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악역이란 갈등을 증폭시키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도 물론 있지만 언제나 트러블 메이커는 존재하고 그 트러블 메이커로 인한 갈등이 폭발할 때 시청률이 오른다는 공식은 아직도 통한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야왕>과 KBS <광고천재 이태백>역시 트러블 메이커들이 존재한다. <야왕>에서는 전무후무한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수애가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수애 보다는 아니지만, 주인공의 옛 여자로 주인공을 배신하고 돈과 야망을 찾아 떠난 주인공인 한채영이 <광고천재 이태백>에서 트러블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둘은 숙명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캐릭터다. 맡은 역할 자체가 호감형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둘에게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둘에게 쏟아지는 비난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 수애 한채영 <야왕>과 <광고천재 이태백>에서의 트러블 메이커인 두 사람 ⓒ sbs, kbs
<야왕>이라는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결함이 많은 드라마다. 스토리 안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들의 행동과 설정은 간혹 뜬금없는 느낌을 주며 드라마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촘촘하지 못한 구성 안에서 시청자들은 캐릭터를 이해 할 수 없고 나아가 스토리 전반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왕>은 아직까지 MBC <마의>와 시청률 선두를 다투며 선전하고 있다.
<야왕> 선전 배경엔 수애가 있다?이 드라마의 일등공신은 악녀 역할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 내고 있는 수애다. 자칫 채널이 돌아갈 순간마저 시청자들은 수애가 맡은 주다해의 몰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버텨낸다. 어설픈 스토리마저 수애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복 중인 것이다.
<야왕>에서는 주다해에 대한 악감정만이 시청자를 붙잡는 동력이다. 수애가 악랄해 질수록 드라마의 몰입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애는 남편과 가족은 물론 사랑마저 자신의 수단으로 삼는 악녀다. 결국에는 그의 야망으로 영부인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예정이다. 악녀에게도 이유와 과거를 주는 요즘 트랜드와는 정반대로 단순히 남자 때문에 주인공을 괴롭히던 뻔한 악녀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낸 악녀 캐릭터를 극대화 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 수애 야왕 시청률의 일등공신, 수애 ⓒ sbs
수애의 연기는 이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계속 이끌고 갈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다. 연기 뿐 아니라 수애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이 캐릭터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수애는 역사상 최악의 악녀를 연기 하면서도 지나치게 천박하거나 독살스럽지 않다. 행동 자체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악랄하지만 그 악인을 표현하는 수애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여성'을 이용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악인의 설득력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악랄하다 하더라도 상류층을 꿈꾸는 여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우아함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애는 데뷔 초부터 단아하고 청초한 매력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금껏 수애가 선택한 작품들을 보면 단순히 지고지순하고 순종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단아한 캐릭터로 첫발을 내딛었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역할에 도전했다. 브라운관에서는 <9회말 2아웃>에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이 평범하고 흔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거친 단어 선택과 때때로 망가져야 하는 역이었음에도 수애는 기존의 청순한 모습에 상관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연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야왕> 이전에는 김수현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출연해 알츠하이머에 걸려 죽어가는 여성을 제대로 포착해 내며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 따발총식 대사가 특징인 김수현 드라마의 히로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닌, 연기력을 위시한 작품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다.
수애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에서 명성황후에 도전하며 강인하지만 비운의 여성상을 표현했고 <심야의 FM>에서는 스릴러에 도전했다. 이 모두 그의 단아한 이미지만으로는 섣불리 생각하기 힘든 역할이다. 비록 수애가 출연한 작품들의 성적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수애는 다방면으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다.
▲ 수애 이미지를 무기로 무리없는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수애 ⓒ sbs
<야왕> 속의 악역을 택했다는 것 역시 이런 선택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역은 덮어놓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수애보다 같이 출연하는 중견 여배우인 김성령에 더 호감이 갈 정도다. 그러나 수애는 그런 점을 알면서도 <야왕>을 택했다.
사실 <야왕>속 수애가 <천일의 약속>의 수애보다 더 뛰어나고 대단한 연기력을 보이지는 않지만 <야왕> 속의 수애가 맡은 캐릭터는 <야왕> 속의 누구보다 눈에 띤다.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역할을 맡은 수애의 선택이 빛을 발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수애는 앞으로도 계속 비난에 시달리겠지만 이는 수애 본인이 아닌, 주다해라는 캐릭터에 쏟아지는 비난으로 수애의 연기 경력에는 플러스가 되는 일이다.
아쉬운 한채영의 역할, 이것을 보완하자그러나 <광고천재 이태백>의 한채영은 사정이 다르다. 한채영이 <가을동화>로 연기에 도전한지 무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한채영은 <쾌걸춘향> <꽃보다 남자> <불꽃놀이>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등의 드라마와 <걸프렌즈>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중 한채영의 커리어를 부각시켜 주는 작품은 30%를 넘긴 <쾌걸춘향> 하나뿐이었다. 한채영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배우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비인형, 복근, 각선미 등 외모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채영이 자신을 부각시키지 못한 것은 단순한 작품의 실패만이 이유는 아니다. 연기자로서의 한채영의 빛나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때문이다.
<광고천재 이태백>은 소재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 아쉬운 점을 드러내고 있다. '광고'라는 소재를 가지고 광고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주인공의 매력이 극대화 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뻔한 캔디 공식에 남자만 여자로 바뀐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다. 물론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지만 시청률 4%가 증명하듯, 대중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캐치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뛰어난 작품성으로 승부를 보지도 못했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한채영은 다소 아쉬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종종 드라마에서 보이는 기본적인 발성과 표정에 대한 지적이 있다는 건 분명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 한채영 연기력 논란에 시달린 한채영 ⓒ kbs
한채영은 아름다운 배우다. 기본만 하더라도 비난은 면할 수 있다. 아주 뛰어난 연기력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맛깔나게 표현하는 능력이 아쉽다. 더군다나 한채영이 맡은 고아리는 심리 묘사가 복잡하고 힘든 역할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채영이 연기하는 고아리가 아닌 배우 한채영의 연기에 대한 비판이 이렇게 계속된다면 그녀 스스로도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이미지'와 함께 브라운관에서 시청자들을 집중시킬 '연기력'을 끌어올리는 모습 말이다.
수애와 한채영 모두 외모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방식은 달랐다. 그 커리어를 쌓는데 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모를 활용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연기는 다른 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만 있고 '연기'가 부족한 배우에게 시청자의 평가는 종종 가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