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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들 덤벼 봐~~ 얏 다섯 살 꼬마 재훈이가 나이든 고모들에게 물싸움을 걸었습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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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히히 얏~~"
"앗! 어~~ 이 녀석 봐라, 감히 고모들에게 물싸움을 거네."

꼬마의 웃음소리에 치기가 묻어납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드리운 골짜기 개울에서 다섯 살 꼬마와 60대 두 고모들이 물싸움을 벌였습니다. 귀염둥이 다섯 살 재훈이가 고모들에게 갑자기 물을 끼얹으며 물싸움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낮 기온이 33도나 올랐던 지난 주말 칠갑산 골짜기에서였습니다.

8월 중순까지 연일 쏟아지던 폭우가 그치면서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져 이제 가을이 오나보다 했지요, 그런데 웬걸, 3~4일 시원했던 날씨가 돌변하여 다시 연일 푹푹 찌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늦더위 때문이었을까요, 지난 주 목요일 40대 중반인 큰처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말에 한 번 뭉치자는 것이었지요.

무조건 좋다고 했지요. 백수 수칙 1조에 "누군가 불러주면 무조건  달려간다"는 말이 있기도 했지만 뭉치기로 한 장소가 일단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달려간 곳이 충남 청양군 장평면에 있는 칠갑산 도림골 골짜기였습니다. 이곳은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셋째 처제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늦더위에 처가 남매들과 함께 찾은 칠갑산 골짜기

그래서 장소 선택은 물론 음식까지 셋째동서 부부가 정성껏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주변 풍광도 아름답고 멋진 곳이었지요.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골이 깊은 칠갑산은 원시림처럼 짙은 숲과 골짜기가 매력적인 산입니다.

잎담배 수확이 끝난 밭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풍경
 잎담배 수확이 끝난 밭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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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골 골짜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마제터널 안쪽에서부터 흘러내린 맑은 물이 작은 바위를 넘고 웅덩이를 이루며 졸졸 흘러내려 시원하기 짝이 없었지요. 미리 예약해 놓은 개울가 아담한 정자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마련해 놓은 평상에 짐을 풀고 나서 잠깐 기다리자 모두들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의 나이 구성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2남 4녀인 처가의 형제자매들이 부부동반으로 함께 했는데 막내처남은 아직 어린 딸과 아들도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열두 명에 아이들이 두 명, 2대가 모였지만 나이는 60대 중반에서부터 아직 유치원생인 재훈이와 재영이가 함께 했으니 연령대별 구성은 3대가 함께한 셈입니다.

5세와 7세인 막내처남의 아이들은 맏이인 우리부부와 한 살 터울인 바로 아래 처제부부에겐 손자 손녀 같은 나이지요. 실제로 막내처남은 저의 큰 딸보다 겨우 두 살 위이니 그럴 수밖에요, 음식을 나누고 쉬는 시간에도 꼬마 재훈이와 재영이 남매는 당연히 고모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조카들이지만 손자 손녀 같은 어린아이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모처럼 6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아름답고 멋진 골짜기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서인지 모두들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처제는 느티나무 아래 개울로 내려갔습니다. 어린 조카들은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벌써 개울물에서 물장구치며 놀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잎담배 말리는 비닐하우스 안 멋진 풍경
 잎담배 말리는 비닐하우스 안 멋진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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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이는 두 살 위인 누나에게 물을 끼얹으며 장난을 치는 통에 누나가 오히려 쩔쩔매며 피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지요. 녀석들은 사진을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디밀자 아주 기묘한 자세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요.

녀석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동서들 처남들과 어울렸습니다. 얼큰하게 주기가 오른 아래 동서는 40대 처남들과 어울린 자리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제겐 조금은 불편한 자리였지요. 그래도 처남과 처제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로 정다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망친 농부부부의 한숨과 시름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산책삼아 개울가에 있는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약간 경사지고 제법 널따란 밭은 잎담배를 재배했던 곳으로 수확이 끝나고 콩과 들깨가 자라고 있었지요. 그런데 콩밭 가장자리에 비닐하우스 세 개가 세워져 있어서 들여다보니 잎담배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콩과 들깨가 자라는 밭에서 수확한 잎담배였습니다. 그런데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리고 있는 잎담배 모습이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새끼줄로 엮은 잎담배가 노랗게 말라가는 색깔과 일정하게 늘어진 모습이 정말 멋졌거든요.

그런데 잎담배 말리는 비닐하우스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동안 60대로 보이는 농부 부부가 나타났습니다. 수확한 잎담배의 남은 줄기들을 제거하러 나왔다고 합니다. 농부 부부에게서 담배와 고추농사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거 몇 푼 안 됩니다, 예년의 3분지 1도 안될 것 같네요."

우선 비닐하우스 세 개에 가득하게 말라가는 잎담배를 팔면 얼마나 수입이 되느냐고 물으니 한숨을 푹 쉬며 하는 말입니다. 잎담배는 본래 초벌과 두 번째 따서 말린 것이 품질도 좋고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데 날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전혀 수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 말리고 있는 것은 끝물로 수확한 것들이라 품질이 떨어져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었지요. 아름답고 멋진 풍경으로 바라본 도시민의 어설픈 시선은 참으로 철없는 눈길이었던 것입니다.

재훈이와 재영이 남매의 귀여운 모습
 재훈이와 재영이 남매의 귀여운 모습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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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이 두 개인데 하나는 탄저병으로 모두 죽어버렸고 다른 밭도 수확이 시원치 않네요."

담배농사나 고추농사 모두 일손도 많이 가고 힘들여 지은 농사인데 올해는 농사를 모두 망쳤다고 합니다. 예년과 달리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장마철과 장마가 끝난 후에도 날마다 퍼부은 집중호우로 농사를 망친 농부부부의 시름이 깊어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나이든 고모들과 물싸움을 벌인 귀염둥이 처조카 다섯 살 재훈이

산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으나 어린 조카들이 보이지 않아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내와 처제는 작은 폭포처럼 보이는 웅덩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때 아래쪽에서 누나와 물장난 치며 놀고 있던 재훈이가 슬금슬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히히 웃으며 고모들에게 물을 끼얹으며 물싸움을 건 것입니다.

"호호.. 재훈이 너, 이 녀석 고모들에게 물싸움을 걸었겠다."

나이든 고모들은 손자 같은 재훈이가 물싸움을 걸어오자 즐겁게 받아주었지요. 그러나 다섯 살짜리 꼬마와 나이든 고모들이 격렬한 물싸움을 벌일 수는 없었는지 몇 번인가 물 끼얹기를 주고받은 다음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위에서 내려다보기에는 여간 재미있고 귀여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재훈이 녀석 참 귀엽기도 하지, 아~ 이 녀석이 우리들에게 물싸움을 걸어오지 뭐야, 호호호."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아내는 조금 전 재훈이와 물싸움을 벌인 것이 여간 재미있었던 게 아닌 듯 처제들에게 재훈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아내는 막내 동생의 아이들인 어린 조카들을 각별히 귀여워했습니다. 나이든 두 딸이 아직 미혼인데다, 막내인 아들이 지난봄에 결혼하여 아직 손자나 손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늦더위 속에 충남 청양에 있는 칠갑산 골짜기에서 보낸 처남 처제부부들과의 주말 하루는 손자 같은 귀염둥이 어린 조카 재훈이로 인해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늦더위는 언제 물러가고 가을이 올까요?


태그:#칠갑산, #재훈이, #잎담배, #농부,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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