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 21일, 우리는 무안에서 만났다.

 

싱싱한 양파, 갓 잡은 낙지와 칠게,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갯벌과 함께. 생태지평은 이번을 3번째로 무안갯벌 생태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낙지의 인기 덕분인지(?) 30명을 정원으로 참가자를 모집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녀노소 1박2일을 함께 할 구성원이 정해졌다.

 

길이 막히지 않아 서울에서 4시간여 만에 무안생태갯벌센터에 도착한 일행은 몇 시간의 피곤함도 잊고 넓게 펼쳐진 갯벌의 풍경에 곧 넋이 나갔다. 용산마을 어머니들이 며칠 전부터 정성스레 준비하신 첫 번째 식사를 달게 마치는 동안에도 종종 갯벌로 시선들이 갔다.

사람도, 일정도, 무안생태갯벌센터도 서로 소개를 마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숲과 문화학교 강영란 교장선생님의 특강과 더불어 열었다. 또 생태지평 회원이자 이 땅의 강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신 박용훈 선생님의 짧막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갯마을 포토스토리를 찾으러 나섰다. 그 순간부터 마지막 발표 시간까지의 여정을 사진에 담아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갯벌센터에 도착한 처음 바라본 갯벌과 몇 시간이 지나고 또 바라보는 갯벌이, 꼭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갯벌을 바라보는 내가 처음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갯벌의 마력에 빠져 지난번에 이어 또 오게 됐다는 한 참가자의 말처럼 갯벌이 어떤 마력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갯벌을, 자연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시간만큼 자기도 모르게 치유되고 정화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여행자들은 용산마을 김용금, 정영임, 정애영, 이원병선생님의 요리교실 학생이 되어 칠게 튀기기, 양파 김치 담그기, 낙지 호롱 감기를 몸소 해보고 즉석에서 맛보았다. 보람도 맛도 몇 배인 것을 모두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으로 확인하고, 어머니들이 요리교실 준비하시랴, 열심히 한 학생 상 주시랴 바쁘신 와중에도 정성스레 차려주신 저녁 만찬을 즐겼다.


풍경이 좋은 숙소에서 맛난 먹을거리와 보물찾기, 레크리에이션과 수다로 풍성한 밤을 보냈는데 이때, 네명의 꼬마 친구들만 밤갯벌 탐험대를 꾸려 야간 낙지잡이를 떠났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낙지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며 많이 실망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잊지 못 할 순간이 됐을 것이다. 나중에 어떤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밤에 낙지 잡으러 갔던 거였다고 하는 걸 봐도. 감사하게도 용산마을 주민분들도 함께 해 주셨다. 마음 내어 걸음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모두 무사히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조금은 흐리고 가끔은 보슬비도 내렸던 전날과 달리 너무 화창하게 개여 갯벌을 따라 걷기에 딱 좋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좋지만, 가까이서 부대끼는 건 마주하는 것 마다 한 층 더 깊이 몸과 마음에 들어올 수 있게 해 준다. 자연히 더 깊은 숨, 더 큰 웃음이 생긴다. 



출발했을 때 보다 물이 얼마큼 들어왔는지 혹은 나갔는지 저절로 비교가 되는 모래 갯벌을 사박사박 걷고, 구불구불 작은 마을과 양파밭 사잇길을 지나면서 참가자들은 종종 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하늘 봐!', '어? 땅이 푹신해!', '우와! 얘는 누구지?', '어머나! 예뻐라!', '완전! 멋지다!', '야! 대단한데?', '하! 정말 신기하다!' 등등 발걸음을 뗄 때 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으로 준비하신 야채낙지고둥죽이 다 불고 있다고 전화가 빗발쳤지만 이미 시작된 해찰의 즐거움은 금방 떨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맛있었을 죽은 더욱 꿀맛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갯벌체험, 용산 마을 1등 낙지아저씨 이원병선생님을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갯벌로 들어갔다. 갯벌은 발이 쑥쑥 빠지는 게 마냥 빠져들어 갈 것 같아도 막상은 단단한 암반이 받쳐주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경작 본능처럼, 채취 본능이 있는지 참가자들은 갯벌 장화 봉지를 알뜰하게 챙겨 뭐라도 잡아가지고 나오겠다고 들고 들어갔다. 

 

박종주 황토갯벌 용산마을 영농조합장님의 주의처럼 거추장스런 짐만 되기도 하고, 몇 마리 잡아 담기도 했지만 나중엔 다 놓아주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낙지아저씨처럼 이고 싶은 것은 아니였을까. 재미삼아서가 아니라 가까이 나는 것들을 경작하고, 채취하는 것 만으로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나 습지보호지역이건 아니건 주민들은 어업 활동에 조심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무분별한 어업 활동은 결국 갯벌의 건강성을 떨어뜨릴 것이고, 주민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습지보호지역을 만나는 방법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왔다. 한때 유행했던 갯벌체험은 조개잡기 체험이라고 해야 할 만큼 조개를 맘껏 잡는 것이 체험의 전부였다. 인원수, 횟수의 제한 없이 조개가 있는 한 체험은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훼손되는 갯벌도 생겼다.
 
현재 무안갯벌도 지역 주민 외에는 갯벌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는 방문객이 많은 주말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갯벌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한다. 이번 생태여행 참가자들이 갯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왜 안 되냐'고 묻기도 했다. 기존의 조개잡기 체험처럼 갯벌에 무제한으로 들어가 무제한 어업 체험을 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갯벌의 역사와 형성 과정, 갯벌에 사는 생물들 그리고 그들의 역할 등을 오감을 열고 알기에는 갯벌에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큰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하지만 갯살림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이 아니라면 일생에 한 번만 갯벌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갖자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갯벌에 들어가는 것이 조심스럽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몇십 명씩 한꺼번에 들어갈 때는 더욱 그렇다. 어릴 때 부터 갯벌에서 자라 갯벌의 생리를 잘 아는 주민분들과 다른 미숙함은 갯벌과 갯벌생물들에게 본의 아니게 몹쓸 짓을 하게도 된다. 한 사람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작더라도 그 작은 일이 여럿 모이면 큰 일이 된다. 그렇기에 1박2일 일정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갯벌체험 일정을 잡고 그전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을 먼저 갖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좀 부족했다 싶다. 다음번엔 갯벌 생태여행의 바탕이 갯벌 교육에 있음을 더 많이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태여행은 무수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무안 습지보호지역을 일단 만나고 알아가는 것이 큰 목적이였다. 그 속에서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길 바랐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그 내용과 정도도 모두 다르다. 올바른 목표에 올바른 과정으로 이르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어땠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길목에 서서 이따금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길목에서 언제, 어떤 손을 내밀어야 할지, 생태지평 연구원으로서 생태여행이란 이름을 건 1박2일을 지내는 종종 생각했다. 나부터 잘 해야 하는데 어쩌나 했음은 물론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 처음 빠진 갯벌, 처음 듣는 강연, 처음 먹는 낙지호롱, 국내 처음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무안갯벌에서 처음인 것들이 많았던 시간, 다른 참가자들은 뭘 느끼고 생각했을까? 마지막 포토스토리텔링 발표 시간에 조금 엿보았더니 양파밭을 기어다니는 개미가 되고, 낯선 사람들을 집에 숨어 바라보는 강아지가 되고, 사람들의 발을 피해 요리조리 움직이는 칠게가 되어 똑같은 풍경을 다른 시각으로 담은 이야기, 마냥 신나 힘이 넘치는 아이들 이야기, 뜻밖에 신나 자유로워진 어른들 이야기가 있었다. 

생태여행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이름뿐이지 않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여행이였는지 의문이고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무안갯벌과 함께 한 1박2일의 기억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자연을 향한 작은 새싹 하나 움트게 한다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은 어쩔 수 없이 끼어든다. 건강하게 잘 지내다 서로의 가슴속 푸르름이 얼마나 자랐는지 마주 할 수 있는 날 오길! 


태그:#무안갯벌, #생태여행, #낙지, #포토스토리텔링, #자연과인간의공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