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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손해배상 소송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청구하는 손배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파업 손배소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일상이 돼버렸다.

법원에서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도 손배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측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전국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쳐본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수십 억대 손배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본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이라는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측, 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입수한 통계자료, 판결, 소송서류, 관련논문 등을 분석하여 파업 손배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두 회사를 떠올리면 정리해고, 파업과 같은 아픈 단어가 연상된다. 두 회사는 닮은 점이 많다. 회사의 정리해고,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잘려나갔다. 이에 반발, 노조가 점거파업을 했다.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한 가지 더 있다. 사측은 파업 손배청구를 했고 법원은 노조에게 수십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어떤 근거로 그런 판결이 나온 걸까.  

한진중 노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58억" 소송 당한 까닭

2012년 12월 21일 오후 열린 '한진중공업 복직자 최강서 열사 경과와 대책' 기자회견 모습.
 2012년 12월 21일 오후 열린 '한진중공업 복직자 최강서 열사 경과와 대책' 기자회견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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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2011년 2월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되었다가 이듬해 11월 일터로 돌아온 최강서(당시 35세)씨는 재입사 3시간만에 무기한 강제휴업을 당한다. 노조의 조직차장이었던 그는 2012년 12월 21일 노조 대회의실에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손배소 철회를 유서로 남겼지만, 사측은 2014년 1월 기어이 판결을 받아내고 만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왜 소송을 당했을까. 부산 영도구 소재 한진중공업은 경영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2009년부터 정리해고를 시도했다가 노조의 반발로 잠정 중단했다. 이듬해인 2010년 사측은 노조에 400명 감축계획을 통보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는 임단협 성실교섭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12월 영도조선소 점거파업에 돌입한다. 사측은 이에 맞서 2011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이하 지회)와 채길용 당시 지회장 등 11명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사측은 애초 청구액 51억여 원으로 제소했다가 도중에 158억 원으로 늘렸고, 2011년 12월에는 지회를 제외한 개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다).

법원(부산지법 7민사부, 재판장 성금석 부장)은 지난 1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측의 청구액 158억 원 중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측의 정리해고는 적법,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2008년경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진중공업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사실을 인정해준다. 또한 정리해고가 ▲긴박상 경영상 필요에 의해서 이뤄졌으며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였으며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근로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를 하는 등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적법하다고 보았다.

반면, 노조의 파업은 목적이나 수단 모두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경영주체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인 정리해고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파업에 나아갔다고 할 것이므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경영권을 상당히 '존중'하는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파업의 수단에 대해서도 "영도조선소에 대한 관리지배를 배제한 전면적, 배타적 점거로써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라고 보았다. 

한진중 노조 59억 배상 판결은 1심에서 확정

이에 대해 지회는 "2010년 당시 파업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실시한 합법파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는 파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임단협 교섭과 관련된 조합원들의 처우개선이 주목적이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단체협약 갱신 교섭을 하는 자리에 회사가 일방적인 구조조정안을 의제로 들고 교섭을 계속적으로 요구하며 교섭을 해태하였다"며 "부득이하게 파업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체협약 및 임금협약 체결에 대한 이견이 파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주된 목적은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조가 조선소를 점거하면서 선박건조에 차질을 빚었다고 사측이 청구한 금액 중 선박이동비용, 장비임차료, 도장비용 등 사외작업비용, 지체상금(납기일 지연 비용) 등 74억 원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이중 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여 80%인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회는 판결 직후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인지대를 납부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응하지 않아서 항소장이 각하된 상태다. 따라서 1심 판결은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후가 문제다.

노사는 최강서 조합원 사망이후인 2013년 2월 22일 쌍방 민형사사건 취하 등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합의서에는 파업손배소 사건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별도의 회의록을 통해 "회사가 제기한 158억 손해배상 청구소송(1억 소송건 포함)은 확정판결 이후에 지회와 반드시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합의사항을 남겼다.

지회 쪽은 이를 사측이 사실상 소송을 철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박성호 지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회사 쪽 책임자를 만났는데 회사는 항소를 하지 않고, 자신의 임기동안 (판결에 따른 강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지회장은 "항소심에서 불법파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최종적으로 금속노조와 상의해서 소송을 일단락짓기로 결론내렸다"고 덧붙였다.  

한진중 손배사건은 확정된 판결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노사합의에 대한 효력을 놓고 논란의 여지도 있다.

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경영권 침해... 불법"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와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와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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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인력구조조정안을 발표한다. 노조는 그해 5월 21일부터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이른바 옥쇄파업에 들어간다. 노조는 사측이 정리해고를 합리화하기 위해 회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며 형사고발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나갔고, 980명이 정리해고됐다.

그해 8월 6일 노사는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자들을 무급휴직, 희망퇴직, 영업직 전환 등으로 처리했다. 최종 정리해고 대상자는 159명이었다. 2009년 구조조정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환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은 24명이나 된다.      

사측은 파업의 책임을 물어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 간부 등 140명을 상대로 50억~100억원 대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법원(수원지법 평택지원 제1민사부 재판장 이인형 부장)이 인정한 배상액은 33억 원이다.

사측과는 별도로 국가도 손배소에 가세했다. 파업진압시 장비파손, 경찰관 부상 등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 측을 상대로 제소한 것이다. 법원은 대부분의 손해액을 인정, 위자료를 포함 14억 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최근 이슈가 된 '노란봉투 캠페인' 등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배상금이 47억 원으로 알려진 것은 두 사건의 금액을 합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판결도 한진중공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업목적과 방법에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다. 특히 재판부는 "옥쇄파업의 주된 목적은 정리해고에 관한 사측의 권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경영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또한 방법에 있어서도 "적법한 절차를 거부한 상태에서 고도의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평택공장 내 생산시설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거하는 등 그 정당성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불법파업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손해액을 공헌이익(영업이익+고정비) 상당액으로 계산했다. 쉽게 말해 파업기간 동안 자동차 판매로 얻을 수 있었던 영업이익과 고정비(조업중단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를 합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파업주도자·참가자·지원자 110명, 33억 배상책임

노조 측은 "공헌이익이 아닌 실손해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고, 파업으로 판매에도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가 산정한 손해액은 55억 원이다. 다만 경영악화에 사측이 막중한 책임이 있고 쌍용차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파업이 없더라도 영업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던 점을 참작, 60%는 노조가 40%는 사측이 책임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 33억 원의 배상액이 나오게 되었다.  

피고 140명 중에서 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람은 110명이다. 이들은 ▲파업을 주도한 지부 간부 ▲공장 점거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파업을 지원하거나 공장을 점거한 금속노조 간부 ▲ 공장에 들어간 민주노총, 사회단체 간부 등이다. 재판부는 이들 모두가 공동으로 33억 원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여기엔 국가가 청구한 14억 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양측이 항소를 제기해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해고무효 소송 승소했는데, 해고반대 파업은 불법이라니

파업손배소 판결로 두 사건 모두 목적과 방법에서 정당성이 없는 불법파업이 되고 말았다. 특히 정리해고는 파업의 사유로 삼을 수 없는, 그야말로 성역이다. 현행 판례대로라면 임금인상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사항으로 합법이지만, 근로자격을 박탈하는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불법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지난 2월 7일 서울고법(제2민사부 재판장 조해현 부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판결이 나왔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2심 판결이다. 해고무효소송에서 "사측이 구조조정의 근거로 삼은 검토보고서의 재무제표에 유형자산손상차손이 과다계상되었다"는 노조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인원삭감의 필요성과 규모의 합리성을 사측이 입증하지 못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아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한 마디로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로서 무효"라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손배소 재판부가 "구조조정 방침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사뭇 다른 결론이다.

노조원 중에는 파업손배소의 피고이자, 해고무효소송의 원고인 이들이 상당수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이창근씨는 이 인원을 약 40명으로 추정했다. 이씨는 최근 기자와 한 전화통화를 통해 "정리해고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기 때문에 그 후에 발생한 문제는 회사의 귀책사유로 볼 수 있게 된 중요한 변화"라며 "파업 손배소송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하고도 해고 반대 파업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수십 억 원을 물어줘야 하는, 기이한 현실과 맞서고 있다.


태그:#파업손배소, #쌍용차, #한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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