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2> 제작발표회에서 표민수 PD가 작품소개를 하고 있다.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에서 표민수 PD가 작품소개를 하고 있다. ⓒ 오마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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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의 시청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된 <아이리스2>는 시청률 9.5%(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한 자리수를 기록하며 수목극 꼴찌를 차지했다. 경쟁작인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13.3%로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리스2>의 200억 대작답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에 편성을 내준 KBS도 많이 놀란 눈치다. 그러나 지금 가장 당황하고 있을 사람은 아마 연출을 맡은 표민수 PD일 것이다. 감성적 멜로가 주특기였던 그는 도대체 왜 <아이리스2>를 선택한 것일까.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 표민수만의 세계

대한민국 드라마 PD를 통틀어 '작가주의'라는 네 글자가 표민수만큼 어울리는 이도 아마 드물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기 색깔이 확실하고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연출자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터치로 유려하게 펼쳐내는 연출력은 가히 일품이고, 방송이 금기시 하는 소재로 사람과 삶을 진지하게 반추하는 솜씨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표민수에게 드라마작가 노희경은 좋은 벗이자 믿음직한 파트너였다. 1996년 배우 나문희의 소개로 한 커피숍에서 노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표민수가 던진 첫 마디는 "우리 에이즈 합시다"였다고 한다. '남편이 만약 에이즈에 걸렸다면 부인은 그와 잘 수 있을까'라는 그의 질문에 충격을 느낀 노희경은 그 자리에서 최수종-유호정 주연의 KBS 베스트극장 <아직은 사랑할 시간>(1998)의 스토리를 고안해낸다. 17년 지기 표민수-노희경 콤비의 탄생이었다.

이 후, 표민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표민수표 드라마'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불륜이란 자극적 소재를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그려낸 미니시리즈 입봉작 <거짓말>(1998)을 시작으로 동성애자의 사랑을 편견 없이 바라본 <슬픈유혹>(1999), 힘겨운 삶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바보같은 사랑>(2000), 원조교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푸른 안개>(2001)까지 그가 만든 작품 대부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천착이 공존하고 있다.

당시 표민수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은 결코 가볍거나 평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온갖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할 정도로 절절했고, 그만큼 불편했다. 표민수가 파악한 사랑의 본질은 극단의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인간애였다. 표민수가 인터넷 매체 < TV 리포트 >이 '연출노트'를 통해 밝힌 자신의 작품 세계는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멜로드라마만 연출한 이유에 대해서도 "사람은 사랑해도 안쓰럽고, 사랑하면서 행복하다고 해도 안쓰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에 대한 그의 마이너적 감성은 TV 멜로드라마에서도 컬트 현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아주 좋은 예가 됐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의 작품이 언제나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어도 2000년 초까지 표민수는 실험적 작가성과 공격적인 젊은 혈기로 무장한 '진보적인' 연출자였던 것이다.

 표민수 감독이 연출했던 MBC <넌 내게 반했어>(2011)

표민수 감독이 연출했던 MBC <넌 내게 반했어>(2011) ⓒ MBC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 선 표민수

그러나 2002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이래 표민수의 작품들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치달았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프리랜서 독립 후 첫 작품이었던 <고독>(2002)이 처참히 실패하면서 그는 상업성과 대중성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됐을 것이다. 시청률과 돈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잔혹한 프리의 세계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표민수는 2004년작 <풀하우스>를 통해 전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옥탑방 고양이>의 민효정 작가와 손을 잡고 만든 이 작품은 청춘스타 송혜교와 정지훈(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달달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연출함으로써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변신은 그동안 '표민수표 드라마'를 사랑한 일부 팬들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안겨다줬다. 표민수가 외부 흥행 때문에 변절했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러나 표민수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작가주의 연출이 되고 싶지도, 변절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반박하며 친 대중적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풀하우스>와 비슷한 장르인 <넌 어느 별에서 왔니><커피하우스><넌 내게 반했어> 등을 연달아 발표했고, <인순이는 예쁘다><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통해 외연 확장을 시도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풀하우스> 이후, 그가 연출한 작품들은 종종 한자리수로 떨어지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참패했고 작품성 면에서도 혹평을 면치 못했다. 특유의 마이너적 감성과 섬세한 터치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대중과의 심리적 간극을 좁히는데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그의 작품세계는 또렷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의 한 장면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의 한 장면 ⓒ SBS


첩보물 '아이리스2'에 녹아들지 못하는 '감성'

이런 의미에서 <아이리스2>는 표민수에게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전작인 <아이리스>의 명성을 업고 오랜만에 흥행을 노릴 수 있는 기회였던 동시에, 액션물에 주특기인 감성 멜로를 더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전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액션 속의 감성과 감성이 끌어내는 액션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즉, 그가 <아이리스2>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단계다. 남성성이 강한 첩보물에 그의 멜로는 잘 융합되지 못했고, 자신하던 풍부한 감성 또한 드러나지 않았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서 답보 상태고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 역시 냉담하기 그지없다. 대중이 볼 때 '작가주의'와 멀어졌던 지난 10년간 표민수의 손에 남은 건 초라한 성적표와 모호해진 정체성이다. 상업적 성공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그의 빛나는 감성을 해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지금 표민수에게 필요한 것은 초심이다. 노희경에게 "에이즈 하자"고 말하던 15년 전 표민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남들이 다 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 말고 표민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상업성에 너무 신경 쓰거나 인기 아이돌을 출연시킨 로맨틱 코미디보다, 인간과 삶을 정교하게 바라보며 대중을 울고 웃기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한다. '작가주의' 하라는 것이 아니다. '표민수' 이름 세 글자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풀하우스>처럼 가벼우면서 <거짓말>처럼 깊이 있는 드라마, 누구보다 도드라진 개성을 잃지 않은 채 대중과 교착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그에게 요구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표민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작가주의와 상업주의의 경계에 있는 그가 하루 빨리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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