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울진 원전에서 핵연료 교체 및 재장전을 위해 '가이드 폴'을 설치하고 있다.
 울진 원전에서 핵연료 교체 및 재장전을 위해 '가이드 폴'을 설치하고 있다.
ⓒ 김당

관련사진보기


지난 27일 열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강연회에 관한 기사가 <프레시안>을 통해 보도됐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박원순 후보, 서울에 원전을 지을 수 있습니까?") 박원순 변호사가 원전 문제에 의식을 갖고 있다면 "원자력 발전소는 서울에 짓겠다"고 공약해야 한다는 김 발행인의 도발적인 주장 때문인지, 이 기사에는 반대의견이 주렁주렁 달렸다.

과학의 기본도 모르는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악플에서부터, 서울에 짓는다고 쳐도 그 많은 비용은 다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물음까지. 효율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더라도 원자력발전이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인구 5만의 깡촌, 세계 2위의 원자력 도시

강변에 있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네시간 정도 가면 내 고향 울진이 나온다. 외곽순환도로 타고 톨게이트로 빠져서 경부선 타고 내려가다가 원주에서 삼척 방향으로 꺾어서 다시 동해안고속도를 타고 내려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교통의 '오지'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할 때 대대장이 이것을 아주 절묘하게 표현한 기억이 난다.

"왼팔은 왼쪽 어깨 뒤로 넘기고 오른팔은 오른쪽 겨드랑이 쪽으로 집어넣어서 맞잡아봐. 잘 안 닿지? 손이 잡힐락말락하는 거기, 바로 거기가 울진이야. 서울에서 출발해도 멀고, 부산에서도 멀고 하여튼  한국 어디서 출발해도 제일 먼 데가 울진이란 말이지."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버글버글한 어떤 도시에서도 가장 먼 이곳 울진에 그토록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원자력발전소가 여섯 기나 가동중이다. 지진이나 화산활동이 없는 튼튼한 기반 위에 자리잡고 있고 5중 방호겹을 써서 최악의 상황에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게다가 3·4호기는 국내기술로 건설된 최초의 원전으로, '가카'께서 세계 만방을 돌며 그토록 세일즈에 열중하시는 바로 그 국산원자력발전소기술의 시효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울진에 있는 원전은 6기로 끝이 아니다. 현재 2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여기에 지난 2월 신규 원전 2기에 대한 추가유치동의안이 울진군의회에서 가결되면서, 계획대로라면 울진은 머지않아 총 발전량이 1만 메가와트(MW)가 넘는 세계 최대의 원자력발전소단지가 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자력발전단지는 일본 니가타에 있는 가시와자키-가리와 발전단지로, 약 8000 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미 울진원전은 발전 규모(약 6000 MW)로 세계 2위의 원자력발전단지다. 참고로 지난 3월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체 발전량이 약 4600 MW였다(이상 출처 : 東京電力 홈페이지)

5만의 깡촌인 내 고향이 그 내용이야 어쨌든 세계 1위가 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전세계의 탈원전 흐름에 역행하여 원자력발전규모를 자꾸만 늘려가는 이 정권을 위해 "고마워요, MB"라는 현수막이라도 내걸어야 할까?

"너 피폭이 뭔지는 아냐?" 물어보니 "그게 뭔데?"

지난 3월 24일(현지시각)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를 착용한 의료인력들이 엠뷸런스 주위에 모여있다. 이날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복구작업원 2명이 물웅덩이에 다리를 담근 채 전력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 병원으로 이송된 일본 원전 복구 노동자 지난 3월 24일(현지시각) 일본 후쿠시마현의 한 병원에서 방호복를 착용한 의료인력들이 엠뷸런스 주위에 모여있다. 이날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복구작업원 2명이 물웅덩이에 다리를 담근 채 전력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 AP=연합뉴스/요미우리신문

관련사진보기


"고마워요, MB" 같은 현수막 대신, 울진에는 1년에 한 두 차례, 원자력발전소 내부 점검 작업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내걸린다. '오바올(Overall)' 혹은 '오바홀(Overhaul)'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의 일당은 10만 원 내외로 아주 짭짤하다. 한철 잠깐 하는 일이다보니 직업소개소를 거쳐 온 일용직 노동자나,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지역의 젊은 남성들, 그러니까 내 친구나 아는 동생, 형들이 대부분이다.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으면서 이토록 높은 급여를 주는 일용직 일자리가 대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성물질이 어마어마하게 누출되었지만, 그 수습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해나 화재는 일단 인력을 투입해서 신속하게 대처를 하면 그만이지만, 방사성물질은 물이나 불과 달리 흔적이나 형체도 없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물질이다. 따라서 방사성물질 누출 뒤처리를 맡은 이들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한다. 사고 당시 피폭을 감수하고 진화와 보수작업에 뛰어든 '영웅들'에 대한 칭송이 전세계적으로 자자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피폭을 감수하고 진화에 나섰던 소방공무원들과 자진해서 수습작업에 참가한 이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치른 희생에 대한 보상 역시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 뒤에는 슬픈 비밀이 숨어 있다. 복구작업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일용직, 하층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후쿠시마에서 일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이 돈 받고 들어가세요, 피폭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가장 위험하고 해로운 일을 결국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이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울진에서도 원전 관련 작업을 하는 이들은 '약자'다. 소수의 정규직 관리자들이 다수의 일용직 노동자들, 그나마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찾아온 하청노동자나 알바생을 작업에 동원하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 일본의 상황과 닮았다.

작년이었는데, 점검 알바를 했다는 후배가 있어서 "너 피폭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냐"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피, 뭐? 그게 뭔데?"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친구는 자신이 방사성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정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돈이 궁한 대학생으로서는 일당이 세니까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고, 원전본부를 비롯한 직업소개소는 그런 위험성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도 때만 되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인부 모집 현수막이 걸리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청년, 일용직 노동자들이 원전으로 몰려든다.

헌법 1조를 바꾸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차별적' 민주공화국

원자력발전소의 입지 선정도 사실 이런 정보의 비대칭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한 '꼼수'가 아닐까 싶다. 원자력발전소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떠들어대도,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구가 적은 울진이나 영광 같이, 기껏해야 관광명소 혹은 대게, 굴비 같은 특산품으로 알려진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에 원자력발전소가 자꾸만 들어서는 것이다.

내 고향 울진의 인구는 5만이 조금 넘는다. 그마저도 계속 줄고 있고 읍내에서 조금만 나가면 할매, 할배들이 지키고 선 집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볼 때 경제 면에서나 정보 면에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령 인구와 농민·어민들이 다수를 이루는 울진에서 원전에 대해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지역 행정가들과 정치일꾼들은 열악한 재정 때문에 세금 혜택과 막대한 지원금이 주어지는 '원자력발전소 유치'라는 달콤한 유혹을 끊을 수가 없다.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며 한나라당 표밭이나 다름없는 울진에서 득표수 1위로 군의원에 당선된 장시원씨가 지난 2월 있었던 군의회의 원전유치동의안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섰지만 6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유치동의안이 가결되었다. 동의안 가결 1개월 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발전소 자체가 '만의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그토록 취약한 폭탄과도 같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확인하고도, 또 가능한 한 원자력발전 시설을 축소시키는 선진국들의 탈원전 흐름에 역행해가면서까지 추가 건설 계획을 입안하는 이 정부의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에 대해 함구하는 언론과 과학자들까지 생각하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임에도 그 주인들이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전의 유지와 보수 작업에도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물정에 어두운 지역민들을 데려다 쓰는 행태도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 1조는 정확하지 않다. 이 조항을 '대한민국은 개인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대우하는 차별적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원전을 둘러싼 현실이 그러할진대, 그에 맞게 실정법을 고쳐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강에 원자력발전소를 짓자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위성사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위성사진
ⓒ ISIS

관련사진보기


"퇴임하신 '오세 훈'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계획을 원전 건설로 대체합시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지진이나 화산활동 같은 자연재해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한 곳, 그리고 뜨거워진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 수자원이 풍부한 곳, 전력수요지로부터 가까운 곳일수록 좋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따라서 울진에 짓든, 서울에 짓든, 안전하지 않은 것은 모두 마찬가지이므로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쓰나미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해안가보다는 서울 같은 내륙이 좋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강은 그 자체로 원자로를 식히는 데 필요한 충분한 수자원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원자로를 식히는 데 사용된 온배수는 아주 깨끗합니다. 울진이나 고리 원전에서는 온배수로 어패류를 양식해서 방류까지 할 정도니까요.

무엇보다 최근의 정전사태 등을 고려했을 때 서울에 발전소를 짓는 것은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입니다. 부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도, 전력 실수요자가 그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서울 시민이 천만 명이나 되니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닌 셈입니다. 인구 5만 명밖에 되지 않는 울진에도 10개나 원전이 들어서는데, 인구만 그 200배가 되는 서울에 1개쯤 짓는 것이 뭐 대수겠습니까. 경제적으로는 별로 도움도 안 되는 공원을 만든다고 있는 건물도 없애는 마당에 누구나 필요로 하는 발전소를 짓는 것만큼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 기우에 불과한 진부한 주장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이와 같이 '한강에 원전을 짓자'는 제안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는, 글을 쓴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땅값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바늘하나 꽂을 틈도 없는 서울 한복판에 사람들을 몰아내고 발전소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지난 100년간의 한반도 지진 발생지를 살펴볼 때 수도권을 비롯한 서해안보다는 동해안 북부 지역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종철 발행인이 박원순 변호사를 향해 공개적으로 제안한, 원전 문제에 의식이 있다면 서울에 원자력발전소를 짓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건설에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고향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여섯 개나 있고, 그 원자력발전소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부모님과 할머니가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원자력발전소를 네 개나 더 짓는다고 한다. 이런 내가 원자력발전소에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것을 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원전 폐쇄는 못해도... 추가 건설은 하지 말자

나는 가동 중인 원전을 폐쇄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더 늘리지 말자는 것이고, 전력 수요를 대체할 다른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미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 발전소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 발전소 직원들의 처지도 지지하고 이해한다. 나는 오히려 그들을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지금도 그곳에 살고계신 할머니와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수많은 지인들 걱정으로 밤마다 잠을 설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들이나, 그러한 주장을 내세우면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경제적인 논리를 내세워서, 지역 주민들의 삶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나 손쉽게 원전 추가 건설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가 갈리고 심장이 뛴다. 그들은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 혹은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났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대안은 분명히 있다. 원전건설비용을 가지고 고효율기기 보급, 태양광과 지열을 활용한 가정용 자가발전시설 지원 체계 마련, 대체에너지관련산업·연구 지원 확대 등과 같은 정책집행 예산으로 쓴다면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을 반려할 여지는 충분하다.

오늘도 내 고향 울진에서는 4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다. 2기의 원전은 '계획예방정비' 명목으로 가동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내 친구들, 혹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2기의 새로운 원전은 계속해서 공사중이다.

지난 29일 핵발전소 추가 건설에 반대하는 25번째 목요촛불집회가 열렸다.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정부여당은 입을 다문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29일 울진군청 앞에서 열린 목요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신울진원전 1·2호기(건설 중인 7·8번째 원전)는 주변공사를 마치고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원자로 설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29일 울진군청 앞에서 열린 목요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신울진원전 1·2호기(건설 중인 7·8번째 원전)는 주변공사를 마치고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원자로 설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 이동철

관련사진보기



태그:#원자력, #울진, #오세훈, #장시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