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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소유주들은 보금자리주택 사업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소유주들은 보금자리주택 사업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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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시가 시끄럽다. 과천시민들이 보금자리주택사업에 동의한 여인국 시장(한나라당)에 대한 주민소환에 나섰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시민 1만1000명의 서명을 받아 과천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했다. 이들은 전원도시인 과천의 가치 하락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속내는 집값 하락과 재건축 무산에 대한 우려다.

이런 상황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과천 비닐하우스 쪽방촌 주민들이다. 보금자리주택으로 과천이 떠들썩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 갖는 이들은 없다. 과천은 서울 강남3구와 함께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다. 시세의 85%에서 공급되는 보금자리주택은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14일 과천을 찾았다. 비닐하우스 쪽방촌 주민들과 아파트 주민들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반대했다. 하지만 반대의 이유는 앞서 밝힌 대로 크게 달랐다.

"5000만 원 반지하도 못 들어가... 보금자리주택은 그림의 떡"

과천동 상하벌마을 26㎡(8평)짜리 비닐하우스 쪽방에 사는 이명심(71)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비가 그치기를 바랐다. 이날도 집안에 비가 샜다. 허리디스크와 관절염으로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 할머니에게 빗물을 집밖으로 퍼내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다.

이 할머니가 비를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2009년 이곳으로 오기 전, 5년간 살았던 경기 안산시 건건동 반지하의 기억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천장에서 떨어지고 벽을 적셨다"며 "심한 경우에는 계단으로 물이 콸콸 쏟아졌고, 무엇보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똥물을 참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과천 비닐하우스 쪽방촌에 사는 이명심 할머니에게 빗물을 집밖으로 퍼내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다.
 과천 비닐하우스 쪽방촌에 사는 이명심 할머니에게 빗물을 집밖으로 퍼내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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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머니의 전 재산은 집안 가재도구뿐이다. 반지하방 보증금 500만 원은 마을 자치회관으로 이용되는 비닐하우스 한편을 쪽방으로 개조하는 데 썼다. 임대료는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과천시내와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사이에 있는 이 금싸라기 땅이 언제 개발될 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5월 과천에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났을 때, 이 할머니는 임대주택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 중 국민임대주택의 임대료(전용면적 47㎡형)가 1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할머니는 "전셋값이 5000만 원인 인근의 반지하도 못 들어가는데, 보금자리주택에는 어떻게 들어가겠느냐"고 말했다.

이 할머니 건너편에 살고 있는 김현수(가명·48)씨도 보금자리주택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서민들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허울 좋은 보금자리주택을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과천시민 중 보금자리주택 혜택받는 사람 거의 없다"

과천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과천시 갈현·문현동 일대 과천지식정보타운 예정지(면적 135만3000㎡)에 2015년까지 아파트 9641가구와 업무시설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보금자리주택 중 국민임대주택은 1615가구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30%만 과천시민들에게 우선 배정된다.

황순식 과천시의회 부의장(진보신당)은 "과천 주거취약계층 중 보금자리주택 혜택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현재 과천시 전체가구의 20%가량인 2500가구는 비닐하우스 쪽방이나 반지하 셋방에 사는데,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물량도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다"고 밝혔다.

이춘숙 '주거권 실현을 위한 비닐하우스 주거연합' 전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과천 비닐하우스 쪽방촌 사람들을 우롱한 것은 이번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참여정부 당시 건설교통부는 주거빈곤층 주거지원대책을 통해 4년 내에 비닐하우스 쪽방촌 주민들이 입주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입주 전까지 7000만 원의 전세보증금도 지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춘숙 전 집행위원장은 "국토부는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지어 막대한 분양수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돈은 서민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빚을 갚는 데 쓴다"며 "여인국 시장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재정 지원을 통해 자신의 공약인 과천지식정보타운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과천 비닐 하우스 쪽방촌에 사는 김현수(가명·48)씨는 "서민들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허울 좋은 보금자리주택을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천 비닐 하우스 쪽방촌에 사는 김현수(가명·48)씨는 "서민들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허울 좋은 보금자리주택을 밀어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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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지연되면 주민들의 삶은 더 피폐"

여인국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를 주도한 것은 과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소유주들이다. 류재명 비대위원장은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면 전원도시 과천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교통체증 등으로 생활여건이 나빠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재건축 추진 무산 우려와 집값 하락이 보금자리주택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재 과천 12개 주공아파트단지 중 이미 재건축을 끝낸 2개 단지를 제외한 10개 단지에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더디다.

재건축은 일반 분양을 통한 이익으로 아파트 소유주들의 부담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시세보다 싼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설 경우, 일반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미분양을 감당해야 한다. 그만큼 아파트 소유주들의 부담도 커진다. 현재 과천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값은 하락세다.

한 재건축 아파트 주민은 "과천의 전원적 환경에 매료돼 대출을 받아 이사 왔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면서 "재건축을 계속 기다려왔다,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면 주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태그:#과천 보금자리주택, #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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