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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름달 빵이다!

"원영이 안 우나?"
"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참지 말고."
"눈물이 안 나는데요."
"그래, 장하다."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그렇게 반쯤 머리를 깎았다.
그런데 갑자기 은사 스님이 반쯤 깎던 삭발을 멈추셨다.
"인제 갈 테면 가 봐라.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
"…"
주위 모든 분들이 웃어버렸다. 얼떨결에 나도 따라 웃었다.
저자인 원영 스님의 첫 삭발담이다.

"행자교육원에서 계를 받았다. 교육기간 중에는 묵언, 오후불식, 참회, 3보1배 등 일과가 빼곡했다. 어느 날에는 일과를 마치고 허기에 지쳐 숙소로 돌아가는데,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보름달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보름달 빵이다~'하며 신음하듯 내뱉은 것이다. 묵언 중인 것을 깜박했다. 주위에선 킥킥대는 소리가 맑은 허공을 울렸다. 그날 나는 묵언을 깨뜨린 죄로 참회절을 하느라 다른 행자님들보다 훨씬 뒤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수계의 기억은 이렇듯 늘 아찔하다."

수계란 계를 받는 일이다. 계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일종의 법이다. 맨 처음 사미계를 받고 다시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를 수지한다. 출가자들의 경우 다음단계로는 보살계가 있다. 재가신도들은 살생하지 말라 등의 5계를 받는다. 출가 여부 등의 신분에 따라 받아 지녀야할 계법도 달라지는 것이다.

"원영 스님은 계를 얼마나 받으셨나요?"
"어디보자. 내 팔에는 염비자국이 몇 개나 되나, 오른팔에 네 개, 왼팔에 한 개 있다. 사미니계, 식차마나니계, 비구니계, 보살계, 그리고 또 하나의 보살계 흔적이다. 5계도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향으로 살짝 찍어서 수계 자국이 자취를 감추고 만 모양이다, 흔적도 없다."

불교도들이 지켜야할 계율은?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표지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표지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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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에는 계율이 있다. 불교도에게는 계율이 있다. 계율은 계와 율의 합성어이다. 계율이라는 말은 본래 인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이 말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에야 만들어진 말이다. 하지만 계(戒)와 율(律)은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계는 개인의 문제고 율은 승가공동체의 문제다.

승가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출가자들이 있다. 이들이 공동체 성원으로서 통일된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율'이고,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이 '율장'이다. 이렇듯 율이라는 것은 승가라고 하는 집단 속에서 적용되는 법률이다. 율을 어기는 자에게는 승가의 이름으로 벌을 준다.

계는 본래 '좋은 습관'이라는 의미다. 내용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 인도 사회에 널리 권해지던 도덕률이다. 기본적으로는 살(殺)‧도(盜)‧음(淫)‧망(妄)‧주(酒)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5계의 내용들이다. 불교에서는 5계를 재가신도를 위한 계로서 인식하지만,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자이나교와 같이 출가‧재가자 공통의 도덕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런 계는 승가라고 하는 특별한 종교집단과는 별 상관이 없다. 수행자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생활 도덕일 뿐이다. 계를 위반하더라도 벌을 내릴 수는 없다. 순전히 내면적 책임과 참회만이 있을 뿐이다.

'계율학의 권위' 원영 스님, 스님 생활과 계율에 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인 스님들의 생활을 궁금해 한다. 때로는 세속의 눈으로, 때로는 종교적 경건함으로 호기심을 갖는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출가했고, 어떻게 수행했으며, 어떻게 먹고 입고 자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다들 묻고 싶어한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일본 교토의 하나조노대학에서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불학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연구 중인 우리 불교계 '계율학'의 권위, 원영 스님이 독자들의 의문에 답했다.

계율이 주는 엄격함 때문이리라. 한국 불교에서는 계율을 언급하는 것이 유독 꺼려져 왔다. 그런 까닭에 계율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조차 매우 적었고, 간화선 위주의 선불교 전통 또한 여기에 한 몫 더했다. 스님은 책을 '출가', '수행', '생활', '사찰', '행사', '계율'의 총 여섯 분야로 나눈 다음, 스님의 일상과 수행을 더해 승려 개인과 승가 공동체 속의 계율을 버무려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의 생활에 기반한 계율의 연원을 탐색함과 동시에 이 시대의 불교와 불교도는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지를 고뇌했다. 

우리 사회에서 탁발이 사라진 이유는?

2600여 년 전 부처님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마을까지 걸어간 부처님과 제자들은 공양물을 탁발한다. 그렇게 탁발한 음식은 정오가 되기 전 다 먹어야 했다. 시간이 넘어서면 애써 탁발을 했어도 먹을 수 없도록 율장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해는 저물고 천둥 치는 험한 날씨에 한 비구가 임신한 장자부인의 집에 걸식을 하러 갔다. 부인은 비에 젖은 비구를 보고 놀라 낙태를 하게 됐다. 이때의 교훈이 율로 자리 잡았다.

탁발이라는 것은 청빈을 수단으로 삼는 수행자의 생활수단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탁발하는 스님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은 1964년에 탁발을 폐지시켰다. 불교의 전통으로야 기본적인 생활방식에 해당되겠지만, 우리 정서상 구걸로 비춰져 승려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율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해야 하는 한 증거다.

부처님 당시에 이미 이런 과정을 통해 변천된 율도 있다. 당시 인도 스님들이 입었던 가사는 떨어진 천을 주워와 손수 기워 만든 옷이다. 처음에는 시체를 싸던 옷을 주워서 만들거나, 버려진 옷을 주워 괴색으로 물들여 입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때 나온 이름이 '분소의'(糞掃衣)다.

율장에 의하면, 두개골로 된 발우를 들고 다 떨어진 분소의를 입은 비구가 마을에 걸식하러 갔다. 이번에도 포태한 여인을 놀라게 했다. 이웃들이 비구를 비난하게 됐다. 사실을 듣게 된 부처님은 해골로 만든 발우와 분소의로 온몸을 감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후 제자들은 의복을 깨끗하게 빨아서 정갈하게 갖추어 입게 되었고, 신도가 새 천을 공양하면 받아 입는 것도 허용했다. 불교의 계율사다.

스님들은 돈도 교통카드도 신용카드도 써서는 안 된다?

원영 스님
 원영 스님

무소유는 이 시대 모든 스님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어야 할 계율일까. 아니면 탁발의 예에서 보듯 시대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는 계율일까.

고대 인도의 스님들은 금전을 지니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혹여 신도가 스님에게 보시를 했다 해도 그것을 직접 받을 수 없도록 했다. 몰래 받았을 때에는 승가 구성원 전원이 모인 앞에서 참회하고 가지고 있던 금전을 내놓아야만 했다. 이것이 본래 율장이다. 나아가 율장에서는 '취하다, 가지고 오라, 가지고 가라, 판다, 산다' 등의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규정했다. 출가자들의 청빈함을 강조하기 위한 여러 규정들이다.

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까지 표현했듯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인도에서는 부처님이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고 내세를 설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번제가 의미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도시화와 빈번했던 전쟁은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율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 또한 이 시대 깨달음의 중요한 테마였다. 대체 무엇이 이런 획기적 변화를 가능케 했을까. 역시나 급작스런 사회경제적 변화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처님 멸한 직후나 먼 이후나 금전문제, 나아가 경제문제는 승가 내의 커다란 의견대립을 불러일으켰던 영원한 숙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출가자에게 돈도 사용하지 말고, 신용카드도, 교통카드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타당할까. 천지는 개벽 수준인데도 율장은 부처님 생존 그대로다. 율의 제‧개정에 대한 권한은 부처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스님들이 많아, 2600여 년을 거치는 동안에도 율장은 변함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모든 승려들은 부처님의 계율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과 율장의 불일치를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스님의 해법이다.

"진정 시대에 맞는 변화와 압축의 힘은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본래의 의도를 더욱 또렷하게 살려주는 법이다. 그러니 과거의 것만을 강조하고, 그것만을 지팡이로 삼아 의지할 일은 아니다. 현대에는 지금 시대에 맞는 규율과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지금 현재 드러나 있는 현상의 난제들을 깨끗이 정리해 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원영 스님의 연구와 실천은 승가 내부의 현재와 전통에 닿아 있었다. 이에 반해 스님의 첫 번째 대중 저술인 이 책은 자신의 연구와 생활을 시민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첫 작업이다.

여러 숙제는 남아 있어 보인다. 꿈쩍도 않는 2600여 년 전 부처님 시대의 율장을 어떻게 현대화, 현재화 할 것인지,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궁금하다. 스님의 말씀대로 부처님이라는 제정·개정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어떤 권위로 수많은 계율을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대중에 대한 설득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한편 미래의 우리내 생활을 어떻게 예견하고 또한 불교계의 모습을 어떻게 미리 살펴, 앞으로 수백 년을 담보할 미래의 율장을 만들어낼지도 새로운 호기심이다.

5계의 뿌리가 그러했듯, 서양 기독교의 자연법 논리가 한국 법과 도덕의 뿌리로 연결되는 현실 속에서 부처님 시절의 계율은 과연 우리 사회 공동체와 도덕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으며,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불교의 율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불교의 율장 속에서 우리는 어떤 현대화된 생활윤리, 도덕윤리를 채집해 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불교의 율장과 현실의 법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을지도 궁금하다. 물론 실천과 함께 학제 간 연구도 필요할 듯싶기도 하다. 다종교시대 한국 사회의 여러 종교 간에 계율에 대한 공동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또 현실법과 종교법 간의 학제 간 연구 또한 시급한 과제로 다가온다.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 우리 불교는 대승불교다. 보살행이 목표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해탈을 꿈꾸는 것이 한국 불교의 전통적 목표다. 원영 스님도 보살계를 받았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구족계(사미계와 사미니계)를 받은 다음 보살계를 받는다. 보살계는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 보살계의 실천은 자신의 인격적 완성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눈을 돌려 그들의 완성까지 목표로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선한 행위를 실천하도록 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돕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나는 계율을 연구하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실천을 전제로 하는 학문에 행(行)이 빠져 있음을 자각한 까닭이다. 보살의 정신으로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이 사회, 내 삶을 구성하는 주의 환경과 역사에 대해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 그저 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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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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