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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들이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승인 기본계획안을 보고받고 있다.
 지난달 17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임위원들이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승인 기본계획안을 보고받고 있다.
ⓒ 방통위 중계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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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에는 (종편/보도채널) '준비' 언론, '방관' 언론, 그리고 '방해' 언론이 있다."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에 출입하는 기자들 사이에 오간 '뼈있는' 농담이다. 이른바 '조중동' 등 거대 언론사들은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 사업자 선정에 사활을 걸면서 그 선정 권한을 쥔 방통위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밖에 보도전문채널을 준비하는 중소 언론사들과 종편 도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일부 '방해' 언론사까지 포함하면 방통위 출입기자 대부분 직간접적 이해 당사자인 셈이다.      

방통위 기자실은 언론사 종편 경쟁 '축소판'

방통위에서도 '기자'와 '준비사업팀 직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부 '외부인' 출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방통위의 한 간부는 "언론사 경영기획실에 소속된 직원도 기자냐"면서 "이번에 언론사들끼리 경쟁하기에 망정이지 일반 기업들이 뛰어들었다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일부 '준비' 언론사 기자들이 방통위 상임위원이나 고위 간부를 접촉해 '정보보고'를 올린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17일 사업자 선정 기본계획안 발표 때처럼 자사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신문 지면과 사설을 통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동안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해온 보수 신문들이 유독 종편 선정 앞에선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론 다양성 확보와 외주/독립제작사 육성이라는 애초의 종편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거대 언론사들의 '이전투구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작 칼자루를 쥔 방통위 역시 언론사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선정 방식이 자칫 특정 언론사에 유리하다는 인상을 줄 경우 경쟁 언론사에게 공격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통위의 고민은 사업자 선정 방식부터 사업자 숫자, 심사 배점에 이르기까지 온통 '복수안'인 기본계획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승인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승인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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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반대론자 빼고 '그들만의 공청회'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공청회도 '언론사 눈치 보기'는 마찬가지다. 첫날인 2일 오후 2시 30분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대강당에서 열리는 1차 공청회에는 종편을 준비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5개 사업자와 보도전문채널을 준비하는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서울신문, 이토마토, 헤럴드경제, CBS 등 6개 사업자만 참석한다.

이에 1일 만난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방통위 기본계획안에는 이미 그동안 예비 사업자들이 주장해온 내용들이 모두 반영돼 있는데 굳이 사업자들만 따로 불러 공청회를 여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예비 사업자들은 이미 지난 7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전초전을 치렀다. 당시 KISDI 주최로 열린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도입에 대한 의견수렴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각사 대표는 의무 재전송, 낮은 채널 번호 부여, 비대칭 규제 등 신규 채널에 대한 정부 지원책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사업자 숫자나 선정 방식, 자본금 규모, 심사 기준 등에서 뚜렷한 입장 차를 드러냈고 이를 방통위는 '복수안' 형태로 반영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학계, 연구기관, 지상파나 케이블TV 등 관련 사업자 대표들이 참석하는 공청회는 3일 오후 3시부터 따로 열린다. 하지만 그나마 그동안 현 정부의 종편 선정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언론시민단체나 진보적 언론학자들은 빠져 '반쪽 공청회'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KBS2 광고 축소를 전제한 시청료 인상 추진이 '종편 광고 물량 대기'라는 주장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미디어업계뿐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종편이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언론사들의 종편 논쟁을 '그들만의 잔치'로 '방관'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종편 공청회를 계기로 주목할 대목들을 짚어봤다. 

[사업자 숫자] '경제 논리'론 1개... 정부는 '탈락자 배려' 고심

이번 공청회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역시 사업자 숫자와 선정 방식이다. 선정 사업자가 적을수록 지상파 방송과 벌일 경쟁이나 광고 등 수익성 확보에 유리하고, 사업자가 많을수록 종편끼리 경쟁이 불가피해 자칫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업계 전문가들은 현 방송광고시장을 감안해 종편, 보도전문채널 모두 1개 사업자 선정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최훈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9일 낸 보고서에서 "KBS2 광고 축소 시 발생될 예상 잉여 광고 재원은 3500억 원 정도"라면서 "2개 이상 사업자 선정에 따른 광고 재원 부족과 수익성 악화를 감안할 때 종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1개 사업자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1~2개 사업자 선정 시 탈락 언론사의 '역공'이 부담스러운 현 정부에서 정치적 고려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인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일정 기준을 넘는 사업자를 모두 선정하는 '준칙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종편 예비사업자 가운데서도 조선, 동아, 한경은 1개 사업자 선정이 적당하다고 보는 반면 중앙과 매경은 '준칙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일단 방통위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놨다. 2개 이하 사업자 또는 3개 이상 사업자를 선정하는 '비교평가' 방식부터 '준칙주의'에 해당하는 '절대평가' 방식까지 모두 복수안으로 제시해 예봉을 피했다.

보도채널 순차 선정은 종편 탈락자 배려 '꼼수'

하지만 조준상 소장은 지난달 26일 '종편 기본계획안 분석' 토론회에서 "기본계획안은 종편 2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을 두고 설계된 꼼수"라며 "최소 납입자본금을 1년 영업비용에 해당하는 3000억 원으로 낮게 잡은 것이나,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순차 선정을 버젓이 제2안으로 내밀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업자 선정방식과 함께 중요 변수로 떠오른 것이 보도채널 선정 시점이다. 지금까지 종편과 보도PP를 동시에 선정하는 게 당연시돼 왔으나 기본계획안에 종편을 먼저 뽑고 나중에 보도채널을 선정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된 것이다.

순차 선정의 경우 종편 탈락자가 보도채널 경쟁에도 뛰어들 수 있게 돼 "종편 탈락자를 배려한 방안"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장 기존 보도채널 준비 사업자들이 신문 사설까지 동원해 '동시 선정'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2개 사업자일까? 조준상 소장은 "종편 사업자가 1개일 때보다 2개가 서로 경쟁할 때 정부 입장에선 길들이기 쉽기 때문"이라면서 "그럴 경우 보도PP 역시 종편 탈락 사업자를 포함해 2개 이상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비대칭 규제] 신규채널 지원 vs. 거대 언론사 특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지난달 1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종편 채널 도입 정책, 진단과 모색' 토론회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지난달 16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종편 채널 도입 정책, 진단과 모색' 토론회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언론노조 이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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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예비사업자들이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비대칭 규제'도 중요 이슈다. 국내/외주제작 편성비율 규제, 중간광고 규제 등 기존 지상파 방송에 적용하는 규제를 종편에는 차별적으로 적용하자는 게 사업자들 주장이다.

또 현재 지상파방송 가운데도 KBS1과 EBS만 해당하는 케이블TV 의무송출 대상에 종편을 포함시키고 10번대 전후의 낮은 채널 번호를 부여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이에 진보적 언론학자들과 지상파 방송에선 '비대칭 규제'가 오히려 거대 언론사에 대한 '특혜'라며 맞서고 있다. (관련기사: "조중동 방송 특혜, 지상파-지역방송 죽이기"

일부 언론학자들은 종편이 종합오락채널인 TvN과 보도전문채널 YTN을 합쳐 놓은 정도의 파급력으로 기존 케이블 PP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까지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달 16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시청자의 80~85%가 케이블TV를 통해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는데 종편이 지상파와 비슷한 채널로 들어온다면 별도 PP로 생각 안 할 것"이라면서 "동일한 PP가 서로 다른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불공평"하다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엔 MBC, SBS 등 기존 지상파 방송의 위기감도 한몫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달 18일 미디어광고 보고서에서 신규 종편/보도PP 선정이 지상파방송엔 '매우 부정적'이고, 기존 케이블 PP에겐 '소폭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조준상 소장은 "종편이 도입되더라도 지상파 방송은 버틸 수 있지만 기존 PP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종편 사업자를 중심으로 PP가 이합 집산돼 여론의 다양성이 더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재 변수] 끝나지 않은 방송법 효력 논란... 원점 회귀?

민주당 등 야당과 민언련,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비롯한 진보적 언론시민단체들은 지금까지 줄곧 현 정부의 종편 선정을 반대해왔다.
 
기본계획안이 상정된 지난달 17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도 야당 추천 상임위원인 이경자 부위원장과 양문석 위원은 종편 사업자 선정 작업만이라도 오는 10월쯤 예상되는 헌재 '부작위소송' 결정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민주당이 승소해 모법인 방송법을 국회에서 재논의하게 될 경우 방송법 시행령과 사업자 선정 기본계획까지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헌재가 방송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사업자 선정과 부작위 소송 결과는 무관하다며, 10~11월 중 사업자 공모를 거쳐 연내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할 태세다. (관련기사: '종편' 밀어붙이기, 방통위에 부메랑 될라)

지난해 7월 22일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경위들이 막고 있다.
 지난해 7월 22일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경위들이 막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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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조준상 소장은 "헌재에서 방송법이 유효하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방송법을 재입법하게 되면 모두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면서 "그런데도 방통위가 무리하게 연내 선정을 서두르는 것은 최시중 위원장 임기(내년 3월) 안에 끝내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중 교수 등 진보적 언론학자들이 방통위 사업자 선정 계획과 공청회 자체가 위법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달 기본계획안 발표를 앞두고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이 문제 제기했듯 사업자 자격을 좌우할 시청점유율 산정 기준 마련 작업도 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자 선정 일정을 서두르는 것도 방통위엔 큰 부담이다. 

'경제 논리'마저 가려버린 조중동 '눈치 보기'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 공공미디어연구소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낸 양문석 상임위원이 토론자 질의에 답하면서 종편 사업 자체의 비관적 전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앞으로 지상파 중간광고가 허용되고 디지털방송 멀티모드서비스(MMS) 등으로 지상파 채널 수가 늘어나면 종편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양 위원은 1일자 <창비논평>에서도 "종편채널이 현재 방송시장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신문시장 1위 자리를 두고 벌이는 보수 신문사들의 수성과 공성의 쟁투라는 본질을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필요성'이나 '채널의 다양성'으로 위장한 채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종합편성채널 논의, 무엇이 쟁점인가)

이렇듯 뻔한 '경제 논리'조차 외면한 채 조중동 '눈치 보기'에 휘둘리는 현재 종편 논의를 이대로 방관하는 것은 결국 '준비' 언론사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셈이다.


태그:#종편, #종합편성채널, #조중동,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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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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