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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현에 규모 9.0의 대지진이 엄습했다. 1000년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이라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수만 명의 사상자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체르노빌 사고에 버금가는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후쿠시마 지역은 물론 동일본 전 지역이 방사능 오염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했다.

 

사태가 발생한 후 세상이 다시 한 번 놀란 것은 위기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대처방식이었다. 침착하고 질서 있게, 그렇게 화를 내지도 체념하지도 않고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며 여기저기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들이 떠내려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었는데도 소란스럽거나 엉엉 통곡하지 않고 나중에 발견한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너무나 행복해하는 할머니, 종업원의 40%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는데도 엉망진창이 된 공장시설 앞에 종업원을 모아놓고 힘을 합쳐 다시 시작하자고 차분하게 역설하는 중소기업 사장, 1인당 제한된 빵과 물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몇 시간 동안 아무 불평 없이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제대로 된 보호복과 장비를 갖추지 못했는데도 도쿄전력의 작업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현장으로 간 후쿠시마 원전 하청기업 직원, 원전 냉각수 살포 작업을 지원한 은퇴를 앞둔 소방대원. 신칸센(일본의 고속철도)이 터널 속에서 급정거해 몇 시간 동안 어두운 차량 안에 있어야 했는데도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리는 일본 승객들….

 

많은 일간지들은 이러한 일본 시민의 행동을 보고 성숙한 시민질서를 보여줬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하여 정부와 도쿄전력은 처음부터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축소 발표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고 정부 방침과 지시에 따라 질서 있게 행동했다.

 

그간 한국에서는 단편적이고 편협한 내용만을 골라 대중의 얄팍한 기대심리에 부응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도 있었는가 하면, 세계 경제대국 일본에 대한 과도한 칭찬과 한국인의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킨 <일본은 있다>라는 책도 나왔다.

 

많은 한국인이 각자 체험에 의지하여 나름대로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고 유명한 교수들은 역사적으로 일본을 분석하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일본인의 본모습인가.

 

한국인들은 이웃나라가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자 성금을 모았다. 그러나 일본 교과서의 독도 기술로 말미암아 그 온정의 마음은 식었고,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여전히 의심스럽고 믿지 못할 이웃이 되고 말았다.

 

1923년 발생한 간토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약 10만 명이 숨졌다. 그런데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를 일본 정부에서 고의로 민간에 유포해 수많은 조선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을 당했다. 학살은 지역단위로 민간인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민간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일본 간토 지방의 어두운 역사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의문점으로 남아 있었다. 많은 논문과 서적, 의견과 주장이 제시됐지만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않는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한 일본인 친구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의 답변은 의외였다.

 

"이것(이번 대지진 후 일본인이 보인 행동)은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행동하도록 배웠기 때문입니다. 인간이기에 슬픔과 분노, 의심과 저항의 감정은 똑같지만 우리는 그런 감정을 표출하는 다른 방법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이게 자연스럽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하는 한국인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참사 후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인의 대처법... 왜?

 

여기서 우리는 문화와 문명이라는 다른 두 가지 잣대를 이용하여 따져야 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을 있는 그대로 비교하여 우열을 따지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물론 일본과 한국은 기원전 2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종적, 언어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일본에서는 섬나라 지형, 사무라이 전통이 오래 지속된 역사 등을 통해 정권에 순종적이고 행동과 언어를 절제하고 조직과 사회를 최우선시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일본인의 일상생활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개인적인 가치관보다는 "조직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방향"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진짜 속마음은 따로 있다. 혼네(본심)와 다떼마에(사회적 요구에 따라 맞추는 마음)를 잘 구분하는 것과, 개인적인 감정을 사회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즘도 일본 사회에서는 "그 장소의 공기를 읽는 것(場の空気を読む)"이 최고의 처신술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 본질은 "자기의 의사를 따르지 말고 그 장소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대세에 자기의 의견을 맞춰 피력하라"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일본인과 일본사회 속에서 조직과 사회 그리고 대세에 순응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표현을 자제하며 조직과 사회를 우선시하는 풍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가정, 학교와 직장에서 똑같은 가치관을 주입받은 문화적 배경을 무시하고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양상을 보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일본인의 역사의식이 얄팍한 것은 교육의 영향이 크다. 과거사 문제를 비교적 철저히 단죄한 독일과 달리, 일본은 패전 후 형식적으로 처리를 하였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과거사 문제로 계속해서 삐꺽거릴 소재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많은 일본인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자기들도 역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도에 관한 문제도 사실 대부분 관심 밖이었는데, 일본 정부에서 "한국이 불법적으로 강제 점령하고 있다."라고 교육하면서 대부분은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미디어는 대부분 가치관을 따지기에 앞서 실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다수의 일반인은 정부의 인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19세기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뤘다. 서구 근대 문명의 기준으로 보면 아시아에서 발달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근대 문명적인 부분, 예를 들면 질서와 공중도덕을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업관계 등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과 공통 분모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시아 문화의 섬세한 특성이 더해져 일본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아시아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 한국인이 일본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아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반도적 특성을 따라 일본과는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해왔고 현재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대륙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이 섬나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을 갖추기 위해 교육과 노력을 통해 이를 성숙시킬 필요는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전근대적 특징, 즉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공직비리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가 편하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은 더 나은 문명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좋은 특성도 있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동력, 끈끈한 가족 간의 유대관계,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세계의 어느 사회이건 관계없이 용감하게 뚫고 들어가 개척해내는 도전력과 적극성이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안목과 이해만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더 나아가 자신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좋은 점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여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독도 문제는 일본 정부의 이기심과 역사의식 부재가 얽힌 문제로 한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확신하고 있듯이 일본 정부는 독도는 자국영토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상당한 지혜와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끈기 있는 대응과 능력이 필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태그:#일본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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