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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27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북한응징 결의 국민대회'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27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북한응징 결의 국민대회'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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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쟁 났대요. 어떡해요?"
"북한이 전쟁 선포했대요. 수업 안 하죠?"
"선생님, 남북한이 전쟁하면 누가 이겨요?"
"바보야, 당연히 핵무기랑 잠수함 있는 북한이 이기지."
"니가 바보야, 우리가 돈도 훨씬 많고 경제력이 있는데 우리가 이기지."

천안함 사태가 학교까지 들어왔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난리다. 자기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면서 전쟁이 났다는 문자가 왔다며, 북한에서 전쟁 선포를 했다고 하는데 수업이 되겠느냐며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나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냥 장난 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야야, 땡땡이 치려고 거짓말하지 말고 수업합시다"하면서 바로 수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진짜란다. 모두 진짜라고 하는 것을 보니 자기들끼리 이미 다 돌려봤나 보다. 나중에 교무실로 내려와서 확인해 보니 어느 단체에서 '북에서 전쟁 선포를 했다, 전쟁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는데 그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전쟁이 난 것으로 탈바꿈되어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안 하려고 하다가 잠깐이라도 학생들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주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껏해야 한 10분, 아니면 15분...

-"선생님 전쟁하면 누가 이겨요? 북한이 이기죠?"

"아까 누가 '전쟁 나면 수업 안 하죠?'하고 물었는데 그건 농담이죠? 장난이라도 그런 농담하면 안 돼요. 전쟁은 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분명히 천안함과 함께 운명을 달리한 우리 젊은 친구들, 아니 여러분들에게는 형이 되겠네요. 이 분들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누군가는 책임을 물어야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똑같이, 아니 몇 배로 갚아준다고 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을 한다면 훨씬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전쟁은 결과만 따져서 누가 이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남의 나라 전쟁이면, 역사 책 속에 나오는 전쟁이면 누가 이겼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겪는 전쟁이라면 결코 이겼다 졌다를 가지고 전쟁을 판단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가 역사 책에서 보는 전쟁과 달리 전쟁의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과가 아니고 과정 그 자체니까요. 전쟁 과정은 그 당시를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고통이고 절망 아닐까요? 전쟁을 '스타 크래프트' 같은 전자오락으로 생각하면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총 들고 진짜로 전쟁하는 군인에게는 결코 재미있는 일이 아니고, 그 전쟁통에 피난가고, 가족을 잃어야 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역시 고통 그 자체일 거예요. 아닌가요?"

그래도 아이들은 전쟁의 승부에 집착을 한다.

-"우리가 진다는 이야기예요, 이긴다는 이야기예요?"

"옛날에 전쟁이 군인의 숫자로 판가름이 났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군인의 숫자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죠? 한 나라의 국력의 총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겠지요. 모두 아는 것처럼 절대적인 군인 수로는 북한이 남한보다 많아요. 군사비는 (자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의 군사비는 20억 달러 수준에도 못 미쳐 남한의 1/3에서 1/10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내가 군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면전을 한다고 가정하면 남쪽이 이길 것 같아요. 최근 20년 동안 군사비를 남쪽이 북쪽의 10배를 쓴 것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를 쓰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최근 <신동아> 4월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는데,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2009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실시하여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전달한 결과에 의하면 "주한미군이나 전시증원 병력을 배제해도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10% 가량 우세하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현 정부 국가정보원의 평가에서 주한미군을 제외하고도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력이 우수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전쟁하면 미군도 같이 할 테니 남한이 완전 이기겠네요."

"이 녀석들이 전쟁에서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끝까지 승부에 집착을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축구는 2골을 먹어도 3골을 넣으면 이기고, 야구는 7점을 주어도 8점을 뽑으면 이기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전쟁도 그럴까요?

우리나라 국민이 100만 명이 죽고 다른 나라 국민이 200만 명이 죽었으면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쟁으로 우리나라가 10조의 경제 피해를 입었는데 다른 나라가 20조의 피해를 입었다면 우리가 두 배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죽은 100만 명 중에 내 부모가 있고, 그렇게 날아간 10조 중에 우리 집이 있으면 어떨까요? 전쟁은 그렇게 월드컵 축구처럼 내가 잃은 게 상대방이 잃은 것보다 적다고 이긴 것이 아니고, 내가 얻은 것이 상대방보다 많다고 이긴 것도 아니에요."

-"그렇네요. 그럼 어떡해요?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면 이겨야 하잖아요."

"(참으로 승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우리보다 더 국력의 격차가 심한 중국과 대만을 보세요. 아마 중국이 마음먹고 대만을 무력 통일하기로 하고 전면전을 한다면 중국이 거의 100% 이길 거예요. 어쩌면 아주 짧은 기간에 통일을 이룰 수도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아마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상하이에도 폭탄이 떨어질 것이고, 북경에도 미사일이 떨어질 것이고 군인들이 수없이 죽고, 백성들도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 이기면 뭐 하겠어요? 중국이 대만으로 당장 무력통일 한다고 처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닐까요?"

-"우리도 전쟁 나면 군대 가요? 전쟁하면 안 되겠네?"

"한 번 상상을 해 보세요. 63빌딩에 미사일이 떨어져서 박히는 상상을 해보세요. 인천항에 어뢰가 와서 박히는 상상을 해보세요. 아니면 우리 동네 주유소, 아니 옆 집에 포탄이 와서 떨어지는 상상을 해보세요. 아니면 우리 나라에 28개나 있다는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은 상상이 가나요? 이 모든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장면이 전쟁이 나면 모두 현실이 될 거예요.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요. 혹시 북한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핵무기가 서울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남한이 이렇게 되는데 북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평양을 폭격하여 평양 사람들이 죽고, 금강산을 폭격하여 금강산에 불이 나고... 상상이 되나요? 전쟁은 이런 거예요. 1994년 YS 정부 시기에도 지금처럼 전쟁이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에도 전쟁 초기에 우리 군인과 미군 수십만 명이 죽는 것으로 나오고, 전쟁도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어 결국 전쟁 일보 직전에 서로 멈추었다고 해요. 전쟁은 결코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고 감정으로 판단할 문제가 절대로 아니에요."

천안함 사건 선거악용 중단과 남북대결조치 즉각철회를 요구하는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시국선언이 2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전남대, 이화여대, 동국대, 중앙대, 숙명여대, 광운대, 숭실대, 한국외대, 인하대, 대구대, 부산대, 울산대 총학생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천안함 사건 선거악용 중단과 남북대결조치 즉각철회를 요구하는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시국선언이 2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전남대, 이화여대, 동국대, 중앙대, 숙명여대, 광운대, 숭실대, 한국외대, 인하대, 대구대, 부산대, 울산대 총학생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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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구 죽었는데 전쟁에서 이기면 기쁠까?

"가족과 친구가 죽었는데 전쟁에서 이기면 기쁠까? 아까도 말했듯이 전쟁은 축구가 아니란다. 더하기 빼기를 해서 남는 것이 많으면 이기는 산수도 아니란다. 월드컵 축구야 이기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진다고 무슨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전쟁도 그럴까요?

서울에서 63빌딩이 무너지고,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가 끊어지고, 남쪽의 핵발전소가 부서지고, 압록강의 수풍발전소가 무너지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다 잃고 이기면 뭐할 건데요? 그게 진짜로 이기는 것일까요? 내 가족, 내 친구가 죽었는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그렇게 기쁠까요? 전쟁은 이런 거예요. 전쟁은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 모든 수단을 다해서 막아야 돼요. 전쟁이 일어나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전쟁을 중지하는 것이고, 그리고 최후의 방법으로 이기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벌어지면 최선을 다해서 이겨야 하지만 벌어질 때까지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가장 현명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라고 했어요. 인류 역사에는 일부 지배층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전쟁을 결정한 사람들, 전쟁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아니고 죄 없는 백성들이고, 약자들이었잖아요.

전쟁을 장난처럼, 스포츠처럼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두 마디를 해 주고 싶어요.

"첫째, 전쟁은 2골 먹고 3골 넣으면 이기는 축구가 아니다. 게임하다가 지면 리셋(reset) 누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도 아니다."
"두번째, 나는 싫다. 그렇게 전쟁 하고 싶은 사람들 있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가서 너네들끼리 해라."

자, 시간 많이 지났으니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하고 교과서 펴세요."

"조금 더 하면 안 되나요?....... 예?" 아이들의 떼쓰기 작전은 결국 실패했다.

"자꾸 떼쓰면 곤란해요. 이쯤 해요. 이쯤만... 됐죠? 몇 페이지?"


태그:#천안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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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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