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헌법재판소는 재보궐선거 다음 날인 2009년 10월 29일 민주당 등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 등(2009헌라8,9,10)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국회의 불법적 절차에 의한 의결은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고, 일사부재의원칙에 위배된다고 결정했습니다. 국회의장이 국회의 자율권에 기초하여 재논의하고 불법의 하자를 치유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묵살한 채 방송법시행령 등 후속조치를 강행했고,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은 헌재의 결정을 무시했습니다. 이에 2009년 12월 18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야당의원 89명은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국회 재논의를 하지 않은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권한쟁의심판(2009헌라12)을 청구하였습니다.

2009년 10월 29일. 언론악법 판결 당시 모습
▲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2009년 10월 29일. 언론악법 판결 당시 모습
ⓒ 미디어오늘

관련사진보기


헌재는 청구 7개월 만인 지난 7월 8일 공개변론을 진행했으나, 부작위권한쟁의심판 청구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선고 기일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헌재가 이 판결을 미루게 되면 위법 논란 속에 개정된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은 무효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방송통신위원회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규제·진흥의 정책·집행을 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개정법에 따라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사업자들은 물론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에 미디어 공공성 확대와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실천해온 미디어행동은 헌재에 다음과 같은 공개질의를 합니다.

헌재의 바른 판결을 촉구하며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배를 진행했다.
▲ 헌재앞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만배 헌재의 바른 판결을 촉구하며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배를 진행했다.
ⓒ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관련사진보기


[1]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을 결정하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기속의 의무를 갖습니다. 헌재의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결정은 헌법의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는만큼 이번 부작위권한쟁의심판의 피청구인인 국회의장 역시 결정 이행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헌재가 확인 결정을 하든 취소 결정을 하든 국회의장은 자신의 행위의 합헌.합법성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고, 위헌.위법성이 확인된 행위를 반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헌재의 결정에 따라 위헌.위법을 제거하고 합헌.합법 상태를 회복할 의무 및 야당의원 89명이 침해받은 권한을 회복시킬 작위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헌재는 작년 12월 18일 청구 이후 7개월이 경과한 지난 7월 8일 공개변론을 진행한 이후 선고 기일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헌재는 야당의원 89명의 부작위권한쟁의심판 청구 선고 기일을 확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헌재가 작년 10월 29일 민주당 등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 결정에서 방송법, 신문법 등 각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청구를 기각한 것은 헌재가 직접 무효로 하는 것이 적정하지 않아 국회의장이 직접 가결선포행위를 취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헌재는 위 결정에서 국회의장의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지 않은 것일 뿐 유효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국회의장은 국회 재논의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헌재는 작년 10월29일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국회의장의 부작위를 감안하여 이에 대한 89명 의원의 권한쟁의심판을 조속히 결정함으로써 실추된 국민의 신뢰와 최고 법률기관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3]
헌재가 부작위권한쟁의심판 결정을 미루는 사이, 지난 1여 년간 방송통신위원회는 시행령 의결, 미디어다양성위원회 구성,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선정을 위한 기본계획안' 확정, 공청회 진행 등 종편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방통위가 종편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불법.위법 논란으로부턴 단 한 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모법이 불법이면 불법에 뿌리를 둔 시행령도 불법이고, 시행령이 불법이면 관련 정책 집행도 불법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더군다나 방통위는 11월 중순까지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세부심사기준을 보고받고 공청회 및 의결 일정을 잡아놓은 상황입니다. 세부심사기준을 결정하면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예비사업자의 연내 선정이 이루어지게 되며, 관련된 종편 정책이 완료되면 선정된 종편사업자들은 방송 활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방통위가 세부심사기준에 대한 공청회와 의결을 시도하는 것 역시 불법 논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후 무효 논란과 함께 미디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무효 논란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헌재가 시급히 부작위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을 내리는 것 뿐이며,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합헌.합법적인 바탕 위에서 종편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헌재는 이같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방통위가 세부심사기준을 의결하기 전에 기일을 정해 부작위권한쟁의심판을 결정하실 의사는 없습니까?

[4]

오늘날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기능과 역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졌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구 등에서도 공히 나타나는 양상입니다. 이와 과련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웬디 브라운은 최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정치적 합리성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입헌주의, 법 앞의 평등, 정치적․시민적 자유, 정치적 자율성과 보편주의적 포함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비용·수익 비율, 능률, 수익성, 효율성 같은 시장의 기준으로 대체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전면적으로 공격했다.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에 의해서 각종 권리와 정보 접근뿐만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 책임성, 절차주의 같은 여타의 입헌적 보호 장치마저 쉽게 회피되거나 무시된다.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은 입헌 국가를 비롯해 모든 인간과 제도를 회사 모델에 따라 가공하며 정치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기업가적 원리로 대체한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체를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린 뒤 제 입맛에 맞게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탈취했다. 결국 한때 규제받지 않는 자본에 의한 우파적 협치(governance)를 조롱조로 지칭하는 용어였던 '시장민주주의'가 이제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인민과 무관해져버린 한 형태를 서술하는 평범한 서술어가 되어버렸다. 다양한 정치투쟁과 쟁점은 점점 더 법원으로 넘어간다. 거기서 법 전문가들은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변호사 말고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효율적이면서도 능숙하게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간단히 말해서 법원들은 제한을 부과하는 기능에서 입법적 기능으로, 즉 민주주의적 정치의 고전적 과제를 실질적으로 찬탈하는 쪽으로 넘어갔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 오늘날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다. 난장. 2009)

이같은 지적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지는 물론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 다양한 계층 간 정치투쟁의 쟁점이 점점 더 법원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법원은 제한을 부과하는 기능에서 입법적 기능까지 감당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입법부가 미디어법을 국회법에 따라 민주주적으로 개정하지 못하고, 헌재에 결정을 맡긴 것도 이같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같은 경향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이 가치 논란을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재와 법원이 부과되는 기능과 역할을 합헌.합법적으로 감당함으로써 국민과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신뢰를 얻으면 되는 일입니다.

작년 10월 29일 결정을 돌아봅시다. 국회의장과 국회가 자율권의 한계를 일탈하여 위법․위헌상태가 초래되었고, 이를 시정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 최종적 헌법수호기관인 헌재에게 판단을 맡겼는데 이를 다시 국회의장에게 돌리는 것은 헌재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아울러 미디어행동은 "이 사이 방통위는 시행령을 의결했고, 지난 1년동안 미디어다양성위원회 구성과 종편사업자 선정 일정을 발표하는 등 동아.중앙.조선의 방송진출을 기정사실화 해놓았다. 이름있다는 학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는듯 종편 선정기준과 방식을 둘러싼 발언들을 쏟아내놓고 있다. 헌재는 시민으로 하여금 불법과 편법, 무력이 이성과 상식, 합리보다 더 위력이 있다는 처세를 경험케 했고, 오늘날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에서 이기면 불법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말았다"는 논평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헌재는 작년 10월 29일 결정으로 손상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헌재에게 부여된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실 생각은 없습니까?

[5]

지난 7월 8일 공개변론에서 두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헌재의 권한침해 결정의 집행 방법에 관해서 국회법이나 국회 규칙 어디에도 그런 규정 없지요? 결국에는 없다면 국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권한 침해 있는 결정에 대해 국회의장이 청구인처럼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고 국회가 자율적으로 개선 못하고 있는 마당에 이 사건에서 또 국회의장의 부작위가 청구인 권한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받는다고 해서 청구인에게 특별히 무슨 실익이 있나요?" (A 재판관)

"이 사건 법률적 쟁점이 많고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연구가 많지 않고 부실하다. 저희들이 몇 달씩 고생, 연구하고 고심하고 해서 결론을 찾아 나가야 하는 대단히 선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재입법을 하면 그 다음에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이 법안 가결선포행위 취소하는 등 몇 가지 상정할 수는 있는데 그런다고 해서 종전에 피청구인이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 침해했던 하자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부터 시작해서 좀. 이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B 재판관)

A 재판관은 "국회의장의 부작위가 청구인 권한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받는다고 해서 청구인에게 특별히 무슨 실익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B 재판관은 "국회의장이 법안 가결선포행위 취소하는 등 몇 가지 상정할 수는 있는데 그런다고 해서 종전에 피청구인이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 침해했던 하자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청구인들은 89명의 국회의원이지만, 미디어법 위헌.위법 개정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감수하게 됩니다. 국회의장이 89명 국회의원과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이상 헌재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A 재판관과 B 재판관의 이같은 태도는 국민의 바람을 저버리고 최고 법률기관으로서의 헌재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A, B 재판관을 포함한 헌법재판관은 사태의 중대함을 직시하여 서둘러 합헌.합법적인 판결을 내릴 생각은 없습니까?


태그:#헌법재판소, #신문법, #방송법, #불법, #조중동
댓글

이명박 정부의 언론사유화 저지와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해 2008년 1월 전국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현업인 단체, 노동조합, 정보운동단체, 문화운동 단체, 지역 언론운동 단체 등 48개 단체가 만든 조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