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영화 <공범>에서 손예진이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데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아버지. 김갑수는 철저하게 본 마음을 숨기며 손예진의 공격을 막아내곤 했다. 이렇게 내공 있는 배우들이 치열하게 합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분명 <공범>이 지닌 미덕 중 하나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빠 김갑수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극 중 다정한 아빠, 동시에 뭔가 딸에게 숨기며 의심의 실마리를 던지는 아빠인 그는 실제 가정에서는 어떤 아빠일까.

"연기만 생각했던 나, 어느새 가족이 1순위였다"

 영화 <공범>에서의 김갑수.

▲ 영화 <공범>의 김갑수 영화 <공범>은 다은(손예진 분)이 15년 전 유괴살인사건의 실제 범인의 목소리에서 아빠(김갑수 분)의 존재를 느끼고 그의 과거를 추적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 선샤인필름


일단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은 기억하자. 그가 연극배우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고, 현재는 아내가 김갑수 극단의 살림을 맡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의 딸인 김아리 양이 수년 동안 힙합 뮤지션 데뷔를 위해 한 소속사 연습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아버지는 누구나 다 똑같은 아버지죠(웃음). 근데 조금은 변화했어요. 예전엔 연기가 가장 중요했는데 이게 바뀌더라고요. 불과 2년 전부터 가족이 내게 1순위가 됐어요. 그전까진 왜 연기였냐고요? 연기엔 완성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보기엔 주변에서 연기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연기에 더 신경을 많이 쓴 거죠."

지면을 빌어 김갑수는 가족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전했다. 약 40년의 내공을 지닌 이 배우도 여전히 연기에 날을 세우며 갈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묵묵히 그를 지지하며 함께 살아온 가족의 힘도 남달라 보였다.

"주위에서는 물론 '그 정도 연기했으면 이젠 대본 한번만 봐도 금방 느낌이 오시죠'라는 분도 있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표현하는 건 기술이 아니거든요. 내가 어떤 기술자라면 눈 감고도 지금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인간 표현은 쉬운 게 아니에요.

후배들에게도 얘길 해요. '네가 고민하는 거나 내 고민이나 같다. 단지 경험이 있으니 고민이 좀 짧을 뿐이다'라고요. 수없이 많은 작품을 했지만 내가 같은 역할을 한 적은 없잖아요. 항상 새로울 따름이죠.

집에서는 가족에게 항상 미안했어요. 딸이 지금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힙합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뭐든 최선을 다하면 후회할 건 없잖아요.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와는 매일 산책, 딸의 고민 이해하고파"

 영화 <공범>의 한 장면.

"연극하다 결혼해서 애를 낳고 보니 스물넷이었어요. 밥벌이가 그렇게 힘들었던 때였죠. 지금의 딸을 보면 '힙합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나'하는 생각이 물론 들죠." ⓒ 선샤인필름


몇 년 전부터 김갑수는 여유가 있는 날이면 아내와 아침에 산책을 한다. 그러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얼마 전 봤던 책 이야기도 하고 연기와 드라마, 음악 이야기를 한다. 이미 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손잡고 다니는 게 지금의 낙 중 하나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단벌 신세로 여러 해를 배고픈 연극배우로 지내야 했던 과거가 밑거름이었다. 예술을 한다며 젊은 나이에 자신의 부모 속을 한창 썩였을 청년은 어느새 중년을 지나 똑같이 예술을 꿈꾸는 딸을 두고 있었다.

"연극하다 결혼해서 애를 낳고 보니 스물넷이었어요. 밥벌이가 그렇게 힘들었던 때였죠. 지금의 딸을 보면 '힙합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나'하는 생각이 물론 들죠. 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 하니까 해보라는 거예요. 언더그라운드 래퍼, 게다가 여자로서 뭔가 이룬다는 건 더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래도 곧잘 하는 거 같아요. 같이 하는 선배 뮤지션들 눈에 띄어서 피처링도 했더라고요."

김갑수는 딸 이야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자신 또한 그 시절을 겪었기에 자칫 지금의 이야기가 딸에겐 또 다른 간섭이 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공개적으로 도울 수도 있지만 "그건 자신도 딸도 원하지 않는 길"이라며 김갑수는 변함없이 조용한 지지를 딸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젊은 연기자 지망생들에게..."더욱 철저해져야 한다"

 15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공범> 시사회에서 오직 딸을 위해 살아온 아빠 순만 역의 배우 김갑수와 아빠를 의심하기 시작한 딸 다은 역의 배우 손예진이 다정한 모습으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감정 표현에 그치겠지만, 연기자라면 역할에 맞는 감정을 뽑아내야 해요. 철저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이정민


어찌 보면 마냥 인자해보이고, 따뜻할 것 같지만 연기에 있어서 김갑수는 철저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던지면 흩어질 가벼운 말이 아니다. 비전공자에 고졸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무의미할 정도로 몸으로 부딪히며 익혀왔던 길이기에 감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김갑수는 연기자 지망생, 그리고 가수들의 연기자 활동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드러냈다.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예전보다는 기회가 많아진 건 사실입니다. 일단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연기도 할 수 있고 예능도 할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죠. 그런 만큼 연기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일도 많아지는 것 같아 아쉬움은 있습니다. 자칫 연기자는 돈을 참 쉽게 번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연기는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감각이란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나 결국 그 안에 갖고 있어요. 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감정 표현에 그치겠지만, 연기자라면 역할에 맞는 감정을 뽑아내야 해요. 철저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화 속 진실은 따로 있어요. 현실에서 내가 진실성을 갖고 살듯 영화 속 진실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걸 이해하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해요. 좋은 연기자는 정말 철저해야 합니다.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컵 하나를 집는 것도 그냥 집지 않아야 하거든요. 역할에 맞게 해야지 습관에 따라 하면 안돼요."

이쯤 되면 '김갑수 연기교실'의 정수라고 할 수 있겠다. 나름의 경험에서 얻은 배움이었다. '같은 역할이라면 10번을 연기해도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김갑수가 애정을 갖고 만나는 후배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었다. 얼마 전 한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도 김갑수는 같은 걸 주문했다고 한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된 만큼 연기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연기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분야에서 연기자로 인정을 받는다는 건 열정 뿐만 아니라 훈련도 있어야 하거든요. 기회가 많은 만큼 경쟁은 심합니다. 그러면서 자칫 잘못 평가받는 일도 많을 거예요. 그럴수록 반듯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인간을 표현하는 연기자의 본분을 알고 진실성을 갖고 가야합니다."

 영화 <공범>의 한 장면.

영화 <공범>의 한 장면. ⓒ 선샤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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