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배우 김여진

'무조건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배우 김여진 ⓒ 류석



"최진실씨는 모든 연예인들의 워너비(되고 싶은 대상)였어요. 그런 분이 자살했어요. 연기자로 최고였지만 마음이 아파 제대로 먹지도 못했죠. 우리가 뭔가 되면, 무언가 가지면 행복할 거다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풀어야 한다 생각하죠.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할까요? 두려워서죠. 찍힐까봐 밉보일까봐…."

12일 오후 7시 30분. 사단법인 마들연구소 명사초청 특강에 나선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삶을 바라보는 남다른 태도로 눈길을 끌었다.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유와 소신도 분명했다. 그에게 '개념찬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행복하다는 것은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있다는 것"

김여진씨에게 '행복'은 실마리이자 열쇳말이었다. '무조건 행복'이라는 강연 제목처럼 행복이란 단어는 김씨에겐 하나의 가치관이자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투쟁이란 걸 하기 위해선 항상 세상에 화가 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어요. 그때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느낌이었죠."

대학생 시절 철거촌에서 공부방 교사로 봉사하고 철거 현장에 머물며 전전긍긍했던 그 시절을 김씨는 "행복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서서히 잃었던 때"라고 표현했다. 또한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우연히 시작했던 연극배우 생활도 행복감을 주었지만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 점차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대중들 반응에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 모두가 자기 중심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어떤 아이들은 정말 하루를 1달러로 살아가는데 전 사람들이 못 알아봐 준다는 사실에 아파하고 있었죠. 남의 아픔과 내 아픔의 간극을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그때 스스로가 참 형편없어 보이더라고요."

긴급구호활동을 하러 간 인도에서 김씨는 "타인과 함께 나누는 행복이 더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직접 4일간 굶으면서 '아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한 그에게 더 이상 남들이 자신을 못 알아 봐준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설 수 없었다.

"행복해 보이는 삶을 원하세요? 행복한 삶을 원하세요? 행복하다는 것은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해요. 재미있으면서도 허탈하지 않은 것. 세상에 잘 쓰이고 있는 것. 내가 아닌 너, 그리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일을 했을 때 좋아지는 것이죠."

마냥 분노에 차 있지도 않고 동시에 자신만을 위한 기쁨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 김씨는 이날 특강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다.  

노회찬 전 대표 "<100분 토론>이 훌륭한 토론자를 배출한 것 같다"

"KBS, MBC 토론프로그램 최다 출연자로서 저보다 토론 잘하는 사람 딱 한 명 봤는데 그게 김여진씨입니다. 연극 작품을 700번 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 알고 있는 거죠. 김여진 선생의 발언은 문제의식과 신념, 실천경험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본인만 똑똑하면 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감동받아야 의미있는 건데 <100 토론>이 훌륭한 토론자를 배출한 것 같습니다."

현재 마들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MBC <100분토론>에 패널로 출연한 김여진씨를 치켜세우자 청중들의 박수소리가 나왔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여진씨. 청중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직후였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여진씨. 청중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직후였다. ⓒ 류석


약 250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이날 강연에서는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홍대 사태를 비롯해 지금까지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김여진씨를 걱정하는 질문에서부터 방송 연예계 문제점을 묻는 질문, 주변 연예인과 친분 정도를 묻는 것까지 다양했다.

'사회적 발언을 하고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시기하는 사람도 있고 찍혀서 일 못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에 김씨는 "솔직히 유명해지긴 한 것 같다"고 시원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대로 사는 게 즐거워 보여야 동료들도 자기검열 안 하고 서로 터놓고 말할 수 있다"며 "그렇기에 앞으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고 답했다. 청중들이 박수로 화답하자 그는 "힘들면 좀 쉬었다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노회찬 전 대표가 "김제동씨는 프로그램 하차 후에 더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하자 김씨는 "김제동씨의 토크콘서트처럼 활로가 막혔을 때 다른 길로 가면 된다"며 "오히려 그럴 때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면서 "20대들이 무한 경쟁 체제에서 전전긍긍하느니 새로운 분야에서 1인자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사가 연사인 만큼 청중들의 관심도 연예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한 청중이 "대중문화계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이 침묵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하자 김씨는 '김태희 비유'를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입장이 있어요. 그 안에서 누구나 최선을 다해 사는 거죠. 그 사람의 수준, 성품, 취향 그게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고 있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세상은 옳고 그름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요. 힘에 따라 움직이죠. 그리고 그 힘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직접 비교해볼까요? 제가 왜 김태희씨보다 인기가 없을까요? 여러분들이 김태희씨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죠. 이명박 대통령은 누가 뽑았나요? 우리가 뽑았잖아요. 뭐가 어찌됐든 우리 마음 안에 돈에 애착하는 가치가 다른 것보다 컸기 때문이에요. 그게 힘이에요. 내 안에 어떤 마음이 큰 가의 문제죠. 욕할 필요 없어요. '나는 이게 맞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죠.

배우는 공인이 아니예요. 세금 먹고 살지 않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거 얼마나 실천하나요? 같이 하고 싶으면 같이 하고 싶은 방법 생각하면 되요. 강요는 민주적인 게 아닙니다."

'공감 김여진', 트위터에 빠진 이들

이날 강연을 들은 청중들은 강연이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졌음에도 대부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인터넷 공지를 통해 강연장을 찾았다는 김경미씨는 "개념찬 김여진씨가 아니라 공감을 만드는 김여진씨라고 생각한다"며 "단번에 인기인으로 오른 게 아니라 인생을 겪으며 하나하나 내공을 쌓은 분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여진씨 강연회를 찾은 시민들. 이날 약 250여 명이 모였다.

김여진씨 강연회를 찾은 시민들. 이날 약 250여 명이 모였다. ⓒ 이선필


특히 강연장 한쪽에선 김씨의 말을 그대로 트위터에 생중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간간히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1월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해고 사태 당시 김씨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던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은 휴대폰을 통해 강연 내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   

'외부세력'들의 모금운동을 처음 제안했다고 밝힌 이민우씨는 "강연이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는데 트위터를 통해 내용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를 비롯한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은 홍대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트위터 등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해고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우당탕탕 바자회'와 '조선일보 광고게제 운동' 등이 바로 이들의 작품이었다.

김씨도 트위터를 활발히 사용하는 걸로 유명하다. 홍익대 사태의 현장 분위기를 접했던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또한 사태 해결 후에도 줄곧 사회문제에 '소신발언'을 해왔다. 최근엔 이른바 맷값 폭행으로 재판을 받은 최철원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사법부가 '여론재판'의 권위를 인정했다"며 비판했다.

한편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마들연구소의 명사특강은 이번 김씨의 강연으로 32번째를 맞이했다. 박규님 마들연구소 운영실장은 "(이런 강연들은) 지역의 문화수준을 높이고자 기획한 것이다"라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노원이라는 지역이 좀 외지지 않은가?"라고 되묻던 박 실장은 "강연을 진행하면 할수록 지역주민들은 (연구소의 행사와 기획에) 상당히 우호적이고 믿을 만하다고 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여진 류석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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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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