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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열린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답변하는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열린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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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머릿속이 몽롱해지며 저절로 눈이 감긴다. 신나게 자판 치던 손가락이 미끄러져 알 수 없는 암호가 모니터에 가득하다. 체력이 바닥났음을 온몸으로 증명할 즈음, 국정감사가 끝났다.

이쯤 되니 "감사 시작 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국정감사를 하라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조항이 참으로 인본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쉬지 않고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잠을 자지 않고 얼만큼 집중력을 발휘하는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 조항이 아닌가 싶다. 순전히 보좌관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말이다.

국정감사 끝, 하지만...

사실 보좌관 입장에서 '국정감사가 끝났다'는 말은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나왔다'가 아니라 '터널 끝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는 의미이다.

국회운영위원회, 여성위원회, 정보위원회 등 겸임으로 하는 상임위의 경우, 다른 상임위가 끝나야 비로소 국정감사가 시작되니 실질적으로 '모두' 끝난 게 아니다. 또,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제 본격적으로 2014년도 예산 심의에 들어가는 등 국정감사가 끝나도 본회의, 예산결산 심의, 법안심사 등 정기국회에서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들이 연말까지 이어진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올해 인사청문회까지 해야 한다. 대정부질의와 인사청문회가 겹쳐 있는 의원실은 지금 '악마의 레이스'를 뛰고 있다.

'국정감사가 끝났다' 뒤에 찍힐 문장부호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국정감사 막바지에 이르러 연중 아무 때나 국정감사를 실시하자는, 이른바 '상시국감' 이야기가 나왔다. 일 년 내내 국정감사를 하자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다.

민주당은 상임위별로 연간 30일 이내에서 1주 단위로 4회 정도 분산해 실시하자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고, 새누리당도 상시국감 필요성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의당도 상임위별로 상시국감을 실시하고, 감사원 감사 의뢰 요건을 본회의 의결에서 상임위 의결로 완화하며, 예산상 불이익 또는 기관장 해임 등 강력한 조치로 시정·보완  요구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국정감사 3대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상시국감은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국정감사 문제점을 이야기 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대안이다. 상시국감이 제기되는 직접적 배경에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기관을 한꺼번에 감사하는 현재의 관행상 깊이 있는 국정감사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피감기관 숫자를 살펴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올해 국정감사 대상 기관은 628개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16개 상임위가 있으니 평균적으로 따지면, 한 상임위 당 약 39개 기관을 감사하는 셈이다. 피감기관 숫자가 적은 겸임 상임위 3곳을 제외하면 평균은 47개 기관으로 뛰어오른다. 주말과 종합 국감을 빼면 대략 12일~13일 동안 진행되니 하루 평균 3~4개 기관을 감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피감기관이 가장 많아 무려 104개였고,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이름도 정확히 적기 어려운 상임위인 만큼 하루에 27개 기관을 감사하는 기개를 보였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대상 기관이 많으니, 당연히 질의시간은 짧다. 첫 번째 질의에 7분~8분, 추가질의 5분. 3차, 4차 질의까지 하더라도 20여 분의 시간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질의하는 입장에서는 일분일초가 금쪽같은데 답변하는 장관이나 기관장, 증인이 핵심에서 어긋난 말을 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간을 허비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자료요청에서부터 '창과 방패'의 싸움은 시작된다. 원하는 자료를 정확히 받아야 질의가 가능한데 자료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고용률 70% 로드맵 추진점검 회의를 진행했다기에 회의 자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회의자료 대신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인 과제들로서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처 간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제출토록 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이 왔다.

국정감사 무용론이 노리는 것은?

국회는 국회법상 '비공개회의록 및 비밀 참고자료 열람'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물며 공개된 회의인데, 내용이 확정될 때까지 회의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어떤 기관은 계속 수치가 잘못 집계된 자료를 보내서 정정에 정정을 거듭했고, 어떤 기관은 국정감사 당일 새벽까지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아 담당 보좌진이 해당 기관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마트에브리데이에 대한 추가 출점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변종 SSM에 대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의 불성실한 답변에 대해서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직원 교육을 잘못시킨 제 책임이 크다"고 사과했다.
▲ 증인 출석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마트에브리데이에 대한 추가 출점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변종 SSM에 대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의 불성실한 답변에 대해서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직원 교육을 잘못시킨 제 책임이 크다"고 사과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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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출을 둘러싼 싸움이 고전적이라면, 증인 채택을 둘러싼 싸움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현재 증인 선정의 원칙과 기준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개인을 증인으로 채택할지, 말지에 대해 협의하니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힌다. 그러다 보니 재벌 기업의 총수나 총수 일가는 증인으로 부르면 안 되지만 계열사 사장은 된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준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업인을 부르는 이유는 국회의 권위를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증인을 부르면 앞서 말했듯 일분일초도 아까운 짧은 질의 시간 중 일부를 증인 질의에 할애해야 한다. 이른바 '기업인 길들이기'에 사용할 만큼 질의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보좌진들은 서너 달 전부터 국정감사를 준비한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잠깐 집에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오겠다"고 말하는 게 일상이다. 짧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감 시작 전 사전 보도자료를 내고, 자료집도 만든다. 연구용역을 하거나 직접 실시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자료도 만든다. 단언컨대, 국정감사를 허투루 준비하는 의원실은 없다. 정책질의 없이 정쟁만 하겠다고 마음먹는 국회의원도 없다. 국정감사를 의미 없는 쇼로 전락시키는 것은 언론일 때가 더 많다.

국정감사에 대해 언론이 붙인 별칭은 군기잡기, 흠집내기, 윽박지르기에서부터 호통국감, 부실국감, 정쟁국감 등 죄다 부정적인 언어다. 국정감사가 의원들의 이벤트 장으로 전락했다며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정의 골을 메우고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이 되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합리적인 국정감사 문화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 지적하고, "민생과 동떨어진 정쟁은 일절 삼간다는 신사협정도 맺고, 이를 어기는 의원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감 현장에서 적극 제지하는 등의 구체적 방안도 마련해 이행해야 한다"는 권고도 한다. 기업 회장을 부르는 국회의원은 기업에게 후원 받으려는 것이라는 식으로 믿거나 말거나 의혹을 던지기도 한다.

국정감사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사실과 왜곡은 구분되어야 한다. 문제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입법부는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운영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입법과 예산심의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며, 국정의 잘못된 부분을 적발하고 시정한다. 즉, 국정감사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입법·예산심의·국정통제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것이 국회가 지닌 '일반 국정에 관한 권한'이다.

국정감사는 유신 때 폐지되었다가 민주화 직후인 1988년 부활됐다. 독재정권에게 국정감사는 불편하고, 불필요하다. 국정감사는 민주화의 산물이다.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로 그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특히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에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중인 재판 또는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감사 및 조사의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즉,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것은 감사 및 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국정감사권은 국정 전반을 한 뼘의 성역 없이 파헤칠 수 있는 입법부의 거의 유일하고, 가장 막강한 권한이다.

피감기관의 과도한 친절함... 자료나 제대로 주시길

국정감사 실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국정감사가 무용하다는 주장은, 인간이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에 기초한다. 환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입법부가 하는 일을 쓸모 없는 일로 취급하고, 입법부를 귀찮은 존재로 치부해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국정감사를 더 잘하기 위한 제도 개선 요구는 환영하지만, 국정감사 의미를 퇴색시키고 국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지적은 사양한다.

국정감사장 평면도까지 제작한 기획재정부. 이런 친절함(?) 실천보다는 자료 제출을 좀 더 성실히 해주면 좋겠다.
 국정감사장 평면도까지 제작한 기획재정부. 이런 친절함(?) 실천보다는 자료 제출을 좀 더 성실히 해주면 좋겠다.
ⓒ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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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행정부(기획재정부)를 향해 사소한 제도 개선을 권한다. 내년부터 과도한 친절은 지양하면 좋겠다. 국정감사장은 넓지 않다. 국정감사장과 휴게실 등 이용공간이라고 해봐야 반경 50미터 이내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안내문을 곳곳에 붙였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안내문을 소책자로도 만들었다. 건물 지도와 구내식당 이동경로, 주차장 안내문도 있다. 보좌진들이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장소도 못 찾고 헤맬 거라고 생각한 걸까?

국정감사 전용 화장실은 뭔가. 다행히 '외부인 출입금지'는 아니어서 부처 공무원들도 자유롭게 이용했다. 화장실 안에 국정감사 전용 각종 일회용품을 완비해서 전용 화장실인가? 일회용 칫솔은 물론 양치 컵까지 크기 별로 있었다. 1박2일 국정감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스킨·로션·헤어젤은 왜 있었는지 모르겠다. 면봉도 한 통 있었다.

오래전 장학사 맞이하는 학교처럼 복도에 광을 낸 건 아닌지 사뭇 걱정된다. 친절도 적당히 하자. 여유가 좀 있다면, 자료 제출에 좀 더 힘을 써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선민씨는 정의당 박원석 국회의원 보좌진입니다.



태그:#국정감사, #피감 기관, #국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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