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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새벽시간, 천막농성장에서 담요 한 장을 덮은 채 잠들어 있던 50대 남자의 담요 위에 누군가 물을 흠뻑 뿌렸다. 서너 시간 이상 방치한 젖은 담요는 점점 얼었다. 오전 9시경 종로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은 얼어붙은 담요를 덮고 있는 사람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죽은 것은 아닌가 걱정하면서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얼어붙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던 50대 남자는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간신히 정신을 차려 나갔다. 죽을 고비를 또 한 차례 넘긴 것이다.

# 지난 1월 왼쪽 아랫배가 아픈 게 심상치 않았다. 평소 요로결석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 지병이 도진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종합병원에 내원해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대장암'이라는 판정을 받아야만 했다. 또 이에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심혈관이 터져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재개발, 건물주는 보상 받지만 상가 세입자들의 처지는...

전 재산을 들여 시작했던 가게 주인은 가게를 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어 쫓겨났다. 종로구청 앞에 1평 남짓의 천막을 쳐놓은 채 지난 2011년부터 3년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서울지역 공평동 상가 대책위원회' 이승철 위원장(57).

24일 오전 종로구 공평동 한 빌딩에 입주해 있는 시행사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펼치고 있는 이승철 위원장
 24일 오전 종로구 공평동 한 빌딩에 입주해 있는 시행사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펼치고 있는 이승철 위원장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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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3년간의 길거리 천막농성 투쟁으로 잃은 건 '재산'과 '건강'이요. 얻은 건 '사회에 대한 불신'과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라고 말했다.

벌써 5년째 가족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경제적으로는 물론 건강마저도 절벽 끝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것.

이승철씨는 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어 수용이 되었다면 이를 받아들이면 될 텐데, 무슨 이유 때문에 온기 하나 없는 좁은 천막 안에서 24시간 농성을 3년씩이나 계속하고 있는 걸까?

- 장기간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가.
"종로구 공평 재개발 사업 때문이다. 공평 재개발 지구(1,2,4지구)는 종로 사거리 인근으로 국세청 쪽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대로변 왼쪽에 펼쳐져 있는 지역이다.

재개발 사업은 지난 2007년 말경부터 시작 되었다. 2006년 12월경 종로구 공평동 59번지 5층 건물 지하1층에 보증금 2천만 원에 월 170만 원에 세를 얻고, 1종 유흥업 허가를 받아 노래주점을 오픈한 후 운영하던 중 1년여 만에 이런 분규에 휘말린 것이다."

- 재개발 사업이 결정된 후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받고 나오면 될텐데 결정에 불복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시행사인 P사는 2007년 말부터 종로구 공평 2지구에 대한 토지매입을 시작했다. 수개월만인 2008년 1월경 토지 매입이 거의 마무리 되면서 공평2 지구 상가세입자들만 허공에 뜨게 되었다. 현행법에서 재개발로 수용되는 경우 가게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관계로 하루아침에 상가권리와 시설비등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 때문이다.

시행사는 토지매입을 완료한 후 이해할 수 없는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빈 상가에 재임대를 주지 않으면서 상권을 공동화 시켜 임대료는 물론 현상유지조차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개발사업을 당장 착수 하는 게 아니기에 임차상인에게 재임대를 내주고 상권을 유지해도 사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음에도 이를 거부했다.

실제 공평2지구는 2008년 1월경 보상이 마무리 되었지만 5년이 지난 현재 까지 착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건물 또한 철거를 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도심내 흉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시행사는 당시 시뻘건 페인트로 '철거지역'이라고 적어놓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등 조직적인 상권 죽이기로 인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행사에게 상가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아 팔고 나가겠다고 하니, 안된다고 했다.

저희 상인들은 개발이 진행될 때 까지만 이라도 1년 또는 2년 단위로 계약서를 써주고 임대료를 받아갈 것을 요구하였지만 그 마저도 거절당했다. '회사는 당신들이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우리 공평2지구 상인들은 시행사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2009년 1월경 '토지와주택 전국철거민 협의회'(이하 전철협)에 가입하게 되었다. 2009년 6월경부터는 1인 시위와 집회를 통해 종로구청이 나서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이를 무시하면서 상인들의 절박함은 무참히 짓밟혔다."

 종로 1가 도심내 번화가 인근으로 목 좋은 상가였던 공평2지구는 현재 5년이 넘게 건물 철거도 하지 않은채 이 같이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종로 1가 도심내 번화가 인근으로 목 좋은 상가였던 공평2지구는 현재 5년이 넘게 건물 철거도 하지 않은채 이 같이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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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는 것은 '수평이동-생계대책 마련- 현실적 보상'

- 전철협에 가입한 후 시행사는 어떤 태도로 나왔는가.
"공평 2지구 상인들이 조직적으로 맞서자 시행사는 더욱 교묘한 수법으로 조직의 분열을 끊임없이 꾀했다. 그렇게 갈등이 계속되던 중 2010년 5월 30일 경에는 명도절차가 진행되었다. 이날 8곳에 불과한 가게를 철거하겠다고 시행사 측에서는 용역 깡패를 400명이 넘게 동원해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맞서 저항을 해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했다. 용역깡패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이 난무했다. 저 같은 경우 건물 4층에 있다가 이들 용역깡패들에게 붙잡힌 후 1층으로 질질 끌려 내려오면서 무수한 구타를 당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왼쪽 다리 인대가 끊어지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어야만 했다. 집 사람은 용역깡패가 배를 걷어차는 바람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회원 중에는 코뼈가 나가는 등 용역깡패들의 폭행으로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야만 했다."

- 2010년 5월 명도 절차를 진행한 후 시행사의 반응은 어떻게 나왔는가.
"철거를 당한 후 우리 상인들은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천막을 본부 삼아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자 시행사는 용역 깡패들을 동원해 위협하기 시작했다. 8개월 가까이 용문신을 한 깡패들이 대책위 동지들의 일거수일투족 감시했다.

2010년 11월 30일에는 또 한 번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시행사는 일괄 협상이 아닌 회원 8명 중 6명에 대해서만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협상에서 제외된 두 세대는 대책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저와 총무로 활동한 이상미 동지였다.

- 종로구청 앞 천막농성은 시행사가 2010년 10월 부분 협상을 통한 조직 와해 시도 이후에 시작하게 된 것인가?
"그렇다. 전철협에 가입한 후 대책위 위원장인 저와 총무를 맡고 있는 이상미 동지만을 제외한 채 비밀리에 나머지 6세대와만 보상에 합의함으로서 이중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너무나도 억울해 2011년 초부터는 종로구청 앞에서 24시간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11년 같은 경우는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가운데 스치로풀 한 장 바닥에 깔고 담요 한 장으로 긴 겨울을 하루도 빠짐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 투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지난해 7월에는 심혈관이 터져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만 했던 것은 물론 이제는 대장암 까지 발병한 상황이다. 의사는 금연하고 절대적으로 안정한 후 수술을 권하고 있지만 투쟁 때문에 수술마저 7월 달로 미룬 상태다."

지난 겨울 이승철 위원장이 추위를 견뎌내면서 가졌던 방한 용품은 이 담요 한장이 그 전부였다.
 지난 겨울 이승철 위원장이 추위를 견뎌내면서 가졌던 방한 용품은 이 담요 한장이 그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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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적으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박근혜 정부가 민생문제를 살피고 복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점에 대해서 좋게 평가 할 수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철거민 문제에 대해 정책적 대안이 없고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재개발 관련법과 제도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개발지역 주민이 주거권 생존권을 잃고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불합리성에 대해서 정치인과 국가공무원들은 반성해야만 한다. 왜 재개발 주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건가? 가옥주의 재산은 반 토막이 난 후 세입자로 전락해야 하며, 주거세입자 상가세입자는 철거민의 권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 쫓겨 노숙자 신세가 되어야만 하는가?"

- 종로구청에 항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8년 시행사와 저희 공평상인들의 마찰이 시작된 후 2013년 4월 현재까지 시행사와는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한 바 없다. 그럼에도 구청 담당 공무원들은 제가 돈을 많이 요구하여 협상이 되지 않는 것처럼 언론이나 사회에 유포하여 엄청난 심적 고통과 압박을 주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주거 이주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1,680만 원 정도가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투쟁을 하는 사람은 공공임대 아파트를 받는데 반해, 투쟁을 안 하는 사람은 공공임대 주택을 안준다. 법에는 주거세입자들에게 공공아파트를 주게 되어 있지만 문제는 이를 안줘도 조합을 제재할 만한 법적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가세입자들의 권리금은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목 좋은 상가에는 적게는 수천만원에 많게는 수억원 까지 엄청난 액수의 권리금이 붙는 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는 경우 권리금에 대해서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내쫒기는 상황이다. 제도적으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시행사와 투쟁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가 현실적 고민이다. 이와 관련 우리 전철협의 협상 방침은 수평적 이동과 생계 대책마련 그리고 현실적 보상이 그 기조다. 이 같은 기조 하에서 나는 시행사에게 돈을 요구한 적도 없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수평이동을 해줄 것인가 또는 아닌가를 놓고 한두 번 면담이 있었을 뿐이다.

현실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구청 공무원은 마치 내가 돈을 많이 요구하는 것처럼 저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10원도 보상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시행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왜! 나에게 책임을 묻는 건가. 종로구청 공무원들의 그 같은 무책임한 발언으로 인해 시행사와 공평철거민이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종로구청 앞 도로에 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막. 이 천막은 언제쯤이면 자진철거가 이루어질까?
 종로구청 앞 도로에 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막. 이 천막은 언제쯤이면 자진철거가 이루어질까?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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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공평 2지구 재개발 사업의 제도적 문제는 무엇인가
"시행사인 P사가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상인들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업으로 인해 상인들은 인권을 유린당하는 등 가족공동체가 파괴 되었으며 이제는 오고 갈 데도 없는 꼼짝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시행사에게 무슨 권한으로 그 토록이나 막대한 힘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법으로 보장된 감정평가 절차마저 무시한 채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행태에 맞서는 임차인으로서는 한몸을 던져 저항 할 수밖에 만들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 끝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은
"전국에 있는 철거민들은 건설업자에게 이득을 얻고자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인권회복과 그리고 자신들 가족의 생존권 문제를 회복코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위해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투쟁을 통하여 생존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종로구청과 시행사는 인식하고 더 이상의 음해와 탄압은 즉각 중단해야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종로구청, #이승철, #전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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