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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돈 벌러 왔다가 늙고 병들어 오갈 데 없게 된 중국동포들에게 무료급식소는 그냥 밥 먹는 곳이 아니라 목숨 부지하는 곳이다.
 한국에 돈 벌러 왔다가 늙고 병들어 오갈 데 없게 된 중국동포들에게 무료급식소는 그냥 밥 먹는 곳이 아니라 목숨 부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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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배식 줄이 언제나처럼 천천히 줄어듭니다. 배식 줄에서 성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중풍병자 정씨와 조씨, 칠순 넘은 외팔이 이씨, 그리고 고봉밥을 퍼담는 우즈베키스탄 장애인 미샤까지 모두 오갈 데 없는 이주민들입니다. 이곳은 이주민을 위한 무료급식소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떠돌이 걸인 여성이 밥맛을 들였는지 매일 찾아와서 식판 가득하니 밥을 먹습니다. 배식 담당 직원은 "'여긴 이주민 급식소이니 다른 급식소에 가서 드시라'고 했더니 미친 듯이 욕하고 행패를 부려서 말도 못 꺼내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맛있게 드시라고 말을 건넸더니 확 째려봅니다.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앞줄에 열 명가량이 남았는데 밥이 떨어졌습니다. 주방 담당이 "점심 때 150인분을 준비하면 대략 10인분 안팎으로 남는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중국 연변에서 온 척추 장애인 문씨는 낙담합니다. 인천에서 산재환자 형님을 휠체어에 태워 데리고 왔다는 늙수그레한 동포 형제도 당황합니다. 다행하게도 주방 담당이 밥을 지을 테니 조금만 기다랍니다. 문씨도, 산재환자 형제도, 저도 안도합니다.

20여 분 뒤에 흩어졌던 줄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밥을 식판에 담습니다. 반찬은 묵은 김치와 오이무침, 어묵과 시레기 된장국 등 푸짐합니다. 반찬이 걸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디선가 몰려오고, 고봉밥을 먹기 때문에 밥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오늘도 누가 기밀을 누설했나 봅니다. 최근엔 누가 퍼트렸는지 몰라도 개장국을 끓였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배식 줄이 한참 늘어선 적이 있습니다. 저 또한 돈 떨어져 오갈 데 없는 신세로 타관객지를 떠돈 적이 있었는데 밥으론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습니다. 고기를 향한 그들의 사무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리봉 무료급식소는 365일 삼시 세끼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아침저녁 급식은 쉼터에서 지내는 100여 명의 이주민들이 먹고, 점심은 쉼터 이주민을 비롯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찾아온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인근 가리봉 벌집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과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직원들이 먹습니다. 이 법인은 늘 예산이 쪼들리기 때문에 자체에서 급식을 제공하면 찬의 질이 좀 떨어지고 교회와 기업체 자원봉사단이 찬을 챙겨와 배식하면 돼지불고기와 닭도리탕 등 찬이 푸짐합니다.

가리봉 무료급식소는 200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후원은 거의 없고 형편은 쪼들리는데 이주민들은 밀려들었답니다. 돈을 꾸어서 쌀을 겨우 사다 놓으면 찬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을 찾아가서 버려진 배추, 무 잎사귀들을 주어다 국도 끓이고 김치도 담갔습니다. 나날이 시레기들을 계속 주어가자 가락동 상인들이 사연을 묻게 됐고, 딱한 사연을 듣게 된 일부 상인들이 야채를 후원하면서 찬값이 아껴지게 됐습니다. 그들의 후원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득 장로님 내외께 드리는 권면

한 끼니 밥과 잠자리에 눈물 겨운 이주민들
 한 끼니 밥과 잠자리에 눈물 겨운 이주민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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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소망교회 은퇴 장로님!

요새 장로님 내외가 언론과 인터넷을 달구고 있네요. 장로님께서는 의원실 여직원 계좌에 숨겨 두었던 7억 원이 사실은 내 돈이라고 실토하면서 창피를 사고 있으시더군요. 7억 원이면  곽선희 목사님이 타고 다녔다가 망신살 뻗치게 했던 그 유명한 외제차 '벤틀리'를 2대나 사고도 남는 거액이 아닌가요. 저희 같은 가난한 성도들은 죽었다가 깨도 못 만지는 억만금입니다.

장로님이 북을 치니 아내 되시는 권사님은 장구를 치셨네요. 최근에 장로님 부인이신 권사님께서 1000만 원대 명품 핸드백인 '루이뷔통' 절도범으로 오인돼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루이뷔통 도난 장소는 특급호텔 피트니스 센터라고 합니다. 경찰에 신고한 여성은 올해 환갑의 귀부인으로 이곳의 여성클럽 회원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여성이 소유한 회원권이 자그만지 8000만 원 대를 호가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여성에게는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차피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천민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강도질을 했든, 땅 투기로 했든, 뇌물을 받았든 챙기는 것도 능력이니 어쩔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탐욕을 뒤로하고 머지않아 하직해야 할 텐데 과연, 이 여성이 스크루지처럼 회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감히 예상하건대 코끝에서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돈, 탐욕 등을 놓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장로님과 권사님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7억 원의 출처에 대해 입방아를 찧지만, 예수 안에서 한 형제인 저는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7억 원이란 억만금과 1000만 원 대의 루이뷔통 핸드백, 8000만원을 호가하는 회원권으로 인해 신실하신 장로님 내외가 시험에 들 것이 우려됩니다.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장로·권사가 물질 문제로 교회를 망신살 뻗치게 했다는 비난 또한 염려됩니다. 설사 그럴지라도 저는 이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우린 한 형제 한 몸인 예수교도이니 이상득 장로 내외의 허물을 너그러이 용서합시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을 하나님은 참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장로님 내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를 믿는 교인입니다. 예수는 교도들에게 이웃을 내 몸보다 소중히 여기라고 하면서 특별히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신 것을 잘 아시잖습니까. 머잖아 죽으면 썩어질 육신이라는 것,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7억 원에서 땡전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 루이뷔통 핸드백과 고액의 특별회원권도 천민자본주의 땅에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

그래서 장로님께 권면합니다. 여비서 통장에 꼬불쳐뒀던 7억 원을 가리봉 무료급식소에 기부하시라는 것입니다. 그 돈이면 7년 정도는 돈 걱정 없이 오가는 나그네들을 더 대접할 수 있습니다. 자주 그렇게 할 순 없지만 짬짬이 고기반찬으로 이주민에게 기름기를 채워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지난번에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셨지만 어떤 사람이 감동하던가요. 그까짓 7억 원쯤은 없어도 될 만큼 노후재산을 충분히 쌓아 놓으셨으니 그리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세상 죄와 하늘의 죄를 동시에 탕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권사님께도 권면드립니다. 루이뷔통 핸드백과 특급호텔 피트니스센터 여성회원권을 팔아서 고아, 과부, 나그네, 노숙자들에게 따듯한 식사를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회를 아무에게나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린 예수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니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우시면 익명으로 기부해도 무방합니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누가 도둑입니까?

지난 설날에는 떡 만둣국이 배식됐다.
 지난 설날에는 떡 만둣국이 배식됐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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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 명품 가방 도둑으로 몰렸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상왕의 아내로 호가호위(狐假虎威·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하며 천하를 호령하며 살아온 권사님이 도둑으로 몰렸으니 그 망신살이란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을 것입니다. '내 몸에 치렁치렁 걸친 목걸이, 반지, 외투, 구두 등의 명품 중에 명품을 합치면 그값이 얼만 인데 기껏 1000만 원짜리 가방이나 탐하는 여자로 취급하다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권사님, 아침에 권사님 연배인 칠순의 중국동포 김씨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박스를 주으러 가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중풍에 쓰러져 누운 마흔 네 살짜리 딸을 돌보고 있는데, 본인 또한 심장병 환자라고 합니다. 이들 모녀는 벌집이라 불리는 단칸방을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7만 원을 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종일 종이상자를 주어 1만 원에서 2만 원가량 번다고 합니다. 월수입 40만 원가량에서 17만 원을 월세로 떼어내면 20만 원 조금 넘게 남는데 그 돈으로 약값대고 쌀 사고…. 이 엄동설한에도 연료비가 없어서 솜이불 뒤집어쓰고 지낸답니다.

2~3년 전만 해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땐 박스 줍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2~3만원 벌이도 했는데 갈수록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입니다. 박스를 줍다가 도둑으로 몰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근 아파트나 빌라에 쌓아 놓은 박스를 들고 오다가 경비에게 붙들려 '도둑년'으로 몰린 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박스를 치워주면 고마워했는데 세상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경비들도 박스로 라면 값이라도 벌려고 나섰답니다. 1만 원을 버는 날은 시무룩해지고 2만 원 쯤 버는 날이 신이 나서 돼지고기 한 근을 끊어다가 딸과 함께 먹는답니다. 고기를 양껏 먹진 못하지만 행복한 웃음을 나눈답니다.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합니다. 상왕의 아내이신 권사님은 호가호위하는 이 세상에서 영생하고 싶으시겠지만, 김씨 할머니는 병들고 지친 이 세상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내 딸을 누가 돌봐줄까'가 염려돼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특급호텔 피트니스센터 여성클럽 회원이신 루이뷔통 도난신고 여성과 권사님은 아셔야 합니다. 그 명품 루이뷔통 핸드백값은 김씨 할머니가 2년하고도 한 달 동안 뼈 빠지게 종이상자를 주워 모아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이 추위에도 불을 때지 못하고, 돼지고기 한 근 끊을 때도 큰맘 먹어야 하는 중풍병자 모녀에게 1000만 원은 그냥 돈이 아니라 목숨입니다. 그 돈만 있다면 이들 모녀의 얼음장 방에 불기를 불어 넣을 수 있고, 돈이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는 딸을 재활병원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목숨 부지가 날마다 위태로운 이들 모녀에게 여성클럽 회원권 8000만 원은 상상조차 불허하는 고액입니다.

이상득 장로님, 그리고 권사님!

두 분의 호가호위는 누구의 것입니까. 루이뷔통을 비롯해 치렁치렁 감싼 그 명품은 누구의 것입니까. 자신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쌓아두지 못한 7억 원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권력이, 그 명품과 거액이 두 분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중풍병자 모녀를 비롯해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이 가리봉을 비롯한 변두리 동네와 산간벽지에서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서러워서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내 돈 내 맘대로 쓰든 감추든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외면할 수 있는 건가요.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박스를 모으다 들킨 칠순 노인이 도둑입니까? 아니면 7억 원을 차명계좌로 감춘 장로님이 도둑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8000만 원 대 여성클럽 회원이자 루이뷔통 절도범으로 몰렸던 권사님이 도둑입니까?


태그:#무료급식소, #이상득, #루이뷔통, #중국동포, #가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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