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의 새 앨범  Escaping Gravity

넬의 새 앨범 Escaping Gravity ⓒ 울림엔터테인먼트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6월의 밤은 매력적이다. 습하지만 선선한 바람, 풀들이 뿜어내는 짙은 향기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걷고 싶게끔 만든다.

캔 맥주를 마시면서 걸어도 좋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도 좋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주어진 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계곡도 좋고, 산도 좋고, 바다도 좋다. 아파트 언저리에 만들어진 공원도 좋고 도심 변두리에 마련된 산책로도 좋다. 길을 걸으며 들여 마시는 숨 하나하나가 가슴속을 훑고 갈 때의 느낌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회복 과정일 테니까.

넬의 새 앨범 <Escaping Gravity(이스케이핑 그래비티)>는 그렇게 6월 초여름의 밤을 닮았다. 나른함을 선사했던 최근작들에 비해 생명력이 넘친다. 직선적인 MPC패드의 리프와 타격감이 부각된 드럼 소리는 이러한 역동성의 원천이다. 사운드의 촉촉한 청량함도 다시금 살아났다.

4집 <Separation Anxiety(세퍼레이션 앵자이어티)>와 3집 <Healing Process(힐링 프로세스)>보다 산뜻하고, <Healing Process(홀딩 온투 그래비티)>나 <Slip Away(슬립 어웨이)>보다 힘이 넘친다. 인디 시절 극단적인 우울함과도 거리가 멀다. 분명 어떤 기준점으로의 회귀나 변질과는 다르다.

돌이켜보면 넬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기준점이 항상 존재했다. 데뷔앨범 <Reflection Of(리플렉션 오브)>에서 선보인 극도의 우울함 덕분이다. 라디오헤드와 시네이드 오코너의 우울함이 함께 거론될 만큼 무겁고 비관적인 감성에 리스너들은 전율했다.

이후 넬이 신보를 내놓을 때마다 리스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새 앨범이 1·2집 보다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 그때보다, 또는 그때처럼 우울한가 그렇지 않은가. 초창기 넬의 사운드는 어느새 넬이 표현하는 우울함의 표준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족쇄처럼 그들을 괴롭혔다.

한숨과 설렘, 희망과 회복…당신이 여름밤을 닮았다

하지만 우울함이라는 감정에 꼭 표준이 필요할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파괴적 우울함도 있고, 이별 후 혼자 남게 된 고독한 우울함도 있다.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한 투쟁적 우울함도 있고, 희열과 분노가 뒤섞인 상태의 분열적 우울함도 있다.

불안정한 인간의 우울함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흩뿌린다. 넬의 1집 앨범은 그래서 그들의 기준이 될 수도, 본질이 될 수도 없다. 음악가에게 본질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그들이 표현하는 모든 색의 우울함이 전부 본질일 것이다.

그보다 넬의 음악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우울함의 극단이 아닌, 우울함과 대면하는 이들 특유의 이중성인지도 모르겠다. 화성이 밝은 느낌이면 멜로디가 우울하고, 반대로 화성이 우울하면 멜로디가 밝아진다. 도입부가 화사하면 가사가 어둡고, 유리알같이 맑은 레코딩 질감에 빠져든다 싶으면 노이즈 가득한 기타로 날카롭게 짓이겨버린다.

변칙적이고 간사하다. 마치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비굴함을 닮았다. 사회적 자아 뒤에 숨어있는, 나약한 '나'의 본모습 같다.

우리는 사회적 가면이 발가벗겨진 그 모습 앞에서 한없이 비겁해진다. 애써 피하려 하고 도망치며 또한 그 부조화로 괴로워한다. 그렇게 이성의 가면 아래서 꿈틀대는 히스테리.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싶고, 울고 싶고, 괴롭히고 싶고, 사랑한다 소리치고 싶은 그 기분. 그로인해 생겨나는 저주와 망상.

그 모든 무의식이 드러나는 여름밤과 넬이 어울리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숨과 설렘, 자책과 분노, 그리고 희망과 회복. 그렇게 넬의 노래는 당신이 여름밤에 느끼는 무수한 상념과 닮아있다.

리플렉션 오브 세퍼레이션 앵자이어티 NELL 이스케이핑 그래비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