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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묘년 해맞이를 모악산 산사에서 맞이하고 난 후, 서둘러 답사를 떠났다. 그러나 추운데 며칠을 보냈더니 몸살, 감기 기운이 겹쳐 이틀이나 고열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신년 새해에 첫 번째로 떠난 답사 길이다. 무엇인가 하나 정도는 보고가야 할 것만 같아 몸을 추스르고 길을 나섰다.

 

하남시 교산동 55-1에 소재한 선법사 경내에, '태평2년명 마애약사불 좌상'을 찾아 하남으로 향했다. 날씨도 쌀쌀하고 공열로 인해 몸은 움직이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길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기만 하다. 그래도 숨을 몰아쉬며 선법사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니 경내 좌측에 삼각형으로 솟은 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바위 면에 정교하게 조각한 마애약사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

 

고려 경종 2년인 977년에 조성한 마애불

 

약사불은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부처이다. 이 약사불을 형상화한 마애불은 바위 남쪽 면에 전체 높이 93㎝ 정도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글을 통해, 이 마애약사불 좌상을 조성한 시기가, 고려 경종 2년인 977년임을 알 수가 있다. 세모난 바위에 그 윗부분에 돌을 쪼듯이 파내면서 양각을 한 형태로 조성이 되었다.

 

높이가 1m도 채 안 되는 크지 않은 이 마애약사불 좌상은,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비례가 뛰어나다. 신체는 비교적 장대하고 얼굴은 부드러운 편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법의를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 주름의 표현은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뛰어난 조형기법에 빠져들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의 3중 원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인 화염문이 둘러져 있다. 대좌의 하대석에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의 모양이,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다. 상대석은 다섯 잎의 활짝 핀 앙련이 마애여래불의 무릎을 감싸듯 조각이 되어 있다.

 

마애여래 좌상의 우측에는 "태평 2년(고려 경종 2년, 977년) 7월 29일 옛 석불을 중수하며, 황제의 만세를 기원한다.(太平 二年 丁丑 七月 二十九日 古石佛在如賜之重修爲今上皇帝萬歲願)"이라고 음각을 해 놓았다. 그러나 이 마애약사불 좌상에는 새로 고친 부분이 없는 듯하다. 그런 점으로 보면 불감이나 가구 등을 새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을 쪼아낸 듯한 조형기법

 

이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불 좌상은 현재 보물 제981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크지 않은 이 마애불은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마애약사불을 조성한 모습을 보면 특이하다. 아주 정교한 쇠꼬챙이 같은 것으로 무수히 돌을 찍어내어 안으로 파들어 가면서, 좌상의 형태를 돋을새김한 것 같이 보인다. 마애약사불이 크지가 않아, 이렇게 쇠꼬챙이 같은 것으로 쪼아내 듯 조각을 한 것일까? 전체적으로 보아도 무수하게 쪼아낸 듯한 형태를 볼 수가 있다.   

 

교산동 마애약사불 좌상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다. 더욱 이 마애불 좌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마애불의 옆에는 조금 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면도 칼로 잘라낸 듯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다. 이곳에도 또 하나의 마애불을 조성하기 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교산동 마애약사불 좌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추위에 떨다가 생긴 몸살, 감기라도 얼른 나아 훌훌 털고 답사를 할 수 있기를 서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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