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관을 알리는 포스터 ⓒ 인디스페이스
'독립자존'. 기미독립선언서에 나올 만큼 비장함이 느껴지는 네 글자는 5월말 새로 생기는 한 극장의 슬로건이다. 이런 비장한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극장이 영화인들의 '독립운동'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극장의 개관은 영화인들이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것'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민간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을 확정했다. 사)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오는 5월 29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이하 인디스페이스)를 개관한다고 8일 밝혔다. 2009년 12월 30일 간판을 내렸으니 2년 5개월 만에 재개관의 감격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인디스페이스의 재개관은 영화인들의 정성이 모아져 결실을 이뤄낸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자본이나 공적기금의 도움 없이 영화인들이 직접 힘을 모아 만든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은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든 방식이다.
시민모임 대표이자 독립다큐멘터리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은 "민간 독립영화전용관의 설립은 독립영화 나아가 한국영화계에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민간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독립영화전용관이 설립되는 예는 해외에서도 드물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유명배우들 좌석기부, 이제훈 류현경 홍보대사 나서 극장에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디스페이스는 그 동안 1좌석당 200만원의 후원금을 받는 '나눔자리 후원'과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 '주춧돌 후원'을 통해 전용관 설립 기금을 마련해왔고, 많은 영화인들과 배우, 그리고 단체들이 함께 동참했다.
안성기 강수연 장동건 예지원 염정아 지진희 등의 배우들은 좌석을 기부했고, 영화팬들의 십시일반 정성도 모아졌다. 일본 문화청 관리를 지낸 영화평론가 테라와키 켄 씨도 동참했고. 배우 이제훈 류현경씨는 홍보대사로도 나섰다.
110석의 작은 극장이지만 좌석 하나하나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지면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간섭받지 않는 독립적인 영화관을 만들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가 결실을 맺게 된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인디스페이스가 영화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추진모임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영진위의 공모사업으로 2007년 개관했던 '인디스페이스'는 <워낭소리> 신화를 만들면서 독립영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조희문 위원장 시절의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실 공모를 통해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참여한 단체에 극장 운영권을 넘기면서 문을 닫게 됐다. 이명박 정권 등장이후 잘못된 영화정책의 대표적 사례가 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디스페이스'는 관객들에게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영화인들의 오기를 자극했다. 자체적인 영화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영화인들은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과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 독립영화의 대부 김동원 감독이 독립영화전용관 설립 추진모임의 대표로 나섰다. "내 영화는 못 만들어도 독립영화관은 만들어 놓겠다"는 게 영화인들의 결의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제한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홍보대사 배우 이제훈 류현경 ⓒ 인디스페이스
"정치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영화관 될 것" 영화계가 의기투합하면서 쉽지 않은 작업은 하나둘 풀려나갔고 지난 3월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와 임대 계약이 완료되면서 기본적인 준비는 마무리 됐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어려움도 많지만 인디스페이스는 새로운 슬로건 '독립자존'에 각오를 담고 있다.
'공적 지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독립영화전용관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에 휘둘리지도, 자본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도 않게 오롯이 꼿꼿하게 제 할 일을 하는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이 되겠다'는 게 인디스페이스의 다짐이기도 하다. 인디스페이스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후원회원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개관식은 오는 29일 7시 <화차>로 평단의 호평과 흥행에 성공한 변영주 감독의 사회로 진행되며 독립영화전용관 설립에 앞장섰던 추진위원 및 설립 발기인들이 함께 해 독립영화인들의 독립정신을 만방에 고할 예정이다.
한편 '인디스페이스'가 들어서는 곳은, 영진위의 부실 공모 혜택을 받아 '인디스페이스'의 간판을 내리게 했던 '시네마루'가 있던 자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부당한 공모를 통한 수혜로 눈총을 받았던 독립영화관 '시네마루'는 독립영화진영의 외면 속에 형편없는 운영으로 1년 만에 퇴출당했는데, 당시 독립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시네마루'에서 상영되는 것을 거부하며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따라서 '인디스페이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고토 회복을 선언하는 이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게 보인다. 인디스페이스의 재개관은 이명박 정부의 영화계 탄압에 저항했던 영화인들의 멋진 되치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