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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대립이 7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이달 초 탈북자단체들과 보수단체들이 9월을 '북한인권의 달'로 선포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인권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과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기 앞서 과연 우리사회가 북한인권문를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 또 국가안보를 핑계로 탈북자들에게 강요되는 인권유린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한번 짚어보려고 한다.

누구를 위한 '정착교육'인가

13일 민주통합당 한반도평화본부가 주최한 북한인권법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대훈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연철 인제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발제하고 있다.
 13일 민주통합당 한반도평화본부가 주최한 북한인권법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대훈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연철 인제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발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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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2만 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살고 있으며 해마다 2천여 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계속적으로 입국하고 있다.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들은 국정원, 기무사, 경찰의 합동조사를 받고 또다시 하나원(탈북자들의 정착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에서 '정착교육'을 마쳐야 비로소 사회에 배출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1997년에 제정된 북한이탈주민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탈북자 보호법)에 따른다. 탈북자 보호법 제 15조 1항과 동법시행령 제 12조 2항은 탈북자들이 최고 6개월 간의 합동조사와 3개월간의 '정착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합동조사과정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탈북자들에 한하여 이루어지며 이 기간 동안 탈북자들은 독 감방에 수감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다. 조사기간 내에는 피의자로서의 기본권리인 변호인의 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일반 교도소에서도 가능한 가족이나 친척들의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은 사라지긴 했지만 십수 년 전만 하여도 조사관의 요구에 고분고분 하지 않으면 각목이나 몽둥이에 얻어 맞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지금도 조사관들의 협박이나 욕설, 폭언, 여성들에 대한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성적 모욕과 같은 인권유린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YTN 기사보기  남한에 첫발...매부터 맞는 탈북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은 이러한 인권유린행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변할 수도 없으며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기관도 이러한 인권유린 행위에 대하여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모든 교도소나 구치소에 존재하는 인권위원회도 대성공사 - 탈북자들이 조사를 받는 곳-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유린 행위는 합동조사를 마치고 진행되는 3개월간의 소위 '정착교육'에서도 나타난다. 탈북자들은 특수전경들이 경계하는 수감시설에서 원하지도 않는 '정착교육'을 강제로 이수 받아야 하며 이 기간 내에도 외부출입과 가족면회는 제한된다.

합동조사과정에 발생한 의문의 자살사건

작년 12월, 합동조사를 받던 한 탈북자가 스스로 북한의 간첩임을 자백하고 바로 다음날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김정일 사망소식에 묻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선 대성공사는 감시관들에 의하여 24시간 수감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어 아닌 말로 방귀도 마음대로 뀌지 못하는 공간이다. 만일 수감자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즉시 실내에 설치된 스피커로 이상한 행동을 중지하라는 감시자의 경고방송이 나온다.

이렇게 수감자(탈북자)들의 모든 행동이 감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자살하기 바로 전날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면 평소보다 감시가 몇 배는 더 해졌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는 정부당국의 설명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의혹은 그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14일 동안이나 숨기고 있다가 한 방송사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발표하였다. 만일 정부당국이 이 사건에 대해서 떳떳하다면 왜 14일 동안이나 숨기고 있다가 언론사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야 발표했는가?

아마도 정부당국은 해당 방송사가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냥 덮고 넘어갔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구실로 이러한 사실들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이런유형의 자살 사건이 얼마나 더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한 사실들은 꽁꽁 숨기려고 노력하다가도 간첩을 색출했다는 정보들은 언론을 통해 요란하게 광고한다. 이런 위장간첩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로부터 탈북자들은 잠재적 간첩이라는 인식이 각인되면서 한동안 탈북자들이 (이런 뉴스들이 있고 난 후) 면접조차 거절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일어나며 그만큼 그들의 사회정착은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가 진정으로 탈북자들의 사회정착을 배려한다면 탈북자 전체에 해를 끼치는 이런 정보들이야말로 보도제한(엠바고)을 해야 할 것이다.

합동조사과정의 간첩색출 과연 실효성은 있나

이렇게 탈북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진행하는 합동조사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이 과정에서 북한 간첩들이 기본적으로 색출될 것이라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지난 2003년 합동조사를 직접 받아본 필자가 보기에는 이 과정에 간첩이 색출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으로 돌아간 71세의 박인숙씨(실제 이름 박정숙, 실제나이 66세)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합동조사과정에서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이름, 나이, 심지어 가족관계나 북한에서의 거주지 등 개인 신상정보들을 허위로 진술한다. 그래도 조사관들은 그것을 가려내지도 못한다.

솔직히 지금 탈북자들, 특히 여성탈북자들의 경우 북한에서의 자기 원래 이름이나 나이를 제대로 진술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구나 최근에는 탈북자 지원이 축소되어 가족단위로 주택을 배정해주기 때문에 배우자가 있어 한 집에서 같이 살 수 없는 가족들의 경우 서로 남남으로 하고(진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탈북자들의 기본적인 개인신상정보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는 이 허술한 합동조사과정에서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로 특수훈련을 10년 이상 받은 간첩들이 붙잡힌다는 것은 필자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거기다 붙잡혔다는 간첩들의 수준 또한 가관이다. 미 국방성까지 해킹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북한이  어느 군사기지에 가서 비밀을 뽑아오라 했다거나, 탈북자들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했다거나, 가만 두어도 내일이면 스스로 자연사 할 80세 넘은 황장엽 선생을 암살하라 했다는 것 등이 고작이다.

필자는 혹시 우리 정부가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들을 잠재적인 간첩으로 인식시켜 사회정착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북한정보당국이 일부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떡밥(체포된 부실한 간첩)이나 받아물고 쾌재를 부르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통일 독일 전 서독의 여유와 배포

물론 국가안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소훌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안보를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모든 탈북자들을 구속 수사하고 그들에게 원하지도 않는 '정착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탈북자들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탈북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 주는 조건에서 간첩혐의자들을 색출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기간 인혁당 사건을 비롯하여 삼청교육대 등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를 수도 없이 경험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런 유형의 인권침해를 외면하거나 방치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다 같이 동참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30년 전의 서독의 경우, 통일되기 전까지 30년간 연 평균 최소 5만 명 이상의 동독주민들을 수용하였다. 지금 우리정부가 한해 평균 2천 여명의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당시 서독 만큼의 탈북자들을 수용하려면 대성공사와 하나원을 25개는 더 지어야 하고 국정원, 경찰청, 통일부를 최소한 지금의 10배는 확장해야 한다. 거기에 드는 인력과 자금은 둘째치고 우리 국민들이 이런 정책을 동의해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당시 서독정부나 서독국민들은 동독정보부가 동독주민으로 위장한 간첩들을 파견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거나 그 후유증에 대해서 걱정되지 않았을까? 그들의 입장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우리의 대성공사나 하나원 같은 기구를 설치하지 않았다(독일에서도 연방수용소와 주 수용소가 존재했으나 이는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이들이 이런 여유와 배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독은 탈동독인들이 들어오면 신상정보 파악을 위하여 간단한 조사를 1일, 길어도 3일을 넘기지 않았으며 조사과정에서 동독인들의 인권은 철저히 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증인이나 친인척이 있는 경우(서독에)는 조사자체가 생략되었다.

만일 30년 전 서독이나 지금도 연평균 3만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해주는 영국같은 나라에 우리의 대성공사나 하나원 같은 기구가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서독이나 영국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이런 형태의 기구를 당장 없애라고 야단을 칠 것이다.

탈북자들의 인권도 못 지켜주면서 북한 인권을 지켜?

그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인권문제나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 해도 빨갱이, 종북세력,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판국에 누가 득도 없는 탈북자 인권문제를 제기해줄 사람이 있겠는가?

또 직접적인 당사자인 탈북자들의 경우에도 가만히 있어도 "대한민국의 은혜"요, "국민혈세" 요 하면서 빗진 사람 취급하는 마당에 누가 감히 나서서 탈북자 인권 운운 한단 말인가?

북한이 내일이면 당장 붕괴될 듯이 이야기 하면서도 아이러니 하게 "빨갱이 세력"에 의해서 나라가 당장 무너질 것처럼 요란떨며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세력들과 일부사람들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탈북자들에게 자행되는 이 정도의 인권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그들 나름대로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범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갖은 인권유린행위를 자행하는 북한당국자들도 별로 잘못한 것이 없어보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우리사회에는 인권침해 같은 문제는 존재할 수도 없고 북한과 우리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무 죄도 없고 증거도 없는 사람들을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가두어 놓고 조사를 벌이고, 싫다는 사람들을 데려다 강제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인권침해가 아니면, 사람을 묶어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만 인권침해란 말인가? 우리가 하는 행위는 로맨스고 북한이 하는 행위는 불륜이라는 논리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무슨 인권천사라도 되는 듯이 북한인권문제에 열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정녕 인권문제에 관심 있다면 탈북자들의 인권침해를 비롯한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야 된다고 떠들어 대는 새누리당이나 보수단체들이 언제 한번 탈북자들에 가해지는 인권침해나 생존권을 위해 파업하는 노동자들, 대기업이나 자본가들에게 자기의 재산을 약탈당하고 쫓겨나는 철거민들, 영세업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들의 이러한 모순된 사고와 행동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이거나 둘 중 하나다.

필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북한인권문제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당국의 인권유린행위에 대해 한치의 주저함이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며 남북관계와는 별도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인권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이 가지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다.

새로 집권할 정부와 19대 국회는 탈북지원법에 존재하는 모든 인권침해 조항들을 시급히 개정(삭제)하여야 하며 말로만 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부단히 보완해 남북통일을 위한 초석을 다져 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승철 기자는 탈북자로, 이 글은 통일경제신문 http://komts.com에도 기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자기가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서는 중복기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정원,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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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북한)사람 입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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