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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독일을 찾았습니다. 왜 독일이냐구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2차 대전 후 분단국가였고,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나라 크기도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별로 없이 인적 자원에 의존하고 수출국가라는 점까지.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한국과 독일은 전혀 달리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갈등은 여전하고, 계층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거셉니다.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국가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모델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어떻게 '유럽의 강자'으로 부활했을까, 궁금했습니다. 10여일동안 독일 곳곳을 다녔습니다. 거대 자동차회사 노동자부터 기업인, 교수,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집자말]
 독일은 2000년초까지만해도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고실업, 재정악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경제개혁과 함께 꾸준한 교육과 연구개발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어 메르켈 총리의 대화와설득의 리더십과 더해지면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럽 금융경제의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전경.
 독일은 2000년초까지만해도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고실업, 재정악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경제개혁과 함께 꾸준한 교육과 연구개발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이어 메르켈 총리의 대화와설득의 리더십과 더해지면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럽 금융경제의 중심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전경.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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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오후 독일 베를린시 포츠담광장(Potsdamer Platz). 휴일인 이날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지난 1989년 11월 11일 밤 수천명의 동·서 베를린 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돌로 세워진 장벽의 조각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의 상징적인 철거 작업이었다.

독일 최고의 빌딩지역으로 바뀐 이곳엔 24년 전의 모습 일부가 그대로 있다. 그 장벽들 사이를 지나다가 맨끝 장벽 앞에 섰다. 빨간색 페인트로 씌여진 문구 때문이었다. '넥스트 월 투 폴, 월스트리트(NEXT WALL TO FALL, WALL STREET)'. 굳이 풀어보면 '다음에 무너질 장벽은 월스트리트'였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유럽 한복판 베를린 장벽에 등장한 것이다.

 독일 베를린시의 포츠담 광장 한켠에 마련된 옛 베를린 장벽의 일부.
 독일 베를린시의 포츠담 광장 한켠에 마련된 옛 베를린 장벽의 일부.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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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영국에서 왔다고 소개한 리즈씨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아래 쪽으로 흔들어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홍역을 앓았다. 아니 지금도 앓고 있다. 특히 유럽 남부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때 '유럽의 병자' 소리 들었던 독일 

하지만 예외도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경제위기에도 유럽국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나라가 독일"이라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줄여나가는 독일식 모델을 유럽 전체가 따라할 정도"라고 말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독일을 배우자"고 할 정도였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유럽판)의 지난달 14일치 표지그림. 독일 총선을 앞두고 유럽 각국이 처한 위기를 구할 유일한 리더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상징화했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유럽판)의 지난달 14일치 표지그림. 독일 총선을 앞두고 유럽 각국이 처한 위기를 구할 유일한 리더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상징화했다.
ⓒ 이코노미스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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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9월 14일자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잡지 표지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을 상징하는 모형들이 쓰러져가거나 흔들리는 모습 속에 메르켈 총리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다스릴수 있는 단 한 명의 여성(One woman to rule them all)'이라고 적었다. 잡지는 독일 총선을 전망하는 기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위기의 유럽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썼다.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의 빈프리트 베버(Winfried W. Weber) 교수는 "지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 경제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독과의 통일 후유증으로 실업증가와 소비침체의 악순환을 겪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2000년 3.3%였던 경제성장률은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0.0%, -0.4%로 추락했다. 실업자수도 2001년 313만명에서 2005년엔 465만명까지 늘었다.

이를 두고 서구 언론들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고 비꼬았다. 독일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한스베르너 진 전 뮌헨대 교수는 2003년에 <독일이 구제될 수 있을까>(Ist Deutschland noch zu retten?)라는 책을 내기도했다. 그는 책에서 독일의 경제와 사회 등을 비관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미 오래 전에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김택환 교수는 "결국 당시 집권당인 진보성향의 사회민주당(SPD) 소속 슈뢰더 총리가 위기 극복을 위해 '아젠다 2010( Agenda 2010)'을 추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라고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노동시장 규제 완화와 연금 등 사회복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슈뢰더 정부는 이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 저항 부른 하르츠 개혁, 그후 달라진 독일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김 교수는 "당시에 개혁안을 두고 '슈뢰더의 정치적 자살'이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민당의 지지세력인 노조원들이 당시 대거 당사로 몰려들어 '슈뢰더는 당의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등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고 전했다.

결국 슈뢰더 총리는 2005년 9월 국민적 반발에 부딪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보수성향의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최초 여성 의장인 메르켈이 총리로 올라섰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슈뢰더의 개혁은 메르켈 시대의 독일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면서 "2006년 이후 독일 경제는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경제지표들이 이를 말해준다. 경제성장률은 2006년과 2007년 각각 3.7%와 3.3%을 기록했다. 이전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였다. 2005년 7863억 유로였던 수출은 2011년에 1조612억 유로로 사상 처음으로 1조 유로를 돌파했다. 수출증가율은 2006년 이후(금융위기 때 제외) 10%가 넘는 증가세를 보였다. 조 연구위원은 "이같은 수출증가로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특히 '실업자 줄이기'에 맞춘 노동시장 정책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OECD 자료를 보면 독일 전체고용자수는 2004년 3546만명에서 2011년 3974만명으로 400만명 넘게 증가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2005년 11.3%에 달했던 것이 2011년에 절반 수준인 5.9%까지 떨어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고용 기적'이라는 평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 파견직 노동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임금 수준 역시 정규직에 비해 크게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지난달 총선에서 저임금 파견 노동자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의 폴만 소장은 "아젠다 2010 이후 노동시장에서 파견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은 이들 파견노동자의 임금향상 등 복지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했다"고 말했다. 

"'재벌당' 자민당의 몰락, 이 정도일 줄이야"

독일 작센안할트 주(州)의 재무장관을 지냈던 칼 하인즈피케 교수(막데부르크대학)는 "하르츠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때 함께 참여했다"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일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약간 미국 쪽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처럼 되지 않을 것이며 그같은 (미국식) 시스템으로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독일에선 여전히 노동조합의 영향이 강하다"면서 "경쟁력 있는 많은 중견기업과 이를 위한 직업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시스템을 유지해 온 독일은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를 유일하게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는 나라다. 특히 독일의 독특한 현장실습 중심의 교육훈련체제 역시 강한 독일의 바탕이 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상징이된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 지난달 7일 독일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수천여명이 모여 '좀더 나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독일 역시 최근 10년새 파견직과 단기일자리가 늘면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일 독일의 상징이된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 지난달 7일 독일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수천여명이 모여 '좀더 나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독일 역시 최근 10년새 파견직과 단기일자리가 늘면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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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베버(Winfried W. Weber) 교수는 "고교 시절부터 다양한 현장실습을 통해 자기분야에서 숙련을 높여 나가고 있다"면서 "정부와 기업도 직업교육에 대한 꾸준한 지원으로 독일 제조업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 2010년 독일 정부는 사상 최고의 긴축예산 편성에 들어갔다. 집권여당인 기민당 쪽에서도 복지제도 축소 차원에서 교육예산을 줄이겠다고 연방정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단호했다.

그는 당시 "교육비를 줄이면 어떻게 독일의 미래가 있겠는가"라며 "공교육을 통한 숙련된 기술자 양성과 기술 승계없이 독일의 위상을 지킬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당시 전 부처의 예산을 줄이면서도 유일하게 교육과 연구개발 예산은 오히려 7.2%나 늘렸다.

이번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켈 쪽에선 교육 및 가계복지 분야에서의 투자를 크게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아동수당도 늘리고 저소득층의 연금수령액도 올려주기로 했다. 최저임금 수준도 올리고, 산업과 중소기업을 위한 기술연구 투자 역시 큰 폭으로 증가시키겠다고 했다. 이같은 사회복지 공약은 야당인 사민당 등과의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폴만 소장은 "과거 사민당 집권시절에 추진했던 하르츠 개혁으로 현재 독일의 경제적 성장과 안정의 기반이 됐다"면서 "(사민당이) 지난 총선보다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메르켈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각종 사회복지, 교육 정책 등에서 기민당과의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면서 현재의 경제적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이 집권당에 표를 더 많이 던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이번 총선이 메르켈의 승리와 사민당의 패배로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독일 국민들이 자유민주당(FDP)에 연방의회 의석을 단 한 자리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1948년에 만들어진 독일 자민당은 친기업적, 친시장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일부에선 '재벌당'으로 불릴 정도였다.

지난 2009년 총선에서 14.6%의 지지를 얻어 연방 의회에 93석이나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지지율이 4.8%에 불과해 연방의회 진출이 좌절됐다. 독일은 소수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 5% 제한선이 있다. 총선에서 5% 이상의 유권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의회에 들어갈 수 없다. 김 교수는 "선거 결과 메르켈이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하겠지만, 전체 득표수만 따져보면 야당이 더 많았다"면서 "특히 재벌당이라 불리는 자민당이 이 정도까지 몰락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강조했다.

재벌 없는 독일, 제2의 경제기적 비결은?

 독일이 제2의 경제기적을 이룰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적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바탕이 됐다. 국가는 국민들 스스로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인프라를 제공한다. 교육과 복지 등 사회보장체제를 확실히하고, 성장의 과실과 파이는 공평하게 나누는 사회를 지향한다. 사진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하이델베르크의 유명한 산책로인 '철학자의 길'
 독일이 제2의 경제기적을 이룰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적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바탕이 됐다. 국가는 국민들 스스로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인프라를 제공한다. 교육과 복지 등 사회보장체제를 확실히하고, 성장의 과실과 파이는 공평하게 나누는 사회를 지향한다. 사진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하이델베르크의 유명한 산책로인 '철학자의 길'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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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츠담 광장. 초가을 볕이 뜨거웠다. 베를린에서도 대형 상업빌딩이 밀집해 있는 이곳 주변엔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 제품 광고가 내걸려 있다. 그러나 독일에는 정작 삼성 같은 재벌 기업은 없다. 이미 2차대전 이후 거의 해체됐다.

김택환 교수는 "독일에선 총수 오너의 황제경영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일감을 몰아주거나 독단적인 의사결정 같은 한국식 재벌활동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정책은 정권의 자의적인 판단과 재벌과의 정경유착, 노동 기본권의 억압과 중소기업의 배제 등으로 진행돼 왔다"면서 "이는 결국 시장경제의 왜곡으로 이어졌고, 독일은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제2의 경제기적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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