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범>의 한 장면.

영화 <공범>은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앞두고, 다은이 자신의 아버지를 범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선샤인필름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영화 <공범>을 통해 우린 김갑수의 또다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겠다. 물론 약 40년이라는 그의 연기적 내공을 하나의 단면으로 쪼개서 느끼기에 한 작품으로 성이 차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김갑수는 연극 무대와 드라마를 넘어 영화로 재도약 중임은 분명했다.

스릴러라는 탈을 썼지만 다소 심심한 영화적 설정에 김갑수도 걱정은 있었나 보다. "또 다른 스릴러의 면모로 보였으면 좋겠는데 덜 자극적이어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는 말로 인터뷰의 처음을 채웠던 그였다.

개봉 일주일 만에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공범>은 분명 기존 스릴러와는 다른 공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김갑수가 그동안 제작보고회나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했듯 딸 다은 역을 맡은 손예진의 '감정 흐름'이 중심인 영화였다. 사건이 아닌 감정. 자칫 모 아니면 도의 설정이다. 올해 등장한 한국 스릴러 영화만 해도 복잡하게 꼬인 사건과 이야기의 반전이 주효하지 않았나.

딸 못지않게 힘들었던 아빠 순만..."수비하는 연기의 맛은 일품"

 영화 <공범>의 한 장면.

"나도 연기하기 쉽진 않았지만 예진이가 더 어려웠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의심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 선샤인필름


드라마 <연애시대> 이후 손예진과 다시 한 번 부녀지간으로 만난 김갑수는 끊임없이 손예진에 대해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그 연기를 받아준 김갑수의 내공이 있기에 가능했던 호흡이지 않았나.

"(웃음) 예진이 못지않게 어려웠죠. 예진이는 의심하고 난 거기서 벗어나야 하고 한쪽은 공격이고 난 방어를 하는 거죠. 방어 또한 잘 해야 해요. 분명 내가 쉽진 않았지만 예진이가 더 어려웠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의심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나 역시 매번 피하다가도 어느 정도는 의심거리를 줘야 했죠. 그 조절이 힘들긴 했어요. 하지만 이런 역할이 연기의 맛을 느끼기엔 좋죠. 연기자라면 내재된 감정을 연기하고 싶어 하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아무 표현도 안하는 것 같고 너무 나가면 들킬 것 같고 애매해요(웃음). <공범> 역시 밋밋할 수도 있는 작품인데 잘 피해간 거 같아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이번 인터뷰에서도 손예진 사랑은 벗어나지 않았다. 김갑수답다고 할까. 어디서든 튀지 않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그의 연기철학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김갑수는 영화를 앞으로 볼 관객들에게 "영화 속으로 더 들어와서 봐 달라"는 관전 포인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감정 연기를 만끽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TV를 보듯 떨어져 보시지 말고, 영화 속에 본인이 들어오면 새로운 걸 느낄 겁니다. 멀리서 보는 느낌과 다르거든요. '이게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이다'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이유 있었던 김갑수의 선택...<공범>에 담긴 김갑수의 반전

 영화 <공범>에서의 김갑수.

"오는 역할이 대부분 어떤 조직의 보스이거나 악한의 모습이었죠. 딱히 마음이 가질 않더라고요. '갈수록 장르 영화가 유행이 되고 있구나' 느끼던 차에 <공범>을 만난 겁니다." ⓒ 선샤인필름


1977년 극단 소속으로 데뷔 후 16년 간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섰다. 그리고 1994년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계에 진출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TV 드라마로 지평을 넓혔다. 김갑수가 거쳐 온 작품 목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래의 배우들이 명멸할 때 그는 꾸준히 그리고 조용히 건재함을 보이고 있었다. 일련의 흐름에 어떤 비결이 있었던 걸까.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우연찮게 드라마를 하게 됐고 또 우연찮게 영화 <태백산맥>(임권택 연출)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영화 몇 작품을 좀 더 했는데 그땐 대도시에 상영관이 몇 개밖에 없을 시기였죠. 제가 의도한 대로 영화가 잘 안되더라고요. <태백산맥>을 통해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였기에 다들 그쪽으로 내 연기를 밀고 가라고 했었죠. 근데 전 다른 장르에 욕심이 났어요. 나름대로는 실험적 행보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택한 게 <금홍아 금홍아> <지독한 사랑> 등이었어요.

또 한 편으로 보면 영화의 호흡은 길어요. 한 작품을 하는 것에 수년이 걸릴 때도 있죠. 당시 다양한 연기에 대한 욕심 있었고, 그래서 드라마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드라마는 끊임없이 했습니다. 연기하는 맛은 있었어요. 내게 주어지는 역할을 풀어가는 맛이 있는 거죠.

그러다가 영화 시스템이 바뀌었잖아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여러 환경 요인이 달라졌죠. 영화를 한동안 못 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영화에 대한 갈증은 있기 마련인데 기회가 많이 주어지진 않았어요. 오는 역할이 대부분 어떤 조직의 보스이거나 악한의 모습이었죠. 딱히 마음이 가질 않더라고요. '갈수록 장르 영화가 유행이 되고 있구나' 느끼던 차에 <공범>을 만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손예진과 신인 국동석 감독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었다. 여기에 <너는 내 운명> <그 놈 목소리> <내 사랑 내 곁에> 등을 연출해 명망이 높았던 박진표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김갑수가 보기엔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조합"이었다.

제작자인 박진표 감독의 귀띔이지만 <공범>에서 김갑수의 비하인드가 있다. 극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마지막 장면은 김갑수의 아이디어가 차용돼 연출됐다는 사실이다. 풍부한 연극 무대 경험이 있기에 마지막 장면을 마치 무대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느낌을 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름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위해 김갑수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연습실에서 표정 연기를 연습했다. 사실 김갑수는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진실 되게 하면 믿음을 줄 수 있다"가 그의 연기 철학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따라하지는 말자. 김갑수 스스로도 "철저하게 연기는 수많은 반복과 훈련을 통해 나온다"고 주장했다. 결국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그 나름의 연기 방식이었다.

*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공범 김갑수 손예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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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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