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영동 1985> 포스터

영화 <남영동 1985> 포스터 ⓒ <남영동 1985> 영화

"김근태 의장이 전기고문을 당했다며? 고문당하며 발버둥치다가 팔꿈치에 딱지가 생겼대... 그걸 밖으로 내 보내 고문을 세상에 알렸지."

이 말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말이다. 고문! 고문이라니! 그게 얼마나 상상치 못할 고통인 줄, 아니 말로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극, 저 너머의 고통이란 걸 모르고 어찌 쉽게 입에 올리나. '고문'. 이 두 음절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맨 먼저 든 생각이다. 독재자가 저지른 인격의 말살, 고문이 얼마나 잔혹한 짓인지 영화는 불로 지지듯 우리 가슴에 각인시킨다. 그래서 함부로 '고문'이란 말을 할 수 없게 한다. 그것을 당하는 사람을 두고 어떤 수사로도 그의 고통을 표현할 길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고통' '불구덩이에 빠지는 듯한 고통' 등 다 헛된 표현이다. 언어 이전의 세계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 앞에서는 '삶이 무엇이며, 죽음은 또 무엇인가'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이따위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없게 된다.

별다른 스토리가 없는 영화... 그러나 보는 것 자체가 고문

<남영동 1985>. 이 영화는 별다른 스토리를 담지 않았다. 1985년 9월 4일. 민청련 의장으로 있다가 잠시 2선으로 물러나 있던 김근태(극중 이름 김종태 / 박원상 역)는 아내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동네 대중목욕탕을 다녀오다가 경찰에 연행된다. 흔히 있던 일이라 김근태는 잠시 다녀올게, 일상처럼 아이들을 한 번 보듬어 주고 순순히 동행한다. 그러나 차에 태워지는 순간, 눈이 가려지고 그 악명 높은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실로 끌려간다.

경찰은 이미 사건을 하나 만들어 놓고, 민주화운동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으로 그 사건의 증거를 조작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오로지 고문으로 자기 네들이 짜놓은 각본대로 진술을 받아내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변변한 저항도 할 수가 없다. 다짜고짜 뺨을 후려치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순식간에 인간 김근태, 민청련의장 김근태, 아버지 김근태, 남편 김근태, 존경받는 선생 김근태…. 그 모든 인격과 존엄성을 지닌 김근태는 박살이나 버렸다.

그때쯤 정부 고위간부(문성근 역)가 나타난다. 한 차례 짓이겨진 김근태를 보더니 이렇게 대접하면 되느냐고 짐짓 부하를 꾸짖으며 벗겨진 옷을 입힌다. 자기도 경기고, 서울대 출신이라면서. 선·후배로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잔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각하에 왜 그렇게 저항하느냐고. 김근태는 또박또박 되받는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폐해와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 이를 뒤에서 방조한 미국, 이런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애국이라고. 김근태는 그때부터 오로지 그들이 마음대로 짓밟고 농락하고 찢어버릴 수 있는 힘없는 그러나 살아 있어야 하는 동물이 된다. 고문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순간 죽은 박종철 열사가 생각나서 화면을 바로 볼 수가 없다. 그 어린아이를 장승 같은 망나니가 달려들어 물통 속에 거꾸로 처박을 때,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한 아버지 어머니의 피요 살이었을 아들이, 동무의 신망과 선생의 기대 속에 자랐을 믿음직한 앳된 청년 하나가 저 물통 속에 거꾸로 처박혀 숨을 못 쉬고 발버둥쳤을 것이니……. 아! 그때 그 아이 심장은 얼마나 쪼그라들었을까.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저들의 제물이 된 억울하고 원통한 청년.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후안무치한 망나니들의 가슴에 붙은 그 빛나는 훈장.

생생한 폭력... 우리집 안방까지 군홧발로 들어와 동생 끌고 가

나도 저들의 폭력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1980년 5월 17일 0시. 계급장도 소속부대 마크도 붙이지 않은 군복에 워커만 신은 군인들이 우리집 안방까지 군홧발 그대로 저벅저벅 들어오는 것을. 권총을 꺼내 들고 자는 동생의 머리통을 까는 것을. 차 안으로 동생이 구겨져 던져질 때야 겨우 마른입을 떼며 벌벌 떨며 대들었다.

"다, 당신들 누구요. 어디로 잡아가는 거요."

곁에 섰던 군인이 내 코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씹어 뱉듯이 하는 말, "이 새끼 너 이상석이지. 한 집에 둘이 잡아가기 뭣해서 봐주는 거니까 입 닥치고 있어." 나는 그만 뒤로 물러서며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잡혀간 동생은 1년여 계엄령 위반으로 옥살이했다.

그날 그 시간에 또 다른 곳에서 잡혀간 내 친구 김상배는 보름 만에 풀려났는데, 울먹이며 바지를 벗고 자기 아랫도리를 보여주었다. 배꼽 아래부터 발끝까지 온 하체에 한 군데 빠짐없이 가지색 멍이 들어 있었다. 다리 전체가 커다란 가지였다. 일 주일 가량을 시도 때도 없이 두드려 맞았다는 거다. 변호사도, 교수도, 학생도 구별 없이 아주 평등하게 맞았다고. 그것이 광주항쟁을 무력 진압하려는 신호였다. 그날부터 광주는 고립되기 시작했고, 광주 시민들 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 <남영동 1985>는 꾸미고 과장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김근태 의장의 기록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더욱 절실했다. 몇 차례 물고문 끝에 겨우 진술서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진술서는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때 마치 정의를 구현하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당당하고도 치밀한 이근안(극중 이름 이두한 / 이경영 역)이 등장한다.

이치는 인사가 사람의 어깨뼈를 뽑아 버리는 일이다. 여태껏 고문하던 놈들은 그래도 사람 냄새가 조금씩 배어나기도 했고, 자기들 짓거리가 옳지 않은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혈한이다. 새로운 물고문이 시작된다. 칠성판에 사람을 누이고, 배에 걸터앉아 물 적신 수건을 겹겹이 덮는다. 그리고 물을 뿌린다. 샤워기 물줄기가 시원치 않다고 앞대가리는 빼서 던져버리고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코로 입으로 들이댄다. 할 말이 있으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란다. 금방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러나 아랑곳없다. 3분, 4분 숨이 끊어지며 기절할 때까지 물을 뿜는다. 휘파람을 불며. 뒤이어 고춧가루를 뻑뻑하게 탄 물을 주전자 채로 들이붓는다. 그 고통 속에도 숨은 쉬어야 사니까 발버둥치며 숨을 헐떡인다.

이근안, 처음부터 끝까지 냉혈한... 고춧가루 물고문, 전기고문

이때 고춧가루를 통째로 들어부어 버린다. 폐로 고춧가루가 그대로 들어가 버린단다. 관객들은 숨을 쉬지 못하고 함께 고통스럽다. 이어지는 전기 고문.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오히려 한숨 돌린다. 물고문이나 구타는 상상이 가능하지만, 전기고문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작성한 진술서.

김근태는 완전히 망가져서 시키면 시킨 대로 간첩을 만나기도 하고, 북한을 다녀오기도 하고, 조작된 조직원들의 이름도 다 외게 된다. 이제 김근태는 살아나는가. 그러나 김근태는 고위간부가 찾아왔을 때, 다시 외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선언이다.

"고문으로 조작된 진술서는 효력이 없다, 나는 헌법을 유린한 (박정희 정권의) 5·16 쿠데타와 (전두환) 군부독재를 부정한다."

아, 처절한 인간선언은 단 몇 초로 끝났지만, 관객의 마음에는 죽음과 맞바꾼 그 인간선언이 통곡처럼 남게 된다. 숨소리도 부끄럽던 객석에서는 여기저기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나는 그래도 이 악물고 눈물을 참아내었다. 우는 것도 부끄러웠다. 내 요즈음 사는 꼴을 생각하면.

고위 간부는 일그러진 얼굴로 돌아선다. 고문실로 돌아온 이근안은 미쳐 날뛴다. 감히 자기가 만든 진술서를 번복하는 놈이 있다니. 칼빈 총을 들고 와 김근태를 발가벗겨놓고 성기를 개머리판으로 내려찍는다.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바로 그 순간 고문을 보조하던 경찰 하나가 이근안을 들이받는다. 잠깐의 실랑이. 김근태는 허리끈에 목이 묶인 채 바닥을 기어야 했다. 개처럼 짖어야 했다. 구둣발로 짓이긴 밥을 개처럼 먹어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칠성판에 오른다. 고강도 전기고문. 고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몸에다 소금을 비벼댄다. 사람 몸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물을 뿌리고는 다시 전기를 흘린다.

김근태는 끝내 하혈을 하고 만다. 그리고 김근태는 죽는다. 마지막 남은 자존과 강단마저 강한 전류에 메말라 버렸다. 고문 보조자들도 그만 버티고 항복하라며 안타까이 뺨을 후려친다. 관객들도 차라리 항복했으면 싶은 마음이다. 김근태는 끝내 존경하는 선배의 이름을 배후로 대고, 다시는 번복도 못 하고 넋을 빼앗긴 채 홀로 남겨진다. 끌려간 지 22일 만의 일이다.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자 김근태는 자책에 빠진다.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난다.

"내가 김00 선배가 고문에 못 이겨 다른 사람 이름을 댔다고 원망했는데. 나도 결국 이름을 불고 말았어. 계훈제 선생, 장준하 선생, 함세웅 신부님…… 이 일을 어떡해…….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
"네가 이길 수 없는 일이었어. 너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버티려 하지 마……."

나는 그 순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만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헐떡이는 가뿐 숨을 쉬었다. 인간 김근태를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그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자기를 용서할 수 없다니. 저 견결한 사람 김근태가 이 세상에는 이미 없다는 것도 서러웠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둔 후배들의 안일함이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을 때 찾아가 꽃 한 송이 올리지 못한 것도 한스러웠다.

영화는 사족처럼 이야기 하나를 덧붙인다. 세상이 바뀌어 이근안이 감옥에 가고 김근태는 장관이 되었다. 장관이 죄수를 면회한다. '이근안의 살인적 고문은 구조가 빚어낸 일이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를 용서하자.' 장관은 그렇게 마음먹으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끝내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 줄 수가 없었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고 관객은 앤딩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일어설 줄을 모르고 묵묵히 앉아 있다. 110분 동안 관객들도 고문을 당한 듯했다. 부산영화제가 열리던 10월 8일이었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정지영 감독과 김근태 역을 했던 박원상, 고문 경찰 명계남이 올라왔다. (객석, 내 곁에는 안성기가 앉아 있었다!) 박원상이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리 영화지만, 그렇게 혹독한 고문을 연기하려면 고통이 따르기 마련일 것인데…, 나는 박원상과 정지영 감독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감독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사람들이 고문을 어떻게 받았을까 짐작만 하지, 고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실감을 못할 것이다. 김 전 고문의 수기를 보고 반드시 그 얘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은 끝에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를 요즘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다. 그런 세월을 5년간 지켜봤다."

"힘들게 얻은 소중한 민주주의를 우리 국민들이 소홀히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테마는 고문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메시지는 민주주의의 소중함이다."

정지영 감독이 작년에 내놓은 화제작 <부러진 화살>은 스토리에 굴곡과 반전이 있어 재미있었다. 교수의 견결한 양심과 의지가 선명하고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는다. 분노에 따른 감동이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의지와 결연한 실천 모습에서 받는 감동이다.

<남영동 1985>는 고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문이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 에피소드를 배치하여 재미를 더하고 있지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푹신한 소파 같은 극장 의자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게 미안할 정도다. 감동이라기보다 분노가 인다. 사람들은 치미는 분노에 허덕이다가, 김근태 선생 역을 하는 종태가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는 부분에서 인간성을 다시 발견하며 눈물짓게 된다.

극장을 나서자, 평화로운 시월의 햇살이 고급스러운 고층 건물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로구나! "시발!" 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나는 버스를 타러 가며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도 그 생명이 존엄한 가치를 지닐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죽이는 것은 차라리 낫다. 목숨줄을 끊을 듯 끓을 듯하면서 이어가는 이 잔혹한 고문.
죽음은 생명의 마지막이니, 질병의 끝이니, 이런 말 당하지 않는다.
거기는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인간 본연은 사라진다.
다만, 오로지 고문만 있을 뿐이다.
그 고문을 자행하는 잔혹한 행동책 이근안이 있고
이근안을 부리는 정형근이 있고
정형근을 부리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다.
끝내 우리가 짱돌을 던져야 할 곳은 독재자이고,
독재자가 설칠 수 있도록 판을 벌여주는 정치구조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근안을 짱돌로 찍고 싶다.
꿇어앉아 용서를 비는 그의 이마빼기를 까버리고 싶다.
김근태는 자기가 이근안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했다지.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용서는 그대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이라 말했다지.
그래 어찌 사람의 소견으로 용서가 될 것인가.
우리가 용서를 못해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했다고?
자기가 한 일은 애국이었다고. 자기는 잘 못한 것이 없다고.
그놈의 애국.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인간이라 할 수가 없다.
그를 용서한다고 해도 그는 이미 하느님이 자기를 용서했다고 믿는 새끼다.
더불어 관계를 맺을 인간이 아니다.
짱돌을 한 번 더 내리찍는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남영동 1985>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영동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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