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내가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앤'은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사촌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낯선 곳에 혼자 발을 디딘다. 오래 전 한집에서 같이 살았지만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이라 전혀 근황을 몰랐던 사촌은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있고, 앤은 언제 떠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년 혹은 노년에 접어든 여자, 비행기값도 꿔서 와야했던 처지, 낯설고 추운 도시, 갈 곳 없고 만날 사람 하나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 그 마음 속 추위가 느껴져서일까. 내가 마치 그런 상황에 놓인 듯한 기분이다.

앤과 만나게 되는 '요한'은 어떨까. 이런 저런 직업을 거쳐 지금은 박물관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년 혹은 노년의 남자. 관람객을 안내하며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무료하거나 관람객이 없을 때는 그림을 보는 게 일이다. 아니면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영화 <뮤지엄 아워스>  포스터

▲ 영화 <뮤지엄 아워스> 포스터 ⓒ 영화사 조제


어느 날 '빈 미술사박물관'에 온 앤을 요한이 도와주면서 알게 된 두 사람. 요한은 앤에게 박물관의 그림을 보여주고, 돈이 넉넉잖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돈이 들지 않는 곳을 골라 도시 곳곳을 안내한다. 또한 앤과 의사와의 상담을 도와주거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앤의 사촌에게 가서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영화는 앤과 요한이 함께 그림을 보거나 도시를 둘러보는 모습과 함께 박물관의 그림과 조각들을 쉴 새 없이 보여준다. 특히 '브뤼겔'의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도슨트의 해설을 들려주니 마치 내가 지금 그림 앞에 서 있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야 어찌됐든 나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작품들과 그 작품 앞을 오가거나 머물러 있는 앤과 요한 그리고 다른 관람객들을 보면서, 사람이 만든 것이 뒤에 남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먼저 떠나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뮤지엄 아워스>의 한 장면  박물관 안내인 요한, 노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 영화 <뮤지엄 아워스>의 한 장면 박물관 안내인 요한, 노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 영화사 조제


앤과 요한 두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인간관계는 거의 알 수 없고, 다만 지금 그들의 시간과 삶만 슬쩍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 세월이 담긴 작품들의 공간인 박물관에서 보내는 요한의 시간. 낯선 곳에서 홀로 방황하며 보내는 앤의 시간. 나이 듦이란 어쩜 이렇게 지난 세월이 그대로 담긴 공간과 낯선 시간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서 서로를 향한 연정보다는 애틋함이 느껴졌다. 잠깐의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또 어떤 세월의 공간과 시간으로 남게될 지 모르지만 그 여정을 함께한 내게 남은 것 역시 애틋함이었다.

결국은 홀로 감당해야 할 중년과 노년의 시간. 삶의 연속성과 함께 나이와 시간이 가져다주는 낯선 감정 또한 맞닥뜨려야할 진실이리라. 그 사이 사이 우리는 또 새로운 사람과 스치기도 하며 만나기도 하겠지. 박물관에 전시될 작품이 아닌 평범함 속에서 우리들의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뮤지엄 아워스, Museum Hours / 오스트리아, 미국 2012> (감독 : 젬 코헨, 출연 : 메리 마가렛 오하라, 보비 조머 등)
뮤지엄 아워스 중년 노년 시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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