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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정을 준비하며 지난 여행의 길벗들을 회상한다. 홀로 떠날 채비를 할 때면 언제나 크고 작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경험이 심어준 확신이 나를 고무시킨다. 모든 길은 그것이 품은 생명을 성장시키고, 그 길에서 함께한 따뜻한 만남이 다시금 고독과 깨어짐에 맞설 용기를 준다는 사실.

지금부터 소개할 사람들은 지난 4월과 5월에 걸친 두 번째 일본여행에서 만났다. 짧은 스침이었지만 이들은 나를 가르친 스승이었고 마음을 나눈 이웃이었다. 그리고 이 지구가 '론리(lonely)'가 아닌 '러블리 플랜잇(lovely planet)'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맛이 기가 막혔던 꼬치 가게 사장님
 맛이 기가 막혔던 꼬치 가게 사장님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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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싫어하는 세 가지' 이야기 형식을 빌려 여행자가 반가운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친절한 사람을 만났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중에서 최고는 친절한 사람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이 사람은 후쿠오카에서 매일 이용하던 슈퍼 앞 꼬치가게 사장님이다. 온종일 혼자 걷다 돌아와 조금은 처량한 맘으로 먹을거리를 사러 갔는데 이날 처음 '포차'를 발견했다.

맥주 한잔 하려던 참에 더할 나위 없는 안주를 찾아 감격하고, 개당 200엔 하는 착한 가격에 또한번 흐뭇해 했으며, "안녕하세요" "한국 알아요"하며 한참을 반가워해준 사장님 덕분에 적적함마저 훌훌 벗어던질 수 있었다.  

롯폰마쓰역 부근에서 음식점 전단지를 돌리고 있던 네팔 청년
 롯폰마쓰역 부근에서 음식점 전단지를 돌리고 있던 네팔 청년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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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폰마쓰역 근처에서 만난 네팔 청년이다. 유센테이 공원 가는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매던 참에 멀리서 전단지를 건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현지 청년에게 본의 아니게 무안을 당한 터라 낙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쓰러운 맘도 들고 '외국인'이란 같은 신분이 반갑기도 해서 부러 말을 걸었다.
그는 일어를 전혀 못했다. 한국에서 왔고, 나 역시 일어를 못한다고 하자 얼굴이 환해져 반가운 척을 했다.

신호 바뀌길 기다리며 전단지도 받고 이것저것 얘기하던 참에 그가 네팔사람임을 알았다. "언젠가 당신 나라에 갈 생각이다, 무척 아름다운 나라라고 들었다" 라고 말하니 그가 맑은 바람 같은 미소를 지었다.

도후로마에역의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
 도후로마에역의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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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후로마에역에서 만난 친절한 역무원이다. 호만산을 가기 위해 커뮤니티 버스 승강장 위치를 물었더니  "따라오라"면서 앞장을 섰다.

정류장은 역에서 나와 곧바로 좌측 기찻길 너머에 있었다. 그냥 손짓만 해줬어도 될 거리를 몸소 안내해주며 차 시각까지 몇 번씩 일러주었다.

한 나라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행사나 시대를 이끈 문학가나 사상가, 혹은 훌륭한 건축물 등.

그리고 또하나, 그 나라의 국민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투와 표정, 그런 사소한 것들이 외국인에게 '다시금 이 나라에 오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도, 사라지게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역무원의 친절은 일본에 대한 호감을 한층 높이는 것이었다. 

호만산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던 현지인 아주머니. 이때만 해도 저 분이 나의 '은인'이 되실 줄 전혀 몰랐다.
 호만산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던 현지인 아주머니. 이때만 해도 저 분이 나의 '은인'이 되실 줄 전혀 몰랐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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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가운데 한 사람이 보일 것이다. 같은 버스를 타고 와 산 오르는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던 현지인 아주머니다. 이 분이 '은인'이 될 거라곤 저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다.

걸은 지 30분쯤 됐을까.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애써 안심을 하려는데 사태가 심각해졌다. 차(茶)를 건네시는 아주머니께 "가까운 데 화장실이 있느냐" 물었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20~30분?" 하셨다(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올라가는 길에 화장실은 없었다).

결국 숲속에서 급한 용무를 보게 되었는데, 이날따라 휴지마저 빠트려 갖고 오질 않았다. 아주머니가 봉지째 내민 크리넥스 티슈가 아니었으면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에 봉착할 뻔 했다.

호만산 정상에서 만난 현지인
 호만산 정상에서 만난 현지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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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을 타고 오르는 호만산 깔딱고개에서 만난 일본인 청년. 순서를 기다리는데 자꾸만 말을 걸었다. 영어는 거의 못했는데 그래도 손짓과 자국말로 대화를 이었다.

산 정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장소를 알려주며 사진도 찍어주고 아래로 보이는 도심의 위치도 설명해주었다. 내려가겠다고 인사를 하자 가방에서 과자와 사탕을 꺼내 넉넉하게 나눠주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겐 동질감이 느껴진다. 땀 흘려 길을 걷고 그 시간만큼 자신과 대화하며 그렇게 정상을 만나고 다시 내려오는 길. 그 '맛'을 알기 때문인 듯 하다. 역시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었다. 답례로 숙소에서 삶아온 달걀 한 개를 줬다.

호만산에서 만난 또 한명의 은인
 호만산에서 만난 또 한명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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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만산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은인이다. '내려가는 건 금방이지' 생각했는데 방심한 탓에 길을 잃었다.

두어 시간 홀로 숲길을 걸은 뒤에 산허리쯤인 듯한 도로를 만났다. 그러나 우로 가도 앞으로 가도 길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파른 좌측길을 택했는데 얼마지 않아 도로변에서 대나무를 치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의 손에 들린 낫을 의식하며 적당한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선뜻 가는 곳까지 태워주겠다 했다. 

잠시 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20여 분 만에 다음 목적지인 텐만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답례로 남은 계란 두 개를 드렸다. 배탈이 나서 못 먹게 된 달걀이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하카타 돈타쿠 축제가 열리던 구시다진자에서 만난 자원봉사 아주머니
 하카타 돈타쿠 축제가 열리던 구시다진자에서 만난 자원봉사 아주머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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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의 돈타쿠 축제가 있던 날, 구시다 진자에서 만난 자원봉사 아주머니(오른쪽). 함께 있던 어머니와 나를 보고 한국 사람이냐고 먼저 물어왔다. 그리고는 자신도 한국인이라고 했다. 재일교포 2세였다.

코 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는데 우리가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본인과 내 어머니의 얼굴이 닮았다고도 했다. 아주머니에게 한국은 애타게 그리운 나라였던 걸까? 여운이 남는 만남이었다.

후쿠오카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나가사키까지 동행한 베를린 사람 도미니크
 후쿠오카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나가사키까지 동행한 베를린 사람 도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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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 베를린 사람 도미니크다.

그와는 후쿠오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났다. 둘 다 나가사키로 가는 길이었다. 아홉 날을 혼자 보내고 말벗을 만난 터라 여간 반갑지 않았다.

한국 술로 치면 꼭 막걸리 같은 친구였는데 그가 맘에 든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그의 여행자로서의 자세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세 시간여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는 자신이 경험한 낯선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혼전 동거에 관한 인식차였다. 도미니크는 한국에서 혼전 동거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양가 부모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도미니크는 자신이 아는 한국어를 최대한 활용하며,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수첩에 적었다. "정신력과 근력의 차이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수첩 안에는 또박또박 적은 한국말 옆에 자국어로 발음이 표기돼 있었다. "왜 이렇게 한국어에 열심히냐"고 물었더니 "다른 나라의 말을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덧붙여 "여행자로서 그 나라 문화를 깊이, 다 알기란 어렵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가끔 영어로 말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의 외국인을 만난다. 그리고 이국의 낯선 문화를 그저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여행자의 자세란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그 사회의 규칙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노력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도미니크는 매우 훌륭한 여행자였다.

도미니크 덕분에 숙소 찾는 수고 없이 코카이도의 좋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른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나가사키 코카이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미국인 론 아저씨
 나가사키 코카이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미국인 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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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론 아저씨. 이날 아침, 나와 같은 시간에 잠을 깬 유일한 투숙객이었다. 첫인상이 다소 까칠했던지라 말 걸기가 꺼려졌는데 커피를 권하자 그가 선뜻 수락하며 웃었다. 

건축가인 론은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잠시 일본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말을 나눠 보니 꽤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로 내 말을 들으며 자주 고개를 끄덕였는데 특히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등 전쟁의 나이든 희생자들을 위해 과거사 해결이 시급하다는 데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폭력성에 관해서도.

론 아저씨 때문에 미국이란 나라가 사는 동안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

오토바이로 국내 여행 중인 일본인 청년
 오토바이로 국내 여행 중인 일본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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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일주 중인 일본인 여행자. 이름이 어려워서 듣고 금세 잊어버렸다. 출발을 앞두고 잠시 이야기 중이었다. 본인의 오토바이를 꽤 자랑스러워 했는데 그가 언젠가 자전거 여행의 매력에 빠지길 기대한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이자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호주인 데이비드(왼쪽)와 일본인 유키코
 게스트하우스 직원이자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호주인 데이비드(왼쪽)와 일본인 유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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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의 직원이자 예술가인 호주사람 데이비드(왼쪽)와 일본인 여행자 유키코다. 화가인 데이비드는 관광비자를 받아 외국에서 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가녀린 몸매처럼 말투나 행동도 '소녀스러웠다'. 큰 눈을 깜빡거리며 "명쥬"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항상 웃음이 났다. 

유키코는 이날 짧은 낮술에 동참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막걸리를 사랑한다"던 애주가 유키코는 나와 비슷한 직종에서 일을 해 내가 느낀 환멸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많은 얘길 나눌 순 없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면 이날 선물받은 캔맥주에 대한 답례를 꼭 하고 싶다.

함께 자전거 여행 중이던 뉴질랜드인 부부
 함께 자전거 여행 중이던 뉴질랜드인 부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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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중이던 뉴질랜드 부부. 역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자전거 여행자란 사실만으로도 호감이 갔는데 식사를 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언젠가 나도 꼭….

나가사키 코카이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AKARI'의 주인 부부
 나가사키 코카이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AKARI'의 주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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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AKARI(아카리)'의 주인 싱고와 나나 부부다. 베를린 사람 도미니크가 바람직한 여행자의 답안이었다면, 이들 부부는 숙박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될 만하다.

나가사키의 코카이도에서 잠잘 곳을 원하면 아카리를 찾아가라. 아카리에는 침대뿐 아니라 여행자를 행복하게 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기 전에 평화의 종이새 한 마리를 더하는 일도 잊지 말자.


태그:#일본, #나가사키 , #AKARI, #길벗,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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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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