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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봄옷은 바깥구경을 며칠 못하고 옷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지난겨울 유난히 혹독했던 추위는 빙하가 녹아 해수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기후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기후변화는 남태평양에 잠기는 섬과 얼음 위를 위태롭게 걷는 북극곰으로 상징됩니다. 과연 그뿐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통계수치나 외국사례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후변화'를 찾아보려 합니다. '굿바이 사계절'은 다른 세계에 살게 될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올해 장마는 평년보다 일찍 시작돼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해마다 장마의 시작과 끝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기상청의 '장마 예보'는 2009년부터 사라졌다.
 올해 장마는 평년보다 일찍 시작돼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해마다 장마의 시작과 끝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기상청의 '장마 예보'는 2009년부터 사라졌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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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였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한복판에서 신발 밑창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매일 신다시피 한 여름용 샌들은 일주일 넘게 계속 젖어 있었다. 7월의 하늘이 좀처럼 말간 해를 보여주지 않으니 당연했다. 물기로 퉁퉁 불은 신발은 끝내 망가지고 말았다. 이날따라 밑창을 수선할 현금도 없었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서둘러 가까운 신발가게로 들어갔다.

운동화와 샌들, 슬리퍼 등 다양한 종류로 채워진 매장 한쪽 벽은 화려한 색깔로 채워져 있었다. '레인부츠'였다. 한때 장화라 부르던 이 신발은 몇 년 전부터 이름이 바뀌었다. 신는 사람도 변했다. 친구의 레인부츠를 신기하게 바라봤던 어느 여름 이후, 비 오는 날이면 거리에선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레인부츠를 신은 20~30대 여성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망가진 샌들... 이제 무슨 신발로 장마를 버틸까?

갈수록 비오는 날도, 양도 많아지는 날씨 탓에 사람들은 "이제 장마보다 우기(雨期)"라고 말한다. 기자도 올 여름을 나며 방수용 샌들과 제습기에 의존하고 있다.
 갈수록 비오는 날도, 양도 많아지는 날씨 탓에 사람들은 "이제 장마보다 우기(雨期)"라고 말한다. 기자도 올 여름을 나며 방수용 샌들과 제습기에 의존하고 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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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A기자(27)도 지난해 여름 ㅎ브랜드에서 나온 갈색 레인부츠를 장만했다. 그는 "예전에는 신발이 비에 젖어도 한 두 번이라 참고 말았는데, 점점 횟수가 늘고 비 오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레인부츠가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ㅎ브랜드 제품은 모양이나 기능은 좋지만 무거운 편이다. A기자는 "불편하지만 그래도 비올 때는 신게 된다"며 "친구 10명 중 여섯은 레인부츠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발멀티숍 '에이비씨(ABC)마트'에 따르면 2007년 판매를 시작한 이후 레인부츠 판매량은 계속 성장세를 보여왔다. 6월 판매량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5배이상 늘어났을 정도다. 또 다른 신발멀티숍 '레스모아'의 경우 레인부츠 판매를 시작한 2011년에는 판매량이 1만 켤레, 2012년에는 1만 5000켤레에 달했으며, 올해 예상 판매량은 2만 8000켤레다. 레스모아는 "6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배 많았다"며 "2012년보다 장마 시기가 빠른 데다 집중호우가 계속 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레인부츠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늘도, 거리도, 신발도 젖는 날이 잦아져서일까. 레인부츠뿐 아니라 물이 잘 빠지고 금방 마르는 기능성 신발 '아쿠아슈즈' 종류도 많이 늘었다. 역시 비를 맞아도 문제없는 고무 소재의 '젤리슈즈'를 신은 사람도 많다. 일반 샌들 가운데에도 날씨를 고려한 신발들이 등장하고 있다. 장화나 아쿠아슈즈가 익숙하지 않은 터라, 이날 최종 '찜'은 밑창부터 장식까지 고무 재질로 된 샌들이 차지했다. 며칠째 하늘을 뒤덮은 비구름 탓에 젖어도 덜 미끄럽고 금방 마르는 이 신발을 벗기 참 어렵다. 

제습기, 너 없인 '축축한 낮과 밤'을 견딜 수 없더라

2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다양한 종류의 제습기가 진열대에 놓여져 있다.
제습기는 여름철 장마와 고온다습한 날이 길어지면서 올해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2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다양한 종류의 제습기가 진열대에 놓여져 있다. 제습기는 여름철 장마와 고온다습한 날이 길어지면서 올해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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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로 장만한 여름 이불은 갓 물기를 짜낸 걸레마냥 축축했다. 16일 오전 4시, 게슴츠레한 눈으로 더듬더듬 버튼을 찾았다. 전원을 켜자 '위잉' 소리를 내며 제습기가 돌아갔다.

3년 전 여름, 인터넷쇼핑으로 산 제습기를 켜야 하는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최근 이사한 집은 예전보다 통풍이 잘되는 편이어서 제습기가 덜 필요하지 않을까 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이날 새벽 작동을 시작한 제습기는 48시간 넘게 방 안의 습기를 빨아들여야 했다. 약 2리터까지 채울 수 있는 물통이 절반 이상 채워졌다.

얼마 전 B선배(29)도 "제습기를 사려고 하는데 써본 적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물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물먹는 하마' 등 습기 제거용품이 원래 많이 팔린다지만, 제습기는 최근 새롭게 떠오른 상품이다.

CJ오쇼핑은 지난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제습기 방송 때마다 3000대씩 판매했다. 가장 널리 팔리는 ㅇ사 제습기는 주문액이 1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다. CJ오쇼핑 관계자는 "이 제품의 경우 전년 대비 판매금액이 67% 늘어났다"며 "최근 2년간 제습기 판매는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화·제습기 소비 증가... "계속 더워지면 장마 아닌 우기 개념 도입"

장마가 한 달 이상 길어지면서 거리에선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레인부츠를 신은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장마가 한 달 이상 길어지면서 거리에선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레인부츠를 신은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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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가 패션용품으로, 제습기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중배 부산대학교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날씨 영향"이라며 "강수량이나 기간이 늘어나는 등 한반도가 점점 아열대화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 원인을) 기후변화라고 하려면 더 살펴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는데, 계속 더워지면 장마가 아닌 우기(雨期) 개념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의 1973~2012년 전국 평균 강수량과 강수일수 자료를 10년 단위로 분석한 결과, 비 오는 날과 양은 실제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1973~1982년 전국 평균 강수량은 301.28밀리미터(mm), 강수일수는 16.55일이었고 1983~1992년에는 383.27mm와, 18.25일이었다. 1993~2002년 들어 각각 292.68mm, 14.32일로 줄어들었던 전국 평균강수량과 강수일수는 2003~2012년 다시 증가, 424.57mm와 19.22일을 기록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기'를 체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마가 끝났는데도 비 오는 날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기상청이 2011년 펴낸 <장마백서>에 따르면, 기후학적으로 한국의 장마는 6월 말 시작해 7월 말에 끝나는 1차 시기와 8월 중순 말 또는 하순에 시작해 9월 초 끝나는 2차 시기(가을 장마)가 있다. 가을 장마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에 한반도 날씨는 보통 6~7월 장마→8월 무더위→9월 맑음식의 특성을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장마가 끝난 8~9월에도 비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장마백서>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장마와 2차 우기(가을장마) 사이에 존재했던 상대적인 건조기가 짧아지고, 두 강수 시기의 세기가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장마 후 강수량·강수일수 늘고 있지만... 기상청 "'우기' 도입은 아직"

연도별 전국 평균 장마기간과 강수량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매년 장마기간이 끝난 후에 비가 오는 날과 그 양 역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연도별 전국 평균 장마기간과 강수량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매년 장마기간이 끝난 후에 비가 오는 날과 그 양 역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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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의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본 결과, 1973~1982년의 경우 장마기간보다 장마 종료 후 8월 31일까지 강수일수가 더 많았던 해는 네 차례였고, 1983~1992년에는 딱 한 번 있었다. 그러나 1993~2002년에는 5회로 늘어났다. 2003~2012년에는 세 번뿐이었지만, 장마기간과 강수일수가 최대 3일 차이나는 시기가 네 번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장마 후 또 장마'는 갈수록 증가하는 모양새다.

강수량을 비교해보면 변화는 더 뚜렷하다. 1973~1992년 장마 기간보다 장마가 끝난 날부터 그해 8월 31일까지 더 많은 비가 내린 경우는 1973년과 1976년, 1982년, 1992년이 전부였다. 이 숫자는 1993~2012년 들어 11회로 급증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아직 우기 개념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기상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18일 "장마가 끝나도 집중호우가 빈번하게 오니까 학자들이 '이제 우리나라도 우기라고 하자'는 제안이 있지만, 아직 정리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흔히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다 보니 일반 국민들이 '장마가 끝나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인식했는데 이제는 언제든 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다만 이 현상을 기후변화라고 섣불리 얘기할 수는 없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장마의 시작과 끝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기상청의 '장마 예보'는 2009년부터 사라졌다.


태그:#기후변화, #장마, #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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