로 일을 하며 겪는 민족,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갈등 문제 등 다양한 양상을 드러낸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국적이 어떠하든 간에 점차 가사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자에 대한 편견, 그들을 노동자로 바라보기보다는 여전히 파출부, 가사도우미로만 보며 무시한다면 홍콩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이 메인뉴스를 장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쩌면 홍콩에서와 같은 문제가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가사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데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 보호 장치, 어떤 게 필요하나

우선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 협약이라고 불리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189호)'를 들 수 있다. 이 협약은 2011년 6월 16일 ILO 100차 총회에서 채택되어 어느 가정에 고용돼 그 가정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이 협약의 주요 골자는 노동조건, 노동시간 등을 명시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고 매주 최소 하루 이상 휴일 보장, 노조결성 자유 보장, 최저노동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제한할 것,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보상절차 그리고 고용주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별 규정의 제도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협약의 결과로 가사노동자들이 좀 더 자신감 있게 고용주와 대화하고,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사노동자 협약을 채택하지 않고 있지만, ILO 회원국인 만큼 조속한 비준을 할 필요가 있다. 가사 이주노동자들은 앞으로 우리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돌봄 서비스 영역에서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높아지고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보육 분야에서 점차 그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그들을 파출부, 가정부, 도우미로 하대하며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전문직, 프로의식을 갖춘 노동자들을 배척하는 것이고, 결국 우리의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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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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