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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지만, 밀양은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오늘도 움막에서 비닐 한 장으로 긴 밤을 지낼 할매·할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과연,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만의 문제일까요? 전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3% 정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들이 밀양 등의 송전탑이나 가스관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어떻게 하면 그 부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와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획 <송전탑 없앨 수 있다>를 통해, 에너지 자립의 대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대선 시기를 전후해서 한국 사회에 독일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많은 거물급 정치인과 학자들이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여러 곳에 장기간 체류하고 있고, 여러 신문과 방송은 연재 또는 기획기사를 통해 독일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 복지제도, 정치시스템 등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느라 분주한데요.

독일 배우기에서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문제입니다. 에너지를 어떻게 얻고 또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있어 독일은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와 너무나도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빈국 독일에서 고약한 겨울을 나려면...

독일은 2000년초까지만해도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고실업, 재정악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경제개혁과 함께 꾸준한 교육과 연구개발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어 메르켈 총리의 대화와설득의 리더십과 더해지면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럽 금융경제의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전경.
 독일은 2000년초까지만해도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고실업, 재정악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경제개혁과 함께 꾸준한 교육과 연구개발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어 메르켈 총리의 대화와설득의 리더십과 더해지면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럽 금융경제의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전경.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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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독일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역사적 경제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분단을 경험했고, 남북한이 통일할 경우 인구수와 면적 또한 엇비슷합니다. 경제 구조를 살펴보면, 기계, 자동차, 화학 등 소위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에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가 28.1%, 독일은 21%입니다. 수출 지향적인 전략을 갖고 있는 것 또한 같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전체 GDP의 절반 이상을 수출을 통해 만들고 있습니다(2012년 기준 한국 57%, 독일 51%).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에너지 자원 절대 빈국인 것처럼, 독일 또한 자원 빈국이라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던 갈탄 자원이 아직도 독일에 많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 때문에 자국산 갈탄을 채굴해 사용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거니와 점차 가중되는 국제적인 온실가스 규제 압박으로 석탄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 독일 영토에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 갈탄인데, 이래저래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런 형편으로 독일은 2012년 현재 전체 에너지의 70%를 수입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시기, 우리는 전체 에너지의 96.4%를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여름 무더위로 냉방기 이용이 많아지는 데 반해 독일은 겨울철 난방이 큰 골칫거리입니다. 혹독한 추위는 없습니다만, 겨울이 길고 습한 이곳에서는 4개월 이상을 어떻게든 난방을 해야만 별 탈 없이 이 어두침침한 계절을 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독일서 생활하신 간호사·광부 어르신들은 '독일의 겨울 날씨는 뼈를 쑤시게 만드는 고약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안에 습기를 제거하고 실내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메르켈이 정치적 수치 감내한 이유

즉, 한국이 겪고 있고 또 고민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 상황을 독일 또한 그대로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 나라의 에너지 대책은 전혀 상반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1986년 구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후쿠시마의 거리와 똑같은, 체르노빌로부터 약 1000km 떨어진 독일은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전국적으로 갑상선 암 발병이 증가했고, 9개월 이후부터는 베를린에서 다운증후군 신생아 출생이 급증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프스 북쪽 자락인 바이에른 지방의 야산에 사는 멧돼지에게는 유럽연합 기준치의 수십 배가 넘는 방사능 세슘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5월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립정부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알 자지라>.
 지난 2011년 5월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립정부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알 자지라>.
ⓒ <알 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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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고를 구 소련의 낙후된 기술, 폐쇄적인 비밀주의 탓으로 돌리며 독일의 원자력 발전소 계속 운전을 위해 노력했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1980년 이전에 지어진 8기의 핵발전소를 즉각적으로 폐쇄했고, 남은 9기 또한 2022년까지 폐기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실 메르켈 총리는 사고가 발생하기 반년 전, 2002년 사민당-녹색당 연합정부가 결정한 핵폐기 결정을 부분적으로 폐기하며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결정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더불어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에 독일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결국 메르켈 총리는 자기가 반년 전 결정한 정책을 없던 것으로 되돌렸습니다. 메르켈은 이와 같은 정치적인 수치를 감내하면서도 위험한 기술인 핵발전의 포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후쿠시마로부터 1000km 떨어진 우리는 최근 발표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현재의 23기 원전을 2035년까지 41기로 늘린다고 결정했습니다.

핵폐기 결정 후 독일 전기 수입? 거짓 소문

우리보다 일사량 조건이 훨씬 불리한 독일은 왜 태양광발전을 택했을까.
 우리보다 일사량 조건이 훨씬 불리한 독일은 왜 태양광발전을 택했을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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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핵폐기 결정 이후 주변 국가로부터 전기를 수입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 소문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은 전체 핵발전소 17기 중 절반을 없앴지만,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은 전력 순수출국입니다. 2011년에는 우리나라의 월성핵발전소 한 기의 1년 생산량과 같은 6TWh를, 2012년에는 이보다 3배 이상인 22.8TWh의 전력을 이웃 국가에 제공했습니다.

독일이 핵폐기를 선언하면서 택한 대안은 다름 아닌 재생가능에너지입니다.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었다시피, 독일은 2012년 전체 전력 중 22.9%를 재생가능에너지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일이 우리에 비해 재생가능에너지 자원이 월등히 풍부한 나라는 아닙니다. 북해를 접하고 있고 평지가 많은 독일 북부에서는 풍력자원이 좋을지 모르지만, 태양에너지 자원은 우리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어디를 가도 지평선이 보이는 독일 남부 들판을 기차 속에서 촬영한 것이다. 저 넓은 땅이 모두 농토다.
▲ 유럽의 광활한 땅 어디를 가도 지평선이 보이는 독일 남부 들판을 기차 속에서 촬영한 것이다. 저 넓은 땅이 모두 농토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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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이탈리아, 중국, 미국, 일본이 태양광 발전기 설치에 폭발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2012년 말 현재 독일은 32GW의 태양광 발전기에서 28TWh의 전기를 생산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나라입니다. 2위인 이탈리아는 독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16GW를 설치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햇볕이 매우 귀한 나라입니다. 독일서 낳은 저의 둘째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3개월간 비타민D를 인위적으로 섭취해야만 했습니다.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싶지 않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약을 먹이고 안 먹이고는 부모의 선택이지만, 햇빛이 귀한 독일에서는 비타민D를 억지로라도 먹지 않으면 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답하더군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4월 중순부터는 독일 곳곳에서 '인간 해바라기'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햇볕 좋은 날 독일 시민들은 노천카페나 잔디밭에 멍하니 앉아서 해를 향해 얼굴을 내밉니다. 겨우내 그리웠던 따뜻한 햇볕에 몸을 녹이는 것이지요.

햇볕에 얼굴 그을릴까봐 눈만 겨우 내놓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는 한국 여성들을 독일인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되묻겠지요. "얼굴을 가려야만 할 만큼 햇볕이 좋은 한국에서 왜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지 않지요?" 독일에서 햇빛이 가장 좋다는 프라이부르크의 일사량은 3.02kWh/㎡로, 우리나라 부산이나 대구의 4.7kWh/㎡에 비하면 3분의 2에 불과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적 효과, 독일은 알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경제성이 없다고들 얘기합니다. 경제성이 없기로 따지면, 우리나라보다 경제 수준이 2배 높은, 그러나 일사량은 매우 적은 독일에서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성 없는 무모한 투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10년 11월 11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10년 11월 11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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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가능에너지는 핵발전소처럼 폭발의 위험이나 방사능 공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석유나 천연가스는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데 반해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를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은 독일 내에 머물기 때문에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의 가격만 살펴보면 기존의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에 비해 비싸 보이지만, 핵발전소 사고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핵폐기물 처분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염려도 없으며, 국가 정상이 에너지원을 구걸하기 위해 외국에 나가 머리를 조아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3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 가족 또는 친척 누군가는 재생가능에너지로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또 내가 지불한 전기요금이 지역 공동체에 머물러 있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햇빛 에너지가 부족한 독일입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것 때문입니다.

경제성 없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튼튼한 독일 경제의 버팀목이 바로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입니다. 다음회에서는 독일 시민이 직접 만드는 재생에너지 열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태그:#독일 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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