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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래들이 실려있습니다
▲ 실버노래교실 아름다운 노래들이 실려있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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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다가 옆이 갑자기 잠잠해져서 돌아다 봤더니 친구의 두 눈이 젖어있습니다. 또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생각난 모양입니다. 한 열 곡쯤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부른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어떤 노래가 친구를 울렸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문득 친구가 작년 가을에 노래방기기가 설치된 관광버스에서 줄줄 눈물을 흘리며 울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누군가가 앞 쪽에 높이 걸린 화면을 보면서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을 불렀는데 친구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전에 '보고싶은 얼굴'도 연달아 세 번이나 불렀습니다.  

이상하게도 노래방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는 거의 모두 애조가 어려있습니다. 그래선지 흘러간 노래가 나오면 그만 가슴이 뭉클하면서 이유없이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날 '보고싶은 얼굴' 역시 그랬습니다. 나도 가슴 깊숙이에 묻어 둔 그리움이 살아나면서 마냥 쓸쓸해졌던 것입니다.

노래방기기도 아니고 애조가 하나도 스며있지 않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더구나 실버노래교실 회원들이 모두 같이 즐거운 얼굴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친구의 두 눈이 촉촉해진 것을 보니까 듣기만 해도 그리움이 묻어나는 가사가 가슴을 툭 쳤던 것 같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낸 친구가 왈칼 눈물을 쏟은 이유

친구를 울렸습니다
▲ 보고싶은 얼굴 친구를 울렸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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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시간은 조금 시끄럽습니다. 회원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절미 한 입을 베어먹고 율무차를 마시고 나서 친구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친구도 따듯한 율무차를 마십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입가에 웃음을 물면서 말했습니다.

"또 그 모습이 생각나지 뭐야." 
"짐작했다구."

친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쯤에 남편과 크게 싸웠던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의논 한마디도 없이 거의 만기가 다 되어가는 적금을 깨서 시동생에게 몽땅 빌려준 것입니다. 그 적금은 친구가 아들이 다달이 보내주는 용돈에다 생활비를 이렇게 저렇게 아낀 돈을 더 보태서 붓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덜컥 깨는 바람에 약정된 이자도 못 받고 중도해지 이율만을 받았습니다.

친구의 시동생은 구멍가게나 다름이 없는 조그마한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데 전세 계약기간이 다가오자 건물 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올려주기로 약속한 날자가 두 번이나 지나서 쫓겨나게 되자 남편이 눈 딱 감고 적금을 깨서 준 것입니다.

남편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했지만 친구는 "왜 말도 없이 몰래 깼냐, 날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하면서 펄펄 뛰다가, 그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당장 나가! 나가라구, 꼴도 보기 싫어!"라고 소리쳤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밀고 나가더니 밤이 되어 이슥해도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갈 데가 없는데, 이미 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그렇다고 아들 집으로도 시동생 집으로도 갈 수가 없을 텐데 하다가 친구는 직감대로 깜깜한 놀이터로 가보았습니다. 거기 남편이 있었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앉아서 뻑뻑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어찌나 외롭고 초라해 보이던지 순간적으로 달려가서 손을 잡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분통이 울컥 치미는 바람에 친구는 그대로 돌아섰습니다. 대신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렸는데, 자정 무렵에야 들어왔다고 합니다.

"담배 피우던 뒷모습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구"

어머니가 좋아하셨습니다
▲ 애조가 어렸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셨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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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담배를 피우던 구부정한 뒷 모습만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구.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냥 용서해 줄 걸. 용서가 뭐 별 건가, 분해도 그냥 '됐네요'하면 되는 것을. 그 말을 왜 못했나 몰라."

친구는 창을 바라봅니다. 거기 바라보이는 푸른 하늘에서 남편이 내려다 보고 있기라도 하는 듯이. 나도 잠시 유난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말을 돌렸습니다.

"시동생 가게는 좀 나아졌어?"
"그저 그래.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지나선가 그래두 그 돈을 마련해서 내놓더라고. 안 받았지. 남편을 용서해 주지도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그리고 형편이 조금 나은 내가 도와주는 게 도리이기도 하고."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친구가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그 아픔을 어느 정도 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커피를 다 마신 피아노 반주자가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흘러간 노래인,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날과 달리 멜로디가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흑백사진 같은 장면 하나가 눈 앞을 지나갑니다.

그 옛날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인 것입니다. 저녁 밥상에 놓을 사골곰탕을 데우려고, 무쇠 가마솥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상자 쪼가리를 깔고 앉은 어머니가 이마에 흘러내린, 당시 한창 유행이던 뽀글 퍼머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 조그맣게 부르던 바로 그 노래입니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어린 마음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모습이 나를 울리고 있습니다.

가슴속 울음을 감추려고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가 돌아보았더니 친구 역시 노래책을 보면서 노래에 푹 빠져 목청껏 부르고 있습니다.


태그:#친구 , #아픈 마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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