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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의 '코스모스'를 들으면서 야생초 실내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빨갛게 정열적으로 익은 산사나무의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땡글땡글 구슬처럼 생겼다. 장미과 나무답게 위협적인 가시는 열매를 지키겠다는 열의로 비친다. 한 알 따서 맛을 보니 새콤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산사나무. 야생 산사나무는 잎의 결각이 심하지 않다고 한다.
 산사나무. 야생 산사나무는 잎의 결각이 심하지 않다고 한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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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 공원에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있는 두충을 만났다. '두충나무'가 아니라 '두충'이 정식명칭이라고 강사가 일러준다. 중국 특산종으로 키가 10m이상 자라는 두충과의 낙엽교목이다. 교목이기에 잎이나 씨앗을 직접 만져보며 관찰하기가 쉽지 않은데 잔가지 하나가 바람에 반쯤 꺾여 둥치 밑에 늘어져 있다. 덕분에(?) 두충이 갖고 있는 특징을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피를 만지니 약간의 코르크 느낌을 준다.

잎은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는 타원형으로 잎 끝 쪽으로 가면서 갑자기 좁아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본 잎은 완만하게 타원형이다. 여러 나무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야생처럼 자라다 보니 변형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암수 딴 그루라고 하는데 날개달린 씨앗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암나무다.

두충의 가장 큰 특징은 나뭇잎과 씨앗을 잘라 보면 점액질 같은 실이 달려 나온다고 한다. 잎과 씨앗을 가만히 잘라보니 실이 나와서 서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달려 있는 모양을 보였다. 잎이 모두 떨어지는 겨울이 와도 씨앗은 여전히 달려 있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일지 올 겨울에 관찰해 볼 일이다.

동네 공원어귀에 있는 두충. 키와 둥치가 제법 크게 자라있다.
 동네 공원어귀에 있는 두충. 키와 둥치가 제법 크게 자라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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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충의 씨앗과 잎을 자르면 흰 실 같은 점액질이 나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두충의 씨앗과 잎을 자르면 흰 실 같은 점액질이 나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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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은 산에 가서 야생나무의 열매나 잎을 맛볼 때면 꼭 "미안해, 고마워"하며 사람 대하듯 한다. 꼭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요즘 읽은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풀들의 전략>을 보면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잡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물이든 새든 곤충이든, 혹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든, 생명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의욕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모든 것이 있는 힘을 다 쏟고 있다. 향상심이 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풀들의 전략>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니 있는 힘을 다 해 살아가고 있는 야생식물의 일부를 채취하면서 미안하거나 고맙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하는 거다. 두충을 둘러싸고 이렇게 저렇게 관찰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만수국, 금잔화, 메리골드..이름이 다양하다.
 만수국, 금잔화, 메리골드..이름이 다양하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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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국화.
 빗자루국화.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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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 귀퉁이에 마련해 놓은 야생화단을 만났다. 원예용 꽃뿐만 아니라 각종 풀들도 함께 자라고 있어서 볼거리가 많았다. 손으로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도 손가락 끝에서 맡아지는 '박하' 향은 상큼하도록 진했다. 거기에 반해 '만수국'(금잔화)을 만진 손에서는 역한 냄새가 묻어났다. 그러나 꽃은 벨벳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것이 매혹적이다.

중년의 사람들이 '깨꽃'(사루비아)의 꿀을 빨면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자잘한 흰색의 꽃과 날씬한 긴 잎을 갖고 있는 '빗자루국화'와 '어저귀'를 처음으로 보았다. 심장모양인 어저귀의 동그란 잎을 만졌을 때 그 폭신한 감촉은 추운 겨울날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감미로운 느낌이었다.

어저귀. 한 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재배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잡초가 되어 있다.
 어저귀. 한 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재배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잡초가 되어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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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의 전략>에 어저귀의 일대기가 나온다. 어저귀의 원산지는 인도다. 본래 잡초였지만 섬유 채취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일부지역에서 재배되는 식물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잡초로 돌아간 풀이란다.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어저귀의 역사는 '4천 년 이상 전'의 일이라고 한다.

한반도 역사와 거의 맞먹는다. 그런 어저귀가 이제는 화단 귀퉁이 한 쪽이나 황무지 길가에서 사람들 발에 밟히며 다시 잡초의 생을 살고 있는 거다. 사실 풀들 쪽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 자연 속에서 나름 당당히 존재하는 하나의 종인데,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 귀하게도 되었다가 귀찮은 잡초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뽀리뱅이. 나물이나 된장국에 넣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뽀리뱅이. 나물이나 된장국에 넣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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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가지똥. 노랗게 작은 꽃이 핀다.
 방가지똥. 노랗게 작은 꽃이 핀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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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칭개'와 '뽀리뱅이','방가지똥(모두 국화과에 두해살이 풀이다)은 봄에 나물로 무쳐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을 수가 있단다. 주변에 많으니 찾아보란다. 냉이만 겨우 식별하고 있는 내게 너무 어려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지칭개는 찾지도 못했다. 모두가 지칭개 같고, 모두가 뽀리뱅이 같고.

많은 증손들을 둔 연세 높은 할머니가 오랜만에 만난 손자들을 향해 "네가 아무개지? 아닌데요, 그럼 네가 아무개냐? 아닌데요"....장성한 손자들의 이름 헷갈리는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이번 수업은 지칭개와 개갓냉이와 방가지똥과 뽀리뱅이에게 뺑뺑이 돌려 쳐진 느낌으로 마무리했다. 그것들의 구분은 여전히 숙제다.


태그:#마들꽃사랑회, #야생초교실, #야생식물, #어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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