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남로의 모습. 올해로 32주년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
 금남로의 모습. 올해로 32주년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몇 달 전, 오랜만에 아빠와 나란히 앉아 TV를 보았다. 또 다큐멘터리다. 평소 뉴스 아니면 다큐멘터리밖에 안 보는 아빠 덕에 그날도 억지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익숙한 말투와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광주·전남 100년'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목포에 살던 아빠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반가운 내용의 다큐였다.

다큐에는 100여 년간
광주와 전남에서 있었던 일들이 담겨 있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부터, '여순사건', '박치기왕 김일'의 이야기까지 TV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의 장면들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1980년이면 아빠 20살 때 아냐? 기억나?"
"당연히 기억하지. 어떻게 잊겠냐… 아빠도 5월 19일부터 목포역 광장에서 친구들이랑 버스 탈취하고 그랬었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차량시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차량시위
ⓒ 5.18기념재단

관련사진보기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빠는 단 한 번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책으로만 접했던 역사의 현장에 아빠가 있었다니, 신기했다. 나는 수사관이라도 된 것 마냥 꼬치꼬치 캐물었다.

"버스 탈취?"
"응. 버스 탈취해서 광주로 가려고 했었지. 목포역에서 집합하고, 학생들이 연설도 하고 그랬었어. 근데 결국 광주로는 못 갔어. 당시 광주로 가는 길을 군인들이 다 막고 있었거든."
"아빠, 또? 또 다른 일 없었어?"
"그때 목포역 근처 파출소 무기고가 시민한테 털리기도 했었지."
"아빠, 그럼 목포도 광주처럼 시민이 무장하고 군인들이랑 싸웠어?"
"아니. 목포에도 무장한 시민이 있긴 했었지만, 총격전은 없었어." 

아빠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외쳤던 '독재 타도! 계엄군 물러가라!' 등의 구호도 잊지 않고 있었고, 시위 도중 사람들과 함께 불렀다던 노래도 이따금 흥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큐멘터리가 끝났고, 1980년 5월의 아빠 이야기도 같이 끝이 났다. 그리고 언제 그런 얘길 나눴느냐는 듯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미국 자유의 길, 제주 올레길... 그리고 광주 '오월길'

오월길 지도가 담긴 '광주의 오월을 걷다' 팸플릿.
 오월길 지도가 담긴 '광주의 오월을 걷다' 팸플릿.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몇 달이 지나, 5월이 됐다. 나는 이제껏 보냈던 5월과 다름없는 5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우연히 '광주의 오월을 걷다'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고, 호기심에 찾아보았다.

'광주의 오월을 걷다'는 광주 5·18 기념재단에서 하는 행사였다. 일명 '오월길'은 광주의 문화콘텐츠 문화브랜드로 만들고자 2010년부터 시작된 순수 민간주도 사업이다. 재단 홈페이지와 안내 팸플릿에는 "미국 보스턴에는 자유의 길이 있고,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에는 오월길이 있습니다"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1980년 5월의 광주를 살펴볼 수 있는 답사 코스가 설명되어 있었다.

오월길 답사코스를 본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1980년 5월의 그날, 광주로 가고 싶었지만 가는 길목이 모두 막혀있어 가지 못했다던, 아쉬움 담긴 아빠의 얘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에게 오월길을 같이 걷자며 '데이트 신청'을 했고, 아빠는 나의 데이트 신청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구 도청과 5·18 민주광장 분수대. 1980년 5월 당시 항쟁본부이자 최후의 격전지인 도청과 각종 집회를 열었던 민주광장의 분수대.
 구 도청과 5·18 민주광장 분수대. 1980년 5월 당시 항쟁본부이자 최후의 격전지인 도청과 각종 집회를 열었던 민주광장의 분수대.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아빠와의 오월길 데이트 약속이 있던 14일 아침엔 비가 왔다. 오랜만에 시간 내서 데이트하는 건데 비가 오다니! 처음엔 너무 아쉬웠지만, 아빠와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걸으니 비 오는 것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빠와 나는 오월길 여러 코스 중에서도 금남로 주변을 걷기로 했는데, 오월길 담당 안내자분도 우리의 데이트에 도움을 주시며 함께했다. 우리는, 주로 여성들이 모여 5·18 민주화운동을 준비했다는 YWCA의 옛터부터 시작해 시민군들이 무기 다루는 훈련을 했던 YMCA 옛터를 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지로 꼽히는 전남도청과 5·18 민주광장에 도착했다.

가는 곳곳마다 그곳에 담겨있는 역사를 찬찬히 설명해주던 안내자분은 5·18 민주광장과 도청에 도착한 뒤에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5·18 민주화운동의 사적지들을 안내하다 보면 울분이 터지고, 이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무고한 시민들이 총에 맞아 죽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인지 가늠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파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우리가 섰던 민주광장은 당시 수많은 사람이 죽었던 곳이고, 도청 역시 시민군이 끝까지 공수부대에 맞서 싸웠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자꾸 그날이 아른거려... 빚 갚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니"

5·18 당시 빈소 역할을 했던 상무관.
 5·18 당시 빈소 역할을 했던 상무관.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민주광장과 도청을 둘러본 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상무관을 둘러보았다. 상무관은 당시 희생자의 주검을 임시 안치했던 곳이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와 무자비한 진압에 희생된 사람들의 관을 안치하고, 빈소를 차렸던 곳이라고 한다.

아빠는 다른 사적지보다 상무관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는데, 당시 상무관 빈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태극기에 덮인 많은 관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아른 거린다고 말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상무관을 지나, 5·18 민주성당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동성당, 학생들이 시국토론을 벌이던 사랑방이었던 녹두서점 옛터, 광주 MBC 옛터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안내자분은 금남로 일대를 걸으며 최초 주도자들이었던 학생에서 시민으로 시위가 번졌던 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시민이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주고, 시위 중에도 시민이 자체적으로 청소하고 차량을 통제했으며, 그 혼란한 틈 속에서도 단 한 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도 설명해주었다.

5·18 민주광장 분수대 앞에서 아빠와 나.
 5·18 민주광장 분수대 앞에서 아빠와 나.
ⓒ 김은희

관련사진보기

"목포역 앞에서 시위하는 학생들한테도 아줌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갖다 주기도 하고, 음식을 해서 갖다 주기도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아빠도 안내분 설명에 더해 목포의 시민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와 나는 금남로 일대를 걸으며 오월길을 걷는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빠는 일정을 마치며 말했다.

"너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아빠는 자꾸만 그날의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앞으로는 광주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진짜 민주화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어. 수많은 광주사람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죽어간 만큼,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하지 않겠냐." 

나는 아빠의 말들을 들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에서 느꼈던 감동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빠의 기억에서 오는 5월의 감동은 굉장했다.

아빠와 내가 함께 오월길을 걸었던 시간은 3시간 남짓으로 짧았지만,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아빠의 경험담도 함께 들으니 마치 30여 년 전 스무 살의 아빠와 교감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 나에게는 조금 멀게만 느껴졌던 1980년 5월 18일 그날도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더불어 '광주의 오월길'이 당시의 아프고 슬픈 역사적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그날의 '열정'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오월길은 연중무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5개 테마·18개의 코스·34곳의 사적지로 이루어져있다. 5·18 기념재단을 통해 미리 안내예약을 하면 안내자의 해설을 들으며 사적지를 살펴볼 수 있다.

5월, 광주의 오월길을 걸으며 그날을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주, #5.18 민주화운동, #오월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