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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화장실은 네 가구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화장실이란 말조차 사치스럽게 들릴 정도로 작은 항아리를 묻고 그 위에 두 개의 나무 발판을 얹어 놓은 게 다였으니 화장실이라기보다는 '똥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화장실이든 똥간이든 네 가구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화장실의 똥을 퍼서 산 속에 땅을 깊이 파고 그 속에 파묻어 똥을 해치웠습니다.

밤에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달빛이 나무로 엉성하게 못을 박아 가려진 틈새로 새어들어 왔고 산에서 부는 바람에 나무가지가 서걱서걱 속삭이는 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나는 가능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볼일을 보고는 했습니다. 똥간의 똥 위에는 구더기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에 나는 달과 나무를 쳐다 보며 구더기 따위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너무도 징그러웠으니까요.

다른 집은 남자들이 모두 똥지게를 지고 똥을 치웠지만 우리집은 내 몫이었습니다. 죽기보다 싫었지만 38킬로그램의 몸무게의 엄마는 똥지게 질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똥을 퍼야 했습니다.

반구형의 고무로 만들어진 똥국자는 못으로 길다란 나무막대와 이어 박았는데 나는 나무 발판을 걷어내고 똥국자로 시커먼 고무로 만들어진 똥장구 가득 똥을 퍼내 담습니다. 그리고는 지게로 똥장구을 집어 어깨에 메고 산 위로 올라가 이번에는 다른 곳에 구덩이를 파고 똥장구를 뒤집어 쳐다보지도 않고 구덩이에 지독하게 냄새나는 똥을 퍼붓습니다. 물론 구더기들도 들끓습니다. 두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등과 얼굴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혀서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도 똥을 다 해치우고 나면 기분이 괜히 좋아졌습니다. 최소한 세가구가 똥을 풀 때까지는 내가 똥을 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밀린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랄까요.

똥 푸는 것 외에도 나를 괴롭히는 게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쥐벼룩입니다. 오빠가 군대에 갔을 때도 사우디로 나갔을 때도 엄마는 그 방을 세놓기 원했지만 나는 그것만큼은 양보 못하겟다는 듯이 우기고 우겨서 오빠가 쓰던 방을 내가 쓰게 되었습니다.

똥지게와 쥐벼룩
 똥지게와 쥐벼룩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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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쥐였습니다. 쥐오줌으로 여기 저기 누렇게 변한 천정벽지는 아래로 축 쳐져 있었고 한 쪽은 뚫려 있었지만 엄마는 그런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면 뚫어진 천장 구멍으로 쥐가 빼곰히 내려다볼 때면 처음에는 자지러지게 무서웠지만 면역이 되어 나는 익숙한 듯 책으로 방바닥을 탁하고 소리가 나도록 치면 쥐는 다시 천정 안으로 숨어 들어가 사그락거립니다. 매일 밤 쥐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온 몸이 가려웠습니다. 몸 여기 저기 빨갛게 발진 같은 게 돋아 오르고 머리밑이 가려워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쥐벼룩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선례오빠한테 천장을 좀 막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선례오빠가 나무 판때기를 천장에 올리자 천정벽지가 더욱 내려 앉아 판때기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선례오빠는 두꺼운 종이포대에 풀칠을 해서 천정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못가 다시 쥐들은 구멍을 뚫었고 나는 계속 쥐벼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방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때는 쥐벼룩에게 시달리면서도 나는 나 혼자만의 방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손바닥만한 창문에 보라색 천을 사다가 내가 직접 커튼도 해서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는 소공녀 '세라'처럼 상상을 했습니다. 소공녀 세라는 쥐에게 먹이도 주었는데 아마 쥐벼룩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쥐벼룩에게 시달렸다는 내용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에 페치가가 있고 담장에는 담쟁이 넝쿨이 너울대며 내 방은 두 면이 넓은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유리문을 통해 넓은 베란다로 나가는 상상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 베란다에는 큰 나무가 있어 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고 그 베란다에서 정원을 내려다봅니다. 정원에는 능소화며 백일홍, 라일락, 석류나무, 모란꽃 등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재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하고 나는 고급스러운 목재로 되어 있는 책상 위에서 글을 씁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의 나래도 잠시 또 쥐가 고개를 삐쭉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내 끝이 나고 아쉬움에 신경질이 납니다. 쥐 그림자가 길게 불빛에 비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소공녀와 같은 상상을 했지만 도저히 쥐와는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쥐와 구더기를 싫어합니다. 아니 무서워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소공녀, #연재동화, #최초의 거짓말,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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