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의 발레에서는 테크닉을 초월한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묻어나온다. 15일 공연된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 중.

강수진의 발레에서는 테크닉을 초월한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묻어나온다. 15일 공연된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 중. ⓒ 문성식 기자


완벽했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웠던 <까멜리아 레이디>

세종문화회관에서 6월 15일~17일 공연된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까멜리아 레이디>는 한마디로 절제된 품격미를 갖춘 고급 발레 공연이었다.

발레의 다양한 레파토리가 있지만 3대 드라마 발레인 '오네긴',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교해도 <까멜리아 레이디>는 그 서사에서 꽤 복잡하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와 같은 원작을 사용하는 이 발레에서 여주인공 마르그리트는 한 남자와 사랑을 맺지 못한 채 그리움을 일기장에 기록하며 쓸쓸히 늙어간다.

단순한 사랑이야기이지만 프롤로그에서 3막까지 현재와 회상장면을 몇차례 오가는 데다가 대사 없이 몸짓 발레로만 이루어져 원작이나 줄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이 발레를 이해하려 든다면 아마 이 발레의 목적을 놓칠 것이다.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 중. 파리의 유명한 코르티잔(부유층의 공개애인)인 마르그리트(강수진 역)가 파티장에서 여러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 중. 파리의 유명한 코르티잔(부유층의 공개애인)인 마르그리트(강수진 역)가 파티장에서 여러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 문성식 기자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는 그저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프렐류드, 발라드 등 피아노 곡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은 이 발레를 한 폭의 그림들의 수없는 모음을 보는 듯한 기분을 제공한다. 안무를 오히려 각각의 쇼팽음악의 전개와 클라이막스 구조에 맞춘 것 같은 완벽한 일치성은 적절한 타이밍과 호흡구조로 흘러가기 때문에 사실은 우수어리고 유려한 음악과 우아한 발레동작을 감상하는 것 외에 서사구조를 판단하고 이 드라마 발레의 '드라마'를 읽어내려 애쓴다면 괜한 시간낭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 그 두가지 진실로 표현된 여인의 사랑

여기에 '까멜리아 레이디'를 위하여 태어난 것만 같은 강수진의 완벽한 테크닉은 시공간 어디에도 개의치 않는 것 같은 '자유스러움'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에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다. 거기에 사랑에 찬 표정, 환희에 찬 표정, 절망의 표정, 삶의 뒤안길에서 반추하는 표정 등 그 표정과 몸과 일치된 시선의 방향성에서 몸의 제약을 떠나 감정을 표현해내는 '자연스러움'이 여인의 사랑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을 '연기'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에는 그렇게 강수진이 지난 수십년 피땀 어리게 갈고 닦았을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화된 그녀의 언어가 그녀의 파트너 아르망 역의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세계최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격조 있는 세련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강수진(마르그리트 역)과 마레인 라데메케르(아르망 역)가 환상적인 호흡으로 '까멜리아 레이디'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표현한다.

강수진(마르그리트 역)과 마레인 라데메케르(아르망 역)가 환상적인 호흡으로 '까멜리아 레이디'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표현한다. ⓒ 문성식 기자


마치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고전 서양화를 바라보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말이다. 큰 장식 없이 단조로운 무대는 무용에 집중하게 해 주었으며, 볼프강 하인즈가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확하고 편안한 반주는 쇼팽을 발레 전면으로 드러내 보이면서도 전혀 발레에 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음악과 발레의 상승작용을 이루어 내었다. 

아직도 1막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f단조 2악장이 들리는 듯하다. 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 장중하고 우수에 찬 쇼팽 선율과 함께한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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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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