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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베이징 항공 노선 개설 협상에 <중앙일보>가 '마무리(?)'를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중앙>은 "다음 달부터 김포-베이징 간 하늘길이 열린다"며 국토해양부 고위 관계자 말을 인용하여 "중국 민간항공총국과 김포-베이징 간 셔틀(정기 왕복 항공기) 운항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중앙> 보도대로라면 25개월여 만에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같은 날 오후 "중국 항공당국과 계속 협의 중이나,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럼 <중앙>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14일 국토해양부 A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100% 타결된 상태는 아니지만, 마지막 조율 단계에 이른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금 앞서갔을 뿐이지,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국토해양부 B관계자의 반응은 또 달랐다. 같은 날 전화통화에서 그는 "해명자료 그대로"라며 "아직 협상 중이니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국토해양부 내에서도 <중앙> 보도를 놓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 공항 '슬롯' 부족하니 돌려쓰자?

3월 9일자 중앙일보 PDF
 3월 9일자 중앙일보 PDF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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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교하면 중국 정부의 그것은 명확하다. '초지일관', 중국 당국은 현재 운행되고 있는 인천-베이징 노선 일부를 빼서 김포-베이징 노선에 전용해 개설하자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앞서 <중앙> 보도도 중국의 이런 요구를 국토해양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서울-베이징-도쿄를 잇는 셔틀 운행은 이명박 정부가 중국과 일본에 제안하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2009년 1월 한중 항공회담을 통해 김포-베이징 노선 개설 원칙에 합의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던 협상은 중국 측이 인천-베이징 노선 일부를 전용하자는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김포-베이징 노선을 '새로 만들어 쓰자'는 한국 정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베이징 공항의 '슬롯'(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기 이착륙 시간도 꽉 차있고 남는 활주로도 없으니, 인천-베이징 노선 일부를 '돌려쓰자'는, '돌려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김포-베이징 노선 신설인가, 인천-베이징 노선 감축인가

2010년 10월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에도 '김포-베이징 항공셔틀 조속 개설'은 한중간 정상 회의 의제로 올랐다
 2010년 10월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에도 '김포-베이징 항공셔틀 조속 개설'은 한중간 정상 회의 의제로 올랐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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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중국 측 주장은 2010년 베이징 공항 신규 취항 사례를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메리칸 항공, 델타 항공, 트랜스아에로 항공, 세부퍼시픽 에어 등 4개 항공사에게 모두 주18회 슬롯을 내줬었기 때문이다. 앞서 2009년 10월에는 베이징-하네다 노선(일 4회)도 개설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협상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김포-베이징 신규 노선 개설보다는, 인천-베이징 노선 감축이란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인천 공항 환승 승객을 중국 항공사와 베이징 공항으로 끌어들이려는 포석이란 설명이다.

한국공항공사의 2009년 인천-베이징 수송 실적을 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수송 승객은 연 60만4945명으로 이중 환승 승객이 12만1554명으로 20%에 이른다. 반면 국제항공·동방항공·남방항공 등 중국 3개 항공사 환승 승객은 4691명에 불과하다.

중국 측 요구대로 인천-베이징 노선을 전용한다면,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는 환승객 감소는 불가피하다. 그 감소분만큼의 혜택은 베이징 공항과 중국 항공사들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공항공사 자료에 따르면 환승 승객 1명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108만 원. 환승 승객이 1만 명만 유실된다고 해도 100억 원이 넘는 외환 손실이 생기는 셈이다.

왜 25개월 동안이나 잘 버티던 국토해양부가...

2008년 3월 국토해양부 청와대 업무보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김포공항 활용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2008년 3월 국토해양부 청와대 업무보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김포공항 활용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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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참여정부 시절 김포공항 셔틀이 노선 신설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3년 개설된 '김포-하네다' 노선이나 2007년 '김포-홍차오' 노선 모두 그러했다. 특히 '김포-하네다' 개설 당시 정부는 인천-나리타 운항 편수를 감축하는 항공사에게는 김포 셔틀을 배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허브공항으로서 인천공항 입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정권 들어서도 국토해양부가 중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일단 주 7회만이라도 신설하자든가, 부산-베이징 또는 제주-베이징 노선을 전용하자거나 등 다양한 협상안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든 인천공항 노선만은 지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중앙> 보도를 보면, 이런 흐름에 최근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보도대로라면 인천-베이징 노선이란 '떡'을 내준 대신 무엇을 얻어냈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우리가 얻은 것은 "중국의 다른 공항에서 김포공항에 추가로 취항하지 않는다"는 단서 정도다. 뚜렷한 이유 없이 협상 타결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왜 25개월 동안이나 잘 버티던 국토해양부가 이렇게 '안절부절'하게 됐을까.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로 중국 교민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재북경한인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 관심이 높은 상태가 아니다"고 전했고, 재중국한인회 관계자 역시 "솔직히 교민들의 숙원사업은 아니다"고 말했다.

"류우익 주중대사 많은 관심, 주재관에게 협상 독려"

류우익 주중대사는 이명박 정권 초기 청와대 대통령 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류우익 주중대사는 이명박 정권 초기 청와대 대통령 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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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치권으로 눈을 돌릴 차례다. 일단 작년 국토해양부 국감이 눈에 띈다. 당시 박기춘 민주당 의원은 "김포-베이징 항공노선 협상이 진척 없이 표류 중"이라며 "금년 내 조속한 개설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으레 그렇듯, '받아쓰기 보도' 또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입장 또한 국토해양부로서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기 충분한 요소로 보인다. 대사관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대사님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직접 (협상을)할 수는 없으니까, (국토해양부 소속)주재관에게 협상을 많이 독려하고 그러신다"고 전했다.

현재 주중대사는 류우익 전 청와대 대통령 실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스승'이자 대운하 공약을 창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핵심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다. 또 류 대사는 최근 '상하이 스캔들'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비 직업외교관 출신의 이른바 '보은인사'로도 지목받고 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주창해 온 것이 '한중일 삼각셔틀'이다. 또 이 대통령은 2009년 10월과 2010년 5월에 각각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김포-베이징 셔틀 '조속 개설'을 두 차례나 의제에 올렸었다. 대통령 측근들에게는 이른바 '관리 공약' 또는 '보은 공약'이 되는 셈이다.

"국토해양부가 정치권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

1957년 불평등하게 맺은 한미 항공협정이 항공자유화 협정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1998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였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1998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PDF
 1957년 불평등하게 맺은 한미 항공협정이 항공자유화 협정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1998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였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1998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PDF
ⓒ 네이버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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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류 대사가 아무리 '정책적'으로 협상을 독려한다 해도, 국토해양부로서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갑자기 안 하려고 하던 것을 하려는 건, 여러 고려 요소가 들어갔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협상 과정의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이런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중국으로서는 느긋할 수밖에 없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전 한국항공경영학회 회장)는 "국토해양부가 정치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외교적으로 먼저 결정을 해 놓으면 실무 협상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우려했다.

또한 허 교수는 "국익 차원에서 우리 항공 산업의 총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면서 "현재 중국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게 없는 만큼, 시간을 끌더라도 김포-베이징 신규 노선을 개설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번 체결하면 외교관계를 단절하기 전까지 바꾸기 어려운 것이 항공협정이다. 불평등 협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한미 항공협정(1957)이 항공자유화 협정으로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1년이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에 또 다시 값을 치를 필요는 없는 일이다.


태그:#김포공항, #인천공항, #항공협약, #국토해양부, #류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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