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무언가를 정해진 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정석이라 표현한다. 정석은 곧 기본기와 연결된다. 정석대로 하지 않으면 기본기를 키울 수 없다. 잘 갖춰진 기본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경쟁력이 된다.

기본기를 갖춘 이가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의 범위는 그렇지 않은 이의 그것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지난 주 < K팝스타 >에서 박진영이 "오늘 라운드는 기본기가 없는 사람들이 다 떨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한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보컬의 기본기를 따지는 건 < K팝스타 >뿐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위대한 탄생2>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프로그램 모두 오디션 지망생들의 노래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이 음정, 박자, 호흡, 선곡 센스 등을 놓고 기술적 평가를 한다. 지난주에 지적한 부분이 수정되었는지를 따져 묻기도 한다.

오디션 지망생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지적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장 다음 주까지 수정한 부분을 반드시 고쳐서 무대에 나와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1차 목표인 그들에게는 그렇게나마 유예기간을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SBS 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의 심사위원 양현석·박진영·보아

SBS 서바이벌 오디션 의 심사위원 양현석·박진영·보아 ⓒ SBS


보편적인 것만 같은 테크닉 지적. 결국은 해석의 문제

갑자기 좀 크게 치고 들어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본래 현대시대의 미학은 상대적인 것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지적 역시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해석의 문제다. 심사위원 자신이 노래를 하면서 얻어낸 기술적 노하우와 식견은 분명히 다른 전문가들과 일정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오디션 지망생들을 평가할 때 견해의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지난주 < K팝스타 >를 보자. 생방송 무대를 위한 톱 텐 선발에서 유현상은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불렀다. 이후 평가에서 양현석은 "지금까지 보여준 무대 중에 제일 잘했다"라는 평가를 내린 반면, 박진영은 "이런 블루지한 스타일의 음악은 최대한 힘을 빼고 불러야 한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박제형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제이슨 므라즈의 버터플라이를 부른 그를 두고 박진영은 "오히려 앞서 김우성보다 잘했다"라고 평가를 내린 데 반해 양현석은 "저는 반대였다"며 "미세하게 어긋나는 음정이 거슬렸다"고 평했다.

<위대한 탄생2> 도 다르진 않다. 지난해 12월 장성재의 무대 내용을 두고 이선희는 "지적 받았던 호흡을 고치려고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고 호평한 반면, 윤상은 "전반적으로 너무 운 것 같다"고 비판했으며 윤일상은 "호흡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었다.

 MBC <위대한 탄생2>는 '멘토'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사진은 윤일상·이승환·이선희

MBC <위대한 탄생2>는 '멘토'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사진은 윤일상·이승환·이선희 ⓒ MBC


오디션 프로그램, 방영 자체가 '뜨는 가수' 프레임의 연장

심사위원을 맡은 가수들 각각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해야 뜨는 보컬'이라는 일정한 프레임이 짜여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디션 지망생들에게 기술적 부분에서의 수정을 요구하며 원석에 가까운 이들을 자신의 프레임으로 다듬고자 한다.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탈락이다. 프레임에 들어오기 거부한다는 것은 성실성의 문제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 프레임에 충실한 이들을 키워내 뜨는 가수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방영 자체가 이런 프레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방영 의도 자체에 방송 관계자들의 관점에서 본 '뜨는 가수, 뜨는 재목'의 프레임이 공고하게 내재돼 있다는 말이다. 선발의 의도와 선발할 가수의 형태가 이미 다 잡힌 상태에서의 오디션은 결국 지망생들 음악 스타일에 획일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의 내용이 획일화되는 것을 피디나 작가들이 모를 리는 없다. 아마도 새로운 시도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닐까. 당장 오디션 과정이 방송으로 나가고, 오디션 지망생들의 노래가 음원으로 유통될 텐데, 생경한 스타일의 보컬을 황금 시간대에 내보내는 것이 방송 관계자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수 장재인

가수 장재인 ⓒ CJ E&M


'슈스케', 공중파 오디션과는 이것이 달랐다

< 슈퍼스타 K >(슈스케) 1, 2가 대중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공중파 방송에서 듣기 어려운 독특한 스타일의 보컬들이 발굴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엠넷이 슈스케를 기획한 의도 이면에도 잘 다듬어진 '뜨는 가수'한번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존재한 건 마찬가지만.  

하지만 이미 짜인 프레임에 근거한 자체 필터링이 슈스케에서는 그나마 덜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독특한 스타일의 보컬들이 미리 짜놓은 프레임에 밀리지 않는, 심사의 틀 정도는 마련해줬다는 말이다.

사실 인디신(인디밴드 활동공간)으로 눈을 돌렸을 때 조문근, 장재인의 보컬이 다른 보컬에 비해서 극적으로 독특한 건 아니다. 인디 마니아들이 슈스케 1, 2탄의 결선을 지켜봤을 때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담담했다. 홍대에 가면 그만큼 특이한 음색의 보컬은 흔하다는 것이다. 근데 왜 그렇게 많고 많은 독특한 보컬들이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걸까.

듣기 좋다는 것,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보컬의 정석' 조규찬의 완벽한 음정에 감동을 느끼는 만큼 루리드의 불안정안 음정도, 빌리코건의 코맹맹이 목소리도 감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적 측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동의 핵심은 모든 곡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능력에 있다.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변칙 플레이어'들을 보고자 하는 건 과한 욕심일까.

 <K팝스타>를 통해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하이·박지민

를 통해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하이·박지민 ⓒ SBS


더 이상 '변칙 플레이어'는 볼 수 없나 

작곡가 돈 스파이크가 자신의 트윗에 올린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이 그냥 들리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지난 달 24일 돈 스파이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음정·박자에 기본 발성도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국민스타가 돼 차트와 프라임 타임에 공중파를 점령한다"며 "우리나라 음악계는 썩은 불량식품처럼 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수십만 명의 인재 풀을 데려다 놓고 최후의 생존자를 뽑고자 하는 의도가 개성과 파격성의 발굴이 아닌 기존 프레임에 충실한 오디션 지망생이라면 글쎄. 우리가 가족들과 리모컨 경쟁까지 해가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 봐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런 오디션은 그냥 기획사 차원에서 해도 되는 것들 아닐까.

지난주 < K팝스타 >에서 박진영은 말했다. "노래 한 곡을 부를 때에도 머리에서도, 배에서도 가슴에서도, 여러 군데서 소리가 나와야 지루하지 않다"고. 그렇다. 그런데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음색이며 창법이며 선곡들은 죄다 특정 장르에만 국한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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